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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등록 업체들, 알고보니 불법 사채로 가득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출○○’ 등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에 광고를 내건 대부업체 중 집계 가능한 업체의 절반이 ‘대출 잔액 0원’짜리 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에 광고료를 지불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면서 정작 대출 실적은 없는 것이다. 이들 업체 상당수가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를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실제로는 불법사채 영업을 한다는 전직 불법 사채업자인 제보자 A(40)씨 주장대로다.

대출○○ 광고 대부업체, 절반이 대출 실적 0

사채 광고 전단에 붙어있는 서대문 영천시장. 중앙포토

사채 광고 전단에 붙어있는 서대문 영천시장. 중앙포토

13일 중앙일보는 유명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 대출나라와 대출세상에 ‘메인 등록 업체’로 광고를 낸 대부업체 101곳(8일 기준, 중복광고 제외)의 지난해 매출을 전수조사했다. 이들 업체는 인터넷 대출 중개 업체에 매달 130만원씩 광고료를 지불하며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곳이다.

그 결과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에 실적을 보고한 58곳 중 절반인 29곳이 대출잔액 0원이었다. 실적 자료가 없는 업체(43곳) 중 27곳은 올해 신규 등록했고, 16곳은 연락이 두절됐거나 지난해 실적 보고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보고를 누락했거나 연락이 끊긴 업체까지 합하면 유효광고업체 74곳(신생업체 제외) 중 60%에 해당하는 45곳이 정식 대부업체로서의 영업을 포기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부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출○○ 광고로 불법 사채 고객 유인"

경기도에서 20년 동안 불법 사채업을 해온 제보자 A씨는 “불법 사채업자들이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에 광고를 내기 위해 정식 대부업자로 등록한 뒤, 실제로는 광고로 유인한 고객들에게 불법 사채 영업을 한다”고 말한다. 대출나라·대출세상 광고 업체 중 상당수가 정식 대부업체로서의 실적이 0이라는 건 이런 A씨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A씨에 따르면 상당수 불법 사채업자들은 대출○○ 광고를 보고 전화한 고객들에게 “대출 승인이 거절됐다”고 통보한 뒤, 잠시 후 다른 전화번호로 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불법 소액대출 영업을 한다. 이들은 고객에게 30만원을 빌려준 다음 일주일 뒤 50만원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30/50’ 소액대출(연 환산 이자율 3476.2%)을 주로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의 모바일 화면. 정용환 기자

대표적인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의 모바일 화면. 정용환 기자

불법 사채업자가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불법사채 영업을 할 수 있는 건 이들의 광고 무대인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가 대부업 관리 규제의 회색지대이기 때문이다. 대출 중개 사이트를 통해 광고한 등록 대부업체가 불법 대출 사고를 저지르더라도 중개 사이트 운영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불법 사채업자가 해당 사이트에 가입할 땐 지자체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대부업 등록증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업자들에게 광고 공간만 마련해줬을 뿐 실질적인 대출 영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한 대출 중개 사이트 관계자는 “그런 사실(불법 사채 영업)이 홈페이지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각 지자체로부터 정식 허가받은 대부업 등록증을 들고 와 가입하는 업자들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만 홈페이지를 통해 대출 소비자들에게 관련 사례에 대한 경고를 꾸준히 제공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당 업자를 홈페이지에서 퇴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수사기관이나 금융감독원의 협조 요청에도 적극 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금감원 관리 사각…금융위 "일제 단속 벌이겠다"  

관리 주체가 관리 의지를 상실한 점도 문제다. 대부업법에 따르면 대부업자는 금융위원회 등록 업자(대형)와 각 시·도 등 지방자치단체 등록 업자(소형)로 나뉜다. 지난해 6월 말 금융위 등록 대부업자는 1442명,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6852명이다. 지자체에 등록한 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각 시·도에 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는 이런 책임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대부업자 관리 담당자는 “실태조사를 하긴 하지만 (서울시는) 그 자료를 자치구에서 받을 뿐이고 금감원에서 전체적으로 관리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신고센터 홈페이지. 정용환 기자

금융감독원 불법금융신고센터 홈페이지. 정용환 기자

금감원은 소형 대부업체까지 일일이 감독하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여신금융검사국은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과 책임이 없어 여기까지 살펴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역시 접수되는 불법사금융 신고 사례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인력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신고센터가 하는 일은 해당 사례자에게 수사기관인 경찰이나 상담기관인 법률구조공단 등 연락처를 안내해주는 것 정도다.

금융위는 오는 상반기 중 불법사금융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부업자가 불법 영업으로 얻는 이자 이익을 거의 전액 무효화하는 대부업법 개정 방안을 법무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동시에 검찰·경찰·금감원·지자체 등 관련 기관이 대대적인 일제단속을 벌여 소규모 대부업체의 불법 영업을 근절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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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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