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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냉장고는 왜? 기술 발전할수록 점점 커질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2)

아시아문화원 연구원으로 아시아 곳곳을 다니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관찰했다. 우연히 일로 시작한 냉장고 조사를 계기로 우리의 부엌을 살펴보게 됐고 음식문화를 생각하게 하였다.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냉장고는 재미있는 가전제품이다. 부엌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음식에 열을 가하면서 조리하는 데 반해 냉장고만 홀로 음식을 차갑게 만든다.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커피포트, 커피머신, 오븐, 에어 프라이어 등 우리는 모두 발열하는 기능을 요리에 사용한다.

부엌이라는 어원을 봐도 부엌이 불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다. 학계의 중론으로 부엌은 불을 의미하는 ‘블’과 다른 말이 결합하여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국에서 전통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고 저장하기도 하며, 동시에 난방하는 공간이었다.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방의 구들까지 동시에 데워져서 취사와 난방을 일거양득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불과 부엌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서울 난지도 쓰레기처리장에서 전자공업진흥회 직원들이 폐냉장고에서 유해물질인 프레온가스를 추출하는 모습(1992년). [중앙포토]

서울 난지도 쓰레기처리장에서 전자공업진흥회 직원들이 폐냉장고에서 유해물질인 프레온가스를 추출하는 모습(1992년). [중앙포토]

냉장고가 변덕스럽게 거꾸로 행동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품의 크기와 부피는 줄어드는 게 당연한데, 냉장고만 유독 커져 왔다. 에어컨, 정수기는 모두 작아지는데, 왜 사람들은 냉장고는 대형 크기를 선호할까?

냉장고의 본 기능은 식품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냉동 혹은 냉장하는 것이다. 보관이 주요 목적이다. 식품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식품 변질의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온도인데, 냉장고가 온도를 낮추면서 부패의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큼지막한 만능 저장고를 곁에 뒀으니 우리는 자꾸만 채워 넣을 것을 찾는다. 꽉 찬 냉장고를 보면서도 ‘먹을 게 없다!’라며 불평한다. 냉장고 하나로 부족해서 김치냉장고를 구매하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냉장고를 두 대 이상 소유한다. 결국, 냉장고 보급률을 100% 이상 달성했다. 가정을 꾸리면서 늘어가는 살림과 함께 냉장고의 부피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어쩌면 모두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청개구리와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냉장고는 사실 누구보다 바쁘고 성실한 면을 지닌 반전 매력의 소유자이다. 집에서 24시간 동안 꺼지지 않고 가동하는 유일한 제품이기 때문이다(동시에 소비전력을 가장 낭비하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러한 재미있는 녀석을 분석하면 뭔가 더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큼한 동남아시아의 열대과일, 신선한 노르웨이산 생선, 청정지역 호주의 소고기가 우리의 식탁까지 오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고등어를 반찬으로 먹기 위해서는 영하 25℃에서 일하는 냉동고 작업자의 수고가 필요하고, 참치는 영하 60℃에서 작업하는 하역사의 손을 거쳐야 하며, 유통 과정에서 영하 20℃의 냉장창고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노동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우리는 이제 냉장고 안에 세계 각지에서 온 식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식품들이 제철에 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소비자 모두가 알고 있으며, 이제는 어떤 것이 제철에 나는 것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게 되었다. 냉장고의 탄생은 우리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삼성전자 냉장고 생산라인(1993년). [중앙포토]

삼성전자 냉장고 생산라인(1993년). [중앙포토]

이러한 물류 혁신의 배경에는 냉장고의 탄생이 뒷받침했다. 냉장고가 개발되면서 유통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냉동선, 냉동 열차, 냉동 트럭, 냉동 컨테이너 등이 등장했고, 냉장 식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슈퍼마켓, 대형할인마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류의 냉각 기술에 관한 역사를 다룬 『냉장고의 탄생』에서 톰 잭슨(Tom Jackson)은 글로벌 대기업의 냉장 체인 시스템(Cold Chain System)을 덩굴에 빗대서 표현했다. 냉장 체인은 수많은 마디와 줄기로 이루어진 덩굴로 지구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이 덩굴을 통해서 농장과 어선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식료품 가게의 냉장고까지 싱싱한 채로 배달할 수 있다. 가정집 냉장고는 냉장 체인의 최종 단계인 끄트머리 덩굴손과 같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 유일해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해 보이고,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냉장고를 관찰하는 것은 곧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이자, 전 세계를 규제하는 체제에 관한 탐구이다. 나는 냉장고가 편리함 속에 감춰진 현대인의 습관과 욕망을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식품을 ‘구매’하는 간단한 행위로 문제가 해결되는 편리성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문제란 좁게 말하면 당장 오늘의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일부터 크게는 동물복지와 관련하는 생명윤리, 환경과 오염까지 확대될 수 있다(유기농 식품을 사면서 안심하거나 환경보호에 일조했다는 자기 위안으로 삼는다).

따라서 냉장고 프로젝트는 전자제품의 개발에 따른 편리한 문명사회를 선택한 대가에 대해서 지불하는 기회비용으로, 인간과 환경에 얼마나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천연 얼음을 사용해서 음식을 보관하던 수준에서, 기계로 얼음을 만드는 단계를 거쳐(인공 냉각 장치인 압축기를 이용해 인공얼음을 만듦), 폭발하지 않는 안전한 냉매제를 찾았고, 20세기 초반에 드디어 가정용 냉장고를 개발했다. 근대 과학의 기술로 이뤄낸 인공 얼음의 발명은 장티푸스와 같은 각종 전염병에 노출되고 위생적이지 못했던 천연 얼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비로소 식품을 안전하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대략 20만 년 전에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웠던 것과 비교하면, 얼음을 완전하게 지배한 역사는 불과 1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온도를 올리기는 쉬웠지만 내리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얼음을 자유롭게 다루고 난 뒤에는 식탁 위의 혁명이 이루어졌다.

* 이주홍 외, 『한국의 부엌』, 국립민속박물관, 2019, 10-12쪽 참조.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최근 현지조사를 다녀와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부엌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발행했다.
* 이러한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김재민,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시대의 창, 2014, 을 추천한다.
* 인류가 불을 제어하고 불로 요리(火食)하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만 년 전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리처드 랭엄,『요리 본능: 불, 요리, 그리고 진화』, 사이언스북스, 2017, 115쪽 참조.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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