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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절감보다 안전·신뢰···한국 '소부장' 글로벌 허브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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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계화의 종말, 안보·의료·핵심기술 각자도생의 길로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간 지속해 오던 국제 정치와 경제의 질서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콘퍼런스의 대미를 장식한 ‘팬데믹과 지정학 및 지경학 리스크’ 세션의 좌장을 맡은 박인국 최종현학술원장은 지구 주위를 ‘코로나19’라고 적힌 자물쇠가 걸린 철조망이 둘러싼 카툰을 소개하며 “세계화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 의미”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와 대응, 그리고 미래’ 온라인 콘퍼런스 #[팬데믹과 지정학·지경학 리스크]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본격적인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한국이 거대 국가들 사이에서 어떤 ‘생존 전략’을 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사로는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명예교수,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참여해 2시간 20분 동안 세계 경제·정치사의 종과 횡을 넘나드는 분석과 전망을 쏟아냈다.

세계화·신자유주의 국제질서 끝났다

▶윤영관 명예교수=“세계화와 자유주의는 서구 선진국 내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로 추진력을 잃었다. 미국인들은 아웃소싱 등 세계화로 미국 제조업이 망해 실업률이 올랐다고 생각한다. 국내외 정치적 협력은 분열됐고, 미·중갈등으로 국제 리더십도 사라졌다. 세계는 보호주의와 분절주의, 각자도생주의로 가고 있다.”

▶최병일 교수=“서구가 자신들이 설계한 자유무역체제에 대해 운전자이길 포기했다.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 모델은 코로나 사태로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제 국가와 국가, 국가와 세계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탈동조화(Decoupling)’의 기로에 섰다. 기업들은 탈동조화에 저항할 거다. 값싸고 질 좋은 중국 생산기지에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사안보·의료·핵심기술 등을 시작으로 서서히 탈동조화 가능성이 크다.”
▶김성한 원장=“세계화의 명과 암이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코로나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를 탄생시켰다. 당분간 자유무역·국가분업체제·작은 정부·국제협력 대신 보호무역·글로벌 밸류체인붕괴·큰 정부·국수주의가 지속할 거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과 경쟁으로) 어떻게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는지 세계 시민들이 느끼면서 뜨거운 논쟁과 시행착오를 통해 코로나 전보다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 나타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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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미·중 경쟁의 최종 승자는  

▶정재호 교수=“코로나 사태는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진 최초의 글로벌 위기다. 이로 인해 미·중 패권 경쟁은 지속하거나 더 심해질 거다. 중국은 ‘우한폐렴’이란 말을 쓰다가 중단했고 미국은 이미 중국에 코로나 피해 손해배상을 물리는 집단소송을 시작했다. 미·중이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어떻게 상징적으로 활용할지도 주목된다.”
▶성태윤 교수=“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의 시대가 갔다고 했지만, 미국은 부활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밸류 체인이 좀 더 지역적인 형태로 축소·분산되겠지만 그때도 미국은 중심축이 될 거다. 과학기술상의 헤게모니와 달러라는 국제 금융시스템의 통제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내수 비중이 커 단기적으로 큰 피해를 보겠지만, 소비는 다시 급격히 살아날 거다. 미·중 갈등에서도 미국이 우위를 차지할 거다.”
▶이숙종 교수=“둘 다 패자다. 팬데믹에서 트럼프는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중국에 대한 국제 여론도 상당히 악화됐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66%가 중국인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유럽연합(EU)의 반중 여론도 커졌다. EU는 앞으로 환경·인권 문제 등에 대해선 중국에 (비판)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 사태로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중국도 많은 걸 잃었다.”

세계 경제, 얼마나 큰 타격 입을까

▶권구훈 위원장=“실업 등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다. 선진국과 내수 비중이 큰 국가들은 ‘V’자 형태로 내년쯤 회복할 거라 본다. 하지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 수출에서 나오는 만큼 해외 방역 상황에 따라 회복이 늦어질 거다. 대신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탈중국이 가속하면서 한국이 대체 공급지로 부상할 수 있다. 앞으로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보다 안전성·유연성·신뢰성이 중요하다. 주요 부품 수출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한다면, 일본 대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글로벌 허브가 돼 외국 투자가 늘어나고 좋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윤영관 명예교수=“대공황에 맞먹는 위기가 오고 있다. 5월 미국 실업률이 25%로 전망되는데 대공황 수준이다. 개도국의 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 한국 경제도 수출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 해외투자기업의 국내 귀환을 유도하고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정경제 규제를 제외한 기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노동 유연성을 개혁해야 한다. 특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외교의 경우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한미 동맹이란 대전제하에 중국과 우호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 양국으로부터 압력도 빈번해지겠지만, 사안별로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북전략은 실속을 챙겨야 한다. 당장은 ‘K방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보건의료 타당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끌어내 남북관계를 증진하는 것이다.”
▶김성한 원장=“미국 대선이 중요하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 흥미를 잃은 상태라 재선에 성공하면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에 동맹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북한이 변할 때까지 내버려 두는 전략적 인내로 갈 수 있다. 한국도 낭만적인 관점에서 남북협력 우선주의에 빠지기보다 전략적 우선순위를 책정해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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