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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포스트 코로나 대통령 연설,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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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은 위기감과 자신감이 교차했다. 방역과 경제에 초점이 맞춰진 연설문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15차례 나왔지만, ‘선도’라는 단어도 8차례 나왔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K 방역’에서 확인한 국가적 역량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선도형 경제’‘한국판 뉴딜’ 방향성 옳지만 #재정, 규제개혁 등 현실 뒷받침 없으면 공허

메시지의 핵심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선도형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 추진이다. 그 수단으로는 5G 및 데이터 인프라 구축,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 육성, 인공지능 기술 등이 망라됐다. 이런 산업들은 굳이 코로나 대응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해선 필요한 먹거리다. 방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 정부가 지속해서 제시했던 혁신성장 계획의 재판이라는 느낌도 강하다. 고용보험 확대 적용과 국민취업지원제도 등도 방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 등을 위한 고용 안전망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이번 코로나19 와중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이 역시 재원 등 현실적인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연설이 장밋빛 비전에 비해 구체적 실현 방안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도형 경제는 낡은 과거의 틀로는 불가능하다. 혁신 의지를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친다. 연설에서도 언급된 비대면 의료 서비스가 단적인 예다. 성공 방역에서도 확인된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이 원격의료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낡은 규제와 이 규제를 방패 삼는 이해관계자들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선도형 경제는 말잔치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성공적 방역으로 한국이 ‘안심 투자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안전한 방역만으로 한국 기업의 유턴이나 해외 자본의 투자를 기대하긴 힘들다. 혁신이 보장받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투자는 문턱을 넘지 않을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도 마찬가지다. 고용보험은 임의가입이 가능하지만, 자영업자나 비정규직은 보험료 부담 때문에 외면해 왔다. 이를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형평성 문제도 생기거니와 재정 부담도 만만찮다.

경제 위기 극복에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임기 4년 차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경제정책 평가는 싸늘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 이유로 경제정책을 든 응답자는 불과 1%였다. ‘K 방역’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지층 반발을 감수하며 밀고 나간 프랑스의 ‘마크롱 실험’ 등 다른 나라의 경제 개혁에서도 배워야 옳다.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