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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미국판 정은경? 트럼프도 못 자르는 '감염병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좀 더 일찍 조치를 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현지시간 지난달 12일)

"우리가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서둘러 시도한다면 통제하기 어려운 추가 유행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지난달 28일)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이 내놓은 '쓴소리' 중 일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잇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실책으로 점수가 깎였지만, 실무자인 파우치 소장의 주가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감염병 대통령'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파우치 소장은 에이즈·에볼라 등을 경험한 미국의 대표적 방역 전문가다. 1984년부터 연구소장을 맡아온 그는 레이건부터 트럼프까지 6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전문성과 중립성, 경험 등을 내세워 감염병 관리 책임자로 '장기집권'하고 있다. 코로나19 역시 태스크포스(TF) 핵심 멤버로 전면에 나섰다.

특히 대통령과 맞선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라리아약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훌륭한 치료제"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권고하자 "(효과 있다는) 명확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식이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파우치 소장(왼쪽)과 그를 지켜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파우치 소장(왼쪽)과 그를 지켜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갈등설에도 '당신은 해고야!' 실현 안 돼 

그러다 보니 대통령과의 갈등설이 불거지며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지난달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파우치를 해고할 때'(Time to #FireFauci)라는 문구가 담긴 글을 리트윗한 게 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유행어 '당신은 해고야!'(You‘re fired!)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백악관 측은 "파우치를 해임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신뢰받는 참모로 남아 있다"고 해명했다.

둘 사이는 여전히 껄끄럽다. 이달 들어선 백악관이 파우치 소장의 하원 코로나19 청문회 출석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이 주류인 상원과 달리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우치 소장의 사진을 담은 양말 상품.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캡처]

파우치 소장의 사진을 담은 양말 상품.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캡처]

인기 상승에 '굿즈' '브래드 파우치' 등장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수록 파우치 소장의 인기는 커진다. 갈수록 해고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 버블헤드 인형, 컵케이크, 도넛, 칵테일, 양말…. 그의 얼굴이 들어간 상품들이 쏟아졌다.

인기 TV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선 배우 브래드 피트가 직접 파우치 소장으로 변신했다. 그는 파우치의 외모를 빌려 대통령의 발언을 하나하나 꼬집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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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우치 소장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등과 함께 코로나19 사태의 '진짜 영웅'으로 꼽았다. 하지만 감염병 대통령에게도 어려운 숙제가 쌓여있다. 미국 내 확진자는 120만명을 훌쩍 넘겼고 하루 수만 명씩 신규 환자가 나오고 있다.

미국 곳곳에선 거리두기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파우치 소장은 "내년 1월까지 백신 개발이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눈앞에 놓인 유행 확산 저지가 발등의 불인 셈이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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