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장성택 처형 때 쓴 고사총으로 한국군 GP 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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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여군 고사총 부대 훈련 모습. [중앙포토]

북한 여군 고사총 부대 훈련 모습. [중앙포토]

지난 3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때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했다고 군이 4일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했다. 항공기나 헬기를 격추하는 용도의 고사총은 4개의 총열을 한데 묶어 4발씩 한번에 나간다. 이번엔 한국군 GP 외벽에 4발의 탄흔과 14.5㎜ 구경의 탄두가 발견됐다. 14.5㎜는 고사총에 해당된다. 북한군은 전방 GP 일대에 고사총을 상시 배치해 왔다. 북한군은 2014년 10월 경기도 연천 일대에서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한 적도 있다.

군, DMZ 총격 국회 국방위 보고
14.5㎜ 구경, 네 발 한꺼번에 나가
2014년엔 대북전단 향해 발사도
전문가 “고사총 쏜 게 우발적인가”

북한은 고사총을 고위직 처형에 이용하며 내부 체제 단속에 활용하기도 했다. 2013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과 2015년 4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이 대표적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북한이 고사총을 쏜 만큼 의도성 여부를 더욱 신중하게 따졌어야 했는데 군이 먼저 먼저 우발적이라는 쪽으로 알렸으니 군이 북한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총격 사건 하루 만인 이날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정전위원회 조사팀이 총격을 받은 한국군 GP를 찾아 현지 조사를 했지만 북한군의 입장 표명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침묵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에 전통문을 통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면서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했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면서도 “아직 회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북한이 계속 답하지 않을 경우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총격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반응할 것이라 믿는 당국자는 한 명도 없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3일 서해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쏴 9·19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서도 국방부가 강력 항의했지만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군은 이날도 북한군 총격은 우발적이라는 데 무게를 실었다. 단, 군은 이 같은 판단에 이른 구체적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침묵하는데 군이 앞장서서 ‘우발적 총격’으로 미리 알린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군 주변에선 “국방부가 통일부인가”라는 반발이 나왔다. 북한이 입을 닫고 있는 한 ‘도발’이 아닌 ‘오발’이라는 국방부의 설명이 궁색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남북이 6·25 전사자 유해를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합의했던 화살머리 고지가 있는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총격이 벌어진 게 북한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이날 제기됐다. 총격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와 한·미 공군과 해병대가 각각 실시한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날 총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외곽 매체를 통해 한국에 대한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 대외선전 매체인 메아리는 “남조선이 북침 전쟁 준비를 위한 무력 증강과 군사적 대결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며 “남조선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적극 추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아리는 “남조선 당국은 사상 최대의 국방 예산을 책정하고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전투기 ‘F-35A’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 첨단 군사장비를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이철재·김다영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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