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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슬기로운 의사생활? 코로나 응급실선 먼나라 얘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45)

코로나19 비상근무 체계가 가동된 지도 어느새 3달. 응급실은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다. 과연 의료진들은 코로나19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공의, 간호사, 응급구조자, 교수에게 짤막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요 몇 달 어땠어?"
저년차는 주로 개인적인 소회를 고년차는 주로 시스템 지적을 많이 했다. 오늘은 먼저 저년차들의 이야기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첫발을 코로나19와 함께 내디뎠다. 제일 먼저 배운 게 신종감염병인 셈이다. 질병 하나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의사 생활하면서 절대 잊지 못할 거 같다."

"나에겐 지금처럼 환자를 보는 게 루틴이다. 예전에는 응급실 환경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난 응급실에서 처음 일하는 거니까. 지금까진 감염병 환자도 일반 환자처럼 본 건가? 따로 관리하는 게 당연한 거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일반 환자가 많이 줄었다. 특히 소아 환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가끔 환자가 오더라도 응급실에서 코로나 옮길까 봐 간단한 처치만 받고 돌아간다. 아이를 둔 부모들이 코로나에 더 예민한 거 같더라."

"환자는 줄었지만 일이 편해지진 않았다. 오히려 더 힘든 부분도 많았다. 특히 열나는 환자를 수용할 격리실이 부족할 때가 괴로웠다. 격리실 빈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눈앞이 캄캄했다."

코로나 때문에 일반 환자가 많이 줄었다. 가끔 환자가 오더라도 응급실에서 코로나 옮길까 봐 간단한 처치만 받고 돌아간다. [중앙포토]

코로나 때문에 일반 환자가 많이 줄었다. 가끔 환자가 오더라도 응급실에서 코로나 옮길까 봐 간단한 처치만 받고 돌아간다. [중앙포토]

"특히 경증 환자가 많이 줄어서 좋다. 대신 중증 환자는 심각도가 훨씬 높아진 느낌이다. 병원에 오지 않고 집에서 버티다 병을 길러서 온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한 번에 두 대의 119가 동시에 들어오거나 하면 너무 힘들더라. 내 몸은 한 개인데. 진짜 너무 힘들 때면 차라리 나도 코로나로 자가격리 들어가고 싶더라. 그럼 쉴 수 있을 테니."

"레벨 D 입고 벗고 하는 게 힘들다. 그렇다고 계속 입은 채 일하는 건 더 힘들다."

"전화 받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일반인들의 코로나 관련 문의 때문이다. 어떨 때는 종일 전화통 붙잡고 있느라 환자 진료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간단한 감기여도 동네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감기 환자까지 대학병원에서 봐야 하나 싶다. 코로나 검사만 하고 집에 돌아갔다가, 음성 결과 나오면 그제야 다시 오는 환자들이 많다. 여기가 아니면 다른 응급실에서는 감기약 하나 처방받기 어렵단다.“

"불필요한 검사를 많이 하고 있다. 열만 조금 있어도 CT 검사를 모두 하는 등. 이렇게까지 과잉진료를 해도 되나 싶다. 하지만 책임이 무서우니 어쩔 수 없다.“

"윗년차 선생님들이 예민해졌다. 코로나 이후 욕먹는 횟수가 늘어난 느낌이다. 서럽다.“

"코로나는 그냥 봐서는 절대 모르겠더라. 딱 봐도 코로나 같은 사람에게선 절대 안 나오더니, 아무리 봐도 아닐 거 같은 사람에게서 오히려 코로나가 진단됐다."

"코로나 환자를 보고 자가격리 들어갔는데 연속으로 근무를 쉬니 아주 편했다. 대신 다른 동료가 자가격리 들어가는 동안은 지옥을 경험했다.“

요즘 내원하는 환자들 분위기를 보면 코로나19는 끝난듯하다. 마스크조차 안 쓴 사람이 많다. 병원에 있는 우리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사진 Pixabay]

요즘 내원하는 환자들 분위기를 보면 코로나19는 끝난듯하다. 마스크조차 안 쓴 사람이 많다. 병원에 있는 우리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사진 Pixabay]

"사람들이 밖에 안 돌아다니면 좋겠다. 나는 코로나 무서워서 근무 외에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는다. 평소 오프 때 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코로나 이후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나이트클럽이 성황이라는 뉴스에 화가 많이 났다. 그 사람들은 코로나 걸려도 병원 안 왔으면 좋겠다.“

"응급실 근무가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낙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애환은 누가 달래주나? 일이 힘든 것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못 하는 게 더 힘들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온 나라가 난리였는데 정작 내가 본 환자 중에는 감염자가 하나도 없었다. 제법 많은 환자를 봤음에도. 광주가 타지역에 비해 안전했던 거 같다. 내가 운이 좋은 것도 있고.“

"사람들 인식이 많이 안일해졌다. 지나가면서 헬스장 내부를 봤는데, 대부분 마스크를 안 쓰고 있었다. 한 번 더 터져봐야 정신을 차릴 건지. 도시와 시골 간의 인식 차이도 컸던 거 같다. 고향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코로나에 비교적 관심을 덜 두는 거 같더라.“

"요즘 내원하는 환자들 분위기를 보면 코로나19는 끝난듯하다. 마스크조차 안 쓴 사람이 많다. 뉴스와 정부는 거리두기를 유지하라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나태해졌다. 병원에 있는 우리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혹여나 감염환자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태해진 사람들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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