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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부추, 이렇게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74)

부추들이 올라오면 마치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재밌게도 가위로 싹둑 잘라 먹고 놔두면 며칠 뒤에 또 수북이 올라오는 것이 마치 채소계의 머리카락이라고 할까. [사진 위키백과]

부추들이 올라오면 마치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재밌게도 가위로 싹둑 잘라 먹고 놔두면 며칠 뒤에 또 수북이 올라오는 것이 마치 채소계의 머리카락이라고 할까. [사진 위키백과]

땅을 빌려서 약초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한쪽에 조그만 규모로 채소도 키운다. 들어가는 품에 비해서 수확은 적어서 약초든 작물이든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매번 아내로부터 차라리 사 먹는 것이 싸다는 가벼운 핀잔을 듣지만 직접 키워 먹는 것은 큰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땅에 심은 작물들을 바로 뽑아다 먹으면 향과 맛이 더욱 기가 막힌 데, 채소 속의 영양분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입으로 직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도 봄이 되니 작년에 놔뒀던 곳에서 다시 잎들이 쏙쏙 솟아오르는 것을 가족과 지인끼리 모여 바라보며 연신 신기하다며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이렇게 올라오는 채소 중에서 부추도 있다. 부추들이 올라오면 마치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재밌게도 가위로 싹둑 잘라 먹고 놔두면 며칠 뒤에 또 수북이 올라오는 것이 마치 채소계의 머리카락이라고 할까.

고향이었던 부산을 떠나 서울에 와서 살다 보니 아쉬운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부추다. 부산에서는 툭하면 부추를 먹었다. 보통 전을 먹을 때 서울에서는 파전을 많이 파는 것 같은데, 부산에서는 대부분이 부추전이다. 부추의 부산식 이름인 정구지와 전의 사투리인 찌짐을 넣어서 정구지찌짐이라고 한다. 또, 반찬에서도 부추 무침이 자주 나온다. 오이소박이에는 부추를 푹푹 찔러 넣어서 그득하게 들어간다. 특히 부산의 대표 음식 몇 가지 중에 돼지국밥이 유명한데 이건 부추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부추의 부산식 이름인 정구지와 전의 사투리인 찌짐을 넣어서 정구지찌짐이라고 한다. [중앙포토]

부추의 부산식 이름인 정구지와 전의 사투리인 찌짐을 넣어서 정구지찌짐이라고 한다. [중앙포토]

부추는 여러 채소 중에서 재밌게도 정력에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력에 좋다는 건 참 인기가 많다. 한의학에서 부추는 간을 위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간은, 간 기능을 뜻하는 것으로, 특히 바깥으로 분출하려는 에너지를 뜻한다. 특히, 비뇨생식기의 능력을 말하는 바가 크다. 간을 위한 채소는 에너지를 분출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에너지 때문에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불가에서는 먹지 못하게 하는 채소로 분류했다.

이런 부추의 성질은 여러 속담과 별명에서도 드러난다. “부추를 씻은 첫 물은 아들도 안 주고 남편을 준다”고 할 정도로 심지어 부추가 지나간 물마저도 귀중히 여겼다. 부추를 먹고 기운이 나는 성분은 황화알릴이라고 하는 성분인데, 이 성분은 수용성이라 물에 녹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요리를 하기 위해서 부추를 손질할 때는 물에다 많이 씻으면 영양소를 날려 버리는 격이 된다.

첫 물마저도 귀하게 여긴 이면은 영양소를 담기 위한 뜻도 숨어 있는 것이다. 황화알릴은 일종의 황 성분인데, 먹으면 입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고, 아래로 나가는 가스의 냄새도 지독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마늘, 양파, 파 등에서 맡을 수 있는데 옛날 만리장성을 쌓을 때나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노동자들에게 먹여서 힘을 나게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부추가 비단 정력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힘을 나게 해 주는 것이다. 힘이 좋고 기운이 나면 그것도 좋은 것일 테니 그게 그 말이겠지만.

또 다른 속담을 보자. “봄 부추는 인삼과도 바꾸지 않는다”, “부추 한 단은 피 한 방울이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집 담벼락을 허물고 부추를 심는다”는 말도 있다. 속담뿐이 아니라 부추의 별명들을 보면 이런 효능들을 재미나게 표현했다.

부산에서 부르는 이름인 정구지는 한자로 쓰면 다양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情固芝 즉, 부부간의 정을 굳건히 해 준다거나, 精久持로 남성의 힘을 오래도록 지속시켜준다는 뜻이거나, 또는 正九芝로 풀이해서 정월부터 구월까지 먹으면 약이 된다 하기도 하고 혹은 꾸준히 먹으면 구순까지 살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해서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는 뜻도 있고, 월담초(越譚草)라는 별명은 과부집 담을 넘게 해 준다는 뜻이며, 파옥초(破屋草) 혹은 파벽초(破壁草)라는 이명은 양기가 강해서 소변을 보면 집이나 담벼락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강을 뒤집는다는 복분자의 전설은 이쯤 되면 애교 수준이다.

부추는 한자 이름으로 구채(韭菜) 라고 하는데 아마도 구채의 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로, 채소의 채가 추로 바뀌어서 부추라고 바뀌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마치 생채(生菜)가 상추가 된 것처럼. 구채는 식용으로 쓰고 한의학에서 약용으로는 부추의 씨앗이 약의 성질 강하기 때문에 구자라는 이름으로 처방에 사용한다. 보통 양기 부족 증상에 많이 쓰고, 간을 해독하거나 혈액순환을 목적으로 처방에 응용한다.

부산에서 돼지국밥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요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부추를 자주 내는데, 부추 속의 황화알릴은 비타민B군을 몸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돼지고기에 풍부한 비타민B를 부추로 팍팍 흡수하니 나름 음식 궁합을 잘 맞춘 케이스가 되겠다.

영양학적으로 칼륨이 풍부하니 나트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비타민A와 C도 많기 때문에 간 해독 효과를 바랄 수 있다. 워낙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변을 배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못해 다음 날 화장실에서 눈으로 확인까지 할 수 있는 채소다.

돼지고기 요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부추를 자주 내는데, 부추 속의 황화알릴은 비타민B군을 몸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사진 Flickr]

돼지고기 요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부추를 자주 내는데, 부추 속의 황화알릴은 비타민B군을 몸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사진 Flickr]

동의보감에는 “몽정을 하거나 오줌에 정액이 섞여서 나오는 증상이 있을 때 부추 씨를 살짝 볶아서 먹으면 치료에 도움이 되고, 허리와 무릎의 기운을 따뜻하게 하며, 양기를 강화한다”고 했다.

남자에게 좋은 것으로 쭉 설명했지만, 사실, 남자의 정력에 좋다는 뜻은 근본 에너지인 정을 채워준다는 말이니 그만큼 몸에 정말 좋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러니 여자분들에게도, 아이들도, 노인도 누구에게나 좋은 채소가 부추다. 몸속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활력을 나게 하고, 혈액순환을 시켜주니 피부도 좋아질 것이고, 장운동을 시켜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생각하면서 부추를 먹어 보자.

서울에서 부추를 적게 먹어서 아쉽다고 했지만, 가끔 반찬으로 나올 때가 있어서 귀하게 먹곤 한다. 그런데, 지인이 미국에 가게 되니까 미국에서는 부추를 잡초로 여기는 탓에 황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것을…’이라고 하니까 미국인들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으로 봤다고 하니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며 박원장이 미국으로 건너와 설명을 좀 하라며 메일이 왔다. 약초에 대한 지혜가 면면히 이어오는 우리나라. 온갖 풀들 속 약의 성질을 파헤쳐 정리해 놓고 그것을 민간에 유포해서 영양학적인 지식을 쌓아온 보고가 한의학이다.

마트와 시장에서 한 단씩 묶어 놓고 판매한다. 기사를 다 읽으셨으면 오늘 식단에는 1인당 부추 한 다발씩 먹을 계획을 세워보시길 바라며 기운 팍팍 나시길.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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