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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바이러스 다스리는 이 약재…이집트 미라에도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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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73)

보쌈을 먹고 나니 수정과 한 잔을 내 온다. 계피 향을 살짝 느끼며 한 모금 하니 속이 편해지고 기운이 더 나는 것 같다. 이 식당은 어떻게 이렇게 센스 있게 후식을 내올까. 계피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너무나 익숙한 약재다. 오랫동안 한약처방에 사용됐고, 독특한 향과 맛 때문에 음식에도 사용하고 수정과처럼 평소에 마시는 음료에도 들어간다.

이런 활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비슷해 성경에도 언급되고 이집트 미라를 만들 때도 활용되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3대 향신료가 후추, 정향, 계피인 점만 봐도 그렇다. 빵 종류 중에서 시나몬 빵이 있으며, 커피나 여러 음료에 계핏가루를 뿌린다. 심지어 콜라의 핵심 성분 중의 하나가 계피니까 어찌 보면 서양인에게 더 익숙한 약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계피에 들어 있는 쿠마린은 혈액순환을 잘하게 해서 부종을 빼는 작용을 하고, 현대의 와파린 성분도 쿠마린에서 나온 것이다. 적당히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다. [사진 pexels]

계피에 들어 있는 쿠마린은 혈액순환을 잘하게 해서 부종을 빼는 작용을 하고, 현대의 와파린 성분도 쿠마린에서 나온 것이다. 적당히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다. [사진 pexels]

이렇게 익숙한 약초 성분을 한의학에서는 정말 중요한 약재로 쓰고 있는데, 계피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해서 활용한 한의학 서적으로 상한론을 들고 싶다. 상한론은 후한 시대 장중경이라는 의사가 쓴 책으로, 당시 바이러스 질환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상황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일 때 어떤 식으로 병이 시작되고, 중간 과정은 어떠며 나을 때는 이런 식이다는 것처럼 질환의 변화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약물을 어떤 식으로 조합해서 써야 한다는 걸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분류하였다. 그 때문에 지금도 이 책은 한의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주요한 텍스트로 참고된다. 한국과 중국에서 바이러스 질환일 때 한약을 써서 치료하는 근거는 수천 년 동안 연구 노력한 과학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한론의 주요 약물 중에 계피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작용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상한론 조문에는 땀이 나는지 안 나는지,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소화는 어떤지, 복부에 힘은 있는지에 따라 계피에다 약재를 추가하며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처방 근거를 대고 있다. 현대의 약리학이 약초 하나 안에 들어 있는 성분 분석을 하는 정도로 되어 있어 아직은 약물 상호 관련한 작용을 이해 못 하는 한계에 있다고 토로한다. 그 때문에 약리학자도 옛 처방에 숨어 있는 작용에 감탄한다는데, 진짜 이렇게 세밀하게 조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혀가 내둘러진다.

상한론에 바이러스, 독감, 감기 처방에서 활용한 근거를 가지고 수천 년 동안 발전하면서 보약에 들어가는 일원이 되기까지 계피에 대해 알려진 바는 무궁무진하다. 너무 많아 복잡하지만, 세 가지 큰 영역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아래쪽 단전, 하복부의 에너지가 모자라면 위쪽의 심장의 기운이 조절이 안 된다. 그러면 심장 부담이 일어나고 두근두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중앙포토]

아래쪽 단전, 하복부의 에너지가 모자라면 위쪽의 심장의 기운이 조절이 안 된다. 그러면 심장 부담이 일어나고 두근두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중앙포토]

첫째, 속을 따뜻하게 하는데 특히 하복부를 데워주는 작용을 한다. 계피는 온리 약(따뜻할 온, 속 리), 즉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작용이 대표적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에너지는 먹은 것이 소장에서 흡수한 덕분에 나오는 것이 가장 크다. 소장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폭발적인 에너지 현상을 동양에서는 단전이라 표현했다. 비축한 에너지를 소모하면 물리학적으로 봐도 운동성이 떨어지고 온도가 차지게 된다. 몸에 기운이 충만하면 아랫배가 뜨겁고 빵빵하지만, 기운이 빠져나가면 차가워지고 텅 비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아랫배와 노인의 아랫배를 비교해보자. 그래서 계피는 먼저 속을 데워 생명 본원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작용을 하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 현대 약리학적 실험에서 계피가 혈당을 조절해서 당뇨에 도움이 되고, 고혈압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전의 기운은 생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형태적으로 남성에게는 전립선, 여성에게는 자궁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남성 전립선 질환에 도움이 되면서, 여성 생리통을 현저하게 줄여준다. 또 따뜻한 기운은 말초혈액순환을 시켜준다.

아래쪽 단전, 하복부의 에너지가 모자라면 위쪽의 심장의 기운이 조절이 안 된다. 그러면 심장 부담이 일어나고 두근두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심장 부정맥, 심근경색, 협심증에도 쓸 수 있고, 복부대동맥류에 의한 심장 부담에도 활용할 수 있다. 말초혈액순환은 굉장히 광범위한데, 일단 소화기관에 작용해 소화촉진을 하고, 손발 끝에 작용해 부기를 빼고 손발 저림을 완화한다. 계피에 들어 있는 쿠마린이라는 성분을 간혹 독성이 있는 것으로 오해해 겁을 내는데, 이런 성분 덕분에 약초가 작용한다. 쿠마린은 혈액순환을 잘하게 해서 부종을 빼는 작용을 하고, 현대의 와파린 성분도 쿠마린에서 나온 것이다. 적당히 쓰면 약이요 잘 못 쓰면 독이다. 약초의 처방은 전문가 한의사에 따르면 되겠지만, 식품으로서의 권고 사항은 하루 6g 이내로 먹도록 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둘째, 항균작용을 한다. 독감과 감기, 바이러스 처방에 쓰는 작용을 분석해서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특히 계피의 효능 중에서 땀을 내게 한다는 것이 있는데, 몸 안에서 열을 올려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이다. 인체는 바이러스가 침범하거나 염증이 생기거나 하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항체가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모양이 겉으로는 열이 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한 편으로는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일부러 몸에서 열을 낸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계피의 효능 중에서 땀을 내게 한다는 것이 있는데, 몸 안에서 열을 올려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이다. 인체는 바이러스가 침범하거나 염증이 생기거나 하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항체가 열심히 일한다. [사진 pexels]

계피의 효능 중에서 땀을 내게 한다는 것이 있는데, 몸 안에서 열을 올려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이다. 인체는 바이러스가 침범하거나 염증이 생기거나 하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항체가 열심히 일한다. [사진 pexels]

어쨌든 열이 난다는 것은 내 몸이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하는 증거다. 이때 열을 확 식혀 버리면? 자칫, 면역항체의 활동을 줄어 바이러스와 염증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해열하는 약초를 상당히 조심해 처방한다. 꼭 해열해야 할 때도 있지만, 몸의 기운을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기운을 도와주는 발열 작용으로 바이러스가 물러나면 열은 자동으로 떨어지니 열을 내는 약초가 반대로 자연 해열제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따뜻한 성질이 왜 해열 작용을 하지라는 것은 이런 작용 덕분이다. 땀이 나는 그 순간은 바이러스라는 적을 물리치고 열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도록 피부의 모공이 열리면서 축하하는 순간이다.

참고로 한의학에서는 계피의 껍질 속 부분과 육계나무의 가지를 세분화해서 처방한다. 계피의 껍질 속 부분을 육계라고 하고, 육계나무 가지를 계제라 한다. 육계는 속 열을 내고, 계제는 바깥쪽의 열을 내는 것으로 구분한다. 한의학은 이만큼이나 임상 근거에 입각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 내용이 풍부하다.

셋째, 계피는 항 혈소판 응고작용이나 항혈전 작용도 있다. 이런 작용을 알아서 처방에 활용한 것이 천 년 전쯤부터이다. 그래서 처방을 분석하다 보면 어혈 치료에도 많이 활용한다. 한의학적인 약초분석을 알고 있다면 이제 약리학적인 작용으로 서양에서 알려진 내용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수많은 항산화 성분 덕에 당뇨병, 심장질환, 혈압, 콜레스테롤, 항암작용, 뇌 기능 보호, 소염작용, 감염을 막아준다. 치아건강, 입 냄새 제거, 탈모 개선, 감미료, 천연 방부제 역할도 한다. 심지어 모기 기피제로도 쓰인다. 이 정도면 만병통치약이랄 수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고 다른 약초들과 조합 해 전략을 잘 짜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난다.

계피와 시나몬은 혼돈이 일어날 수 있는데, 같은 속이 종의 식물이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역사가 워낙 오래되고 유통과정에서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계피라며 시나몬을 팔거나, 시나몬으로 알고 계피를 사는 경우가 정말 흔하다. 향신료로 쓰는 건 실론 시나몬이고, 계피로 쓰는 건 중국 시나몬 혹은 카시아 바크 라고 구분을 한다. 시나몬이 계피 가격의 다섯배 이상이다 보니 계피를 시나몬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향긋한 맛과 풍미는 시나몬이 더 좋지만, 약초의 효능은 매운 맛이 강한 계피가 훨씬 더 많은 점도 참고하자.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데는 시나몬을, 약으로 쓸 때는 계피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주산지는 동남아나 남미 같은 곳인데, 한국은 계피 중에서도 질이 좋다고 알려진 베트남을 수입한다.

이제 수정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내 몸에 얼마나 큰 이익이 있는지 알았다. 음식 하나하나가 내 몸을 살리는 귀중한 것이다. 알고 먹고 마시면 그만큼 더 소중하게 음미할 수 있겠다.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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