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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서 잇단 전국민 고용보험론, 연 2조 적자 기금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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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둘러싼 논의에 불을 댕겼다.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에 이은 ‘전 국민’ 2탄이다.

강기정 수석 이어 김용범 차관 #“고용 충격 대비 제도 보수해야” #자영업은 지금도 가입 가능하지만 #보험료 부담, 소득 노출에 가입 꺼려

김용범

김용범

지난 1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인 2일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페이스북에 “대공황과 수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각국이 오랜 기간 쌓아온 제도의 성벽이 이번 코로나 해일을 막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며 “우리도 곧 들이닥칠 고용 충격에 대비해 하루빨리 제도의 성벽을 보수할 타임”이라고 적었다. 그는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하자는 뜻으로 적은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이제 고용보험 혜택이란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3월 고용보험 가입자(피보험자 기준) 수는 1378만2000명이다. 경제활동인구 2778만9000명(3월 통계청 조사) 가운데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 도입은 긴급재난지원금과는 논의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 1995년 출범한 고용보험의 틀 자체를 바꾸자는 얘기다.

고용보험 가입자 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용보험 가입자 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계에서는 고용보험 대상 확대 자체를 두고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산업 변화와 고용 방식이 다변화하며 기존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특히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180일 이상 근무해야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등 문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재원 때문이다. 고용보험은 지원금이 아닌 보험이다. 먼저 보험료를 내야 보험금(실업급여)도 타고 각종 혜택(직업능력개발 교육, 취업 알선 등)도 받을 수 있다.

현재 고용보험료 징수의 기본은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와 근로자가 반반 부담하는 체계다. 독립 사업자 형태인 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면 고용보험료 전액을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고용 형태별 고용보험 가입자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용 형태별 고용보험 가입자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일용 근로자, 자영업자는 지금도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보험료 부담, 소득이 드러나는 데 대한 걱정 때문에 실제 가입 확대로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은 0.2%도 안 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를 기반으로 보험 범위를 확대하려면 납세자의 자기 책임성이 정확히 알려져야 하고, 국세청 역시 세원 파악을 보다 정확히 하는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2조2000억원 적자를 봤다.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기금 적립금은 2017년 10조원대에서 지난해 7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가려면 수입보다는 지출 쪽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사업주·근로자로부터 받는 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관련 세금을 늘리거나, 아니면 둘 다 시행하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조준모 교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중부담·중복지에서 고부담·고복지로, 기금 기반에서 세수 기반으로 사회안전망을 대전환하는 무거운 논의”라며 “기존 국민취업제도와 각종 재정사업을 효율화해 세수를 절약하는 등 재정 건전성 노력과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종=조현숙·허정원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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