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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 피칭, 160km 뱀직구..임창용은 야쿠르트에서 이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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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뱀직구'로 유명했던 임창용(44)이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됐다.

일본 매체 투표 결과 54% 득표 #상식, 나이 거스른 특별한 피칭

야쿠르트 시절 임창용의 3단 피칭. [중앙포토]

야쿠르트 시절 임창용의 3단 피칭. [중앙포토]

일본 야구 전문 매체 풀카운트는 지난달 30일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별 최고의 외국인 선수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의 역대 외국인 투수 중 53.8%의 지지를 받아 1위로 뽑혔다.토니 버넷(34.5%), 테리 브로스(7.8%), 케빈 호지스(3.8%) 등 다른 투수들을 압도했다.

야쿠르트 최고 외국인 타자는 블라디미르 발렌틴(현 소프트뱅크·득표율 50.4%)의 차지였다. 발렌틴은 2013년 60홈런을 터뜨려 일본 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발렌틴은 알렉스 라미레즈(25.6%)와 로베르토 페타지니(19.1%) 등 전설적인 강타자들과 경쟁하느라 임창용보다 득표율이 낮았다.

임창용은 2008년 야쿠르트에 입단해 5년 동안 128세이브를 기록했다. 기록도 뛰어났지만 특유의 위압감과 개성 덕분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5년 해태에서 데뷔한 그는 97년부터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했다. 99년 삼성으로 이적 후 구원과 선발 모두에서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20대 초반부터 무리한 탓에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을 받기도 했다. "임창용은 끝났다"는 말에 나올 때 그는 일본 야쿠르트와 계약했다.

삼성에서 연봉 5억원을 받았던 그는 32세 나이에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30만 달러·3억 6000만원)만 받았다. 2008년 3월 요미우리와의 개막전에서 8회 셋업맨으로 나선 임창용은 최고 시속 156㎞ 강속구를 뿜어내며 단 1경기 만에 마무리 역할을 차지했다.

2011.02.24 . 24일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 구장서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라쿠텐과 연습 경기가 열렸다. 야쿠르트 임창용 투수가 5회초 등판해 라쿠텐 타선을 맞아 역투하고 있다.

2011.02.24 . 24일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 구장서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라쿠텐과 연습 경기가 열렸다. 야쿠르트 임창용 투수가 5회초 등판해 라쿠텐 타선을 맞아 역투하고 있다.

2008년 33세이브를 올린 임창용은 2009년 7월 10일까지 33경기 연속 무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미스터 제로'. 또 그해 5월 15, 16일 한신전에서 시속 160㎞ 광속구를 연달아 던져 열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마크 크룬(요미우리·162㎞)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 역대 2위 스피드를 기록했다.

임창용에게 "해태 시절 구위와 야쿠르트 구위 중 어느 게 더 강한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해태 시절"이라고 답했다. 만 33세 나이에 시속 160㎞를 강속구를 던진 게 놀랍지만, 공의 회전력과 수평 무브먼트는 20대 시절이 나았다는 자기 평가였다.

해태와 삼성에서 마무리로 뛸 때 임창용의 직구는 알고도 치기 어려웠다. '뱀처럼 휘는 직구'라는 형용모순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임창용에 대한 공략법은 그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30대 임창용은 20대 임창용만큼 강하지 못했다. 대신 노련미가 더해졌다. 임창용이 야쿠르트에서 보여준 하이테크는 '3단 피칭'이었다. 해태 시절 사이드암 스로였던 그는 선발 투수(2001~2003년)를 경험하면서 다양성에 눈을 떴다. 구종이 다양하지 못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스리쿼터와 오버스로 폼으로도 던진 것이다. 시속 160㎞ 기록은 오버스로 폼에서 나왔다.

임창용이 야쿠르트에서 활약할 때 직접 보여준 그립. 오버스로로 3가지 구종을 던졌다.

임창용이 야쿠르트에서 활약할 때 직접 보여준 그립. 오버스로로 3가지 구종을 던졌다.

피칭의 기본은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다. 그러나 임창용은 아예 발사점이 다른 3가지 폼을 가지고 있었다. "부상 우려가 있다", "제구 잡기가 어렵다"는 우려 속에서 그는 변칙 투구를 상당히 안정감 있게 구사했다.

해태 시절 임창용은 직구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원피치' 투수였다. 그래도 최강이었다. 2005년 이후에는 부상으로 인해 구속이 떨어지자 제구력과 변화구 능력을  보완할 기회를 얻었다. 수술 후 구위를 회복하자 '야쿠르트 수호신' 임창용은 이전보다 수준이 높은 투수로 거듭났다. 오버스로로 포크볼을 던질 수 있었다.

2013년 만 37세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임창용. 마이너리그 아이오아 컵스에서 피칭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3년 만 37세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임창용. 마이너리그 아이오아 컵스에서 피칭하고 있다. [중앙포토]

임창용은 2010년 야쿠르트와 2+1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매년 연봉만 4억엔(45억엔)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그는 2013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뛰다 이듬해 국내로 돌아왔다. 삼성에서 다시 마무리를 맡았다가 2016년 고향 팀 KIA로 돌아가 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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