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의외의 무죄 판결이 나온 걸까.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와 정준영의 카톡방에서 '경찰총장'이라 불린 윤규근(50) 총경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윤 총경 '통무죄' 판결문 분석, 檢 "납득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선일)는 지난 24일 윤 총경에게 검찰이 적용한 네 가지 혐의(알선수재·자본시장법 위반·직권남용·증거인멸)에 모두 무죄를 줬다. 법원에서 보기 어려운 이른바 '통무죄'가 나온 것이다. 윤 총경은 지난해 10월 "범죄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된다"며 구속됐던 인물이라 여파는 컸다.
28페이지짜리 윤 총경 판결문에는 "인정하기 부족" "시기와 장소를 특정하지 못해"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지난해 10월 경찰이 놓친 혐의로 윤 총경을 구속기소하며 경찰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검찰이었다. 1심 재판부는 왜 검찰 수사에 동의하지 못한 것일까.
"몽키뮤지엄 하려면 제대로 해라"
경찰과 검찰이 모두 찾아낸 윤 총경의 '몽키뮤지엄' 직권남용 혐의부터 보자. 윤 총경은 승리와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가 운영했던 주점 '몽키뮤지엄'의 단속 내용을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던 후배 경찰관에게 확인한 뒤 유 전 대표 측에 알려준 혐의를 받았다. 유 전 대표와 윤 총경 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던 사람은 윤 총경에게 수천만원의 주식을 제공하려한 혐의를 받는 녹원씨엔아이(옛 큐브스)의 정모 전 대표다. 정 전 대표는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은 윤 총경이 당시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던 후배 경찰관을 통해 몽키뮤지엄의 수사 상황를 확인하고 이를 정 전 대표에게 전달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윤 총경이 수사 상황을 전해 들은 뒤 정 전 대표에게 "문제가 되니 (몽키뮤지엄을)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그만두라"고 말한 사실에 주목했다. 청탁을 받은 경찰관이 할 소리는 아니란 판단이다. 다만 법원은 윤 총경의 부탁을 받고 다른 실무자에게 수사상황을 물어본 후배 경찰관이 "부당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혐의들은 경찰이 아닌 검찰이 찾은 것들이다. 뇌물 등이 포함돼 형량이 세다. 윤 총경은 앞선 혐의와 달리 이 지점에선 사실관계부터 강력히 부인했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한 무죄는 특히나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윤 총경에게 주식 1만주를 주려 한 혐의
검찰은 정 전 대표가 자신의 사기·횡령사건 수사 청탁을 대가로 윤 총경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자사 주식을 주려했다고 봤다. 뇌물 사건의 특성답게 정 전 대표와 윤 총경의 진술이 완전히 엇갈린다. 법원은 정 전 대표가 윤 총경에게 자신의 회사 주식 1만주를 주려는 의사를 표시한 점은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정 전 대표가 윤 총경에게 사건을 청탁하며 "향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주식을 주려했다"고 진술한 사실도 인정했다. 윤 총경은 "청탁은 없었고 공직자라 형 이름으로 정 전 대표 주식을 매수하려다 포기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법원은 정 전 대표가 윤 총경에게 주식을 주려한 혐의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정 전 대표 관련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이 "경찰관 2~3명으로부터 정 전 대표를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전화가 윤 총경의 부탁으로 왔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주식이 실제 전달되지 않아 무죄가 나온 것 같다"며 "두 사람 사이의 주식 이전에 대한 의사 합치 여부를 항소심에서 달리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윤 총경의 미공개정보 거래 혐의
두 번째는 윤 총경이 정 전 대표에게 미공개 정보를 듣고 정 전 대표 회사 주식을 거래한 혐의다. 법원은 정 전 대표가 일부 호재를 공시 전 윤 총경에게 알려줬다는 진술은 인정했다. 하지만 윤 총경이 실제 주식 거래에서 손해를 봤고, 정 전 대표가 알려준 내용이 언론에 먼저 보도됐거나 허위 공시였으며, 윤 총경의 주식 거래 행태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줬다.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미공개정보 거래는 거래 질서를 해할 때 처벌하는 규정이라 윤 총경이 손해를 봤는지는 범죄인정에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판결문을 보면 윤 총경은 감자가 이뤄진 뒤 유상증자를 할 것이란 말을 듣고 주식을 매도한 뒤 바로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전형적인 거래 패턴"이라고 덧붙였다. 윤 총경은 미공개 정보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도 부정하고 있다.
한강에 휴대폰을 버린 정 대표
마지막은 증거인멸 혐의다. 법원은 지난해 3월 윤 총경이 경찰 수사를 받던 날 정 전 대표에게 "급히 전화주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사실, 정 전 대표가 윤 총경으로부터 "이상한 내용이 있으면 다 지우라"는 말을 전화로 들은 사실은 인정했다. 정 전 대표는 그 말을 들은 나흘 뒤 자신의 휴대폰을 성수대교 남단에 버렸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버닝썬 의혹만 대대적으로 보도돼 "피고인이 지금 사건에 관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지점에 대한 갑론을박도 거세다. 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는 "당시 윤 총경의 머릿속에 어떤 수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지 쉽게 단정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판결 납득 못 하겠다는 檢
윤 총경은 24일 구치소를 나오며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시작된 검찰의 억지 기소와 먼지털기식 수사에 사법 정의가 굳건함을 보여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피고인이 100% 결백하거나 공소사실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피고인만 알 것"이라 말했다. 윤 총경을 검찰 수사의 '희생양'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1심의 경우 유죄 증명의 정도를 매우 엄격히 판단해 윤 총경이 무죄를 받았다"며 "항소심 재판부가 증거와 진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항소를 할 가능성이 크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란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