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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잘싸’ 젊은 보수…830 등 기수론은 있다, 깃발 들 사람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총선을 앞두고 45세 이하를 ‘젊은 후보’로 분류했다. 이 중 16명에겐 미래를 만들 사람이라는 뜻에서 ‘퓨처 메이커’라는 이름도 붙였다. 통합당 소속으로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45세 이하 후보는 총 28명이다.

이들은 통합당 입장에서 험지로 분류되는 지역에 주로 투입됐다. 20명이 통합당이 대패한 수도권에서 선거를 치렀다. 2명은 전남에 출마했고, 대전ㆍ충북ㆍ부산은 각각 1명이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경북에는 3명, 대구에는 한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퓨처 메이커 공천 당시에도 “젊은 후보들을 사지로 보낸다”는 말이 나왔다. 수도권 지역에서 낙선한 30대의 한 통합당 후보는 2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수도권의 젊은 층이나 중도층 유권자들의 당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는 걸 많이 느꼈다”며 “후보는 젊고 괜찮아 보이는데 왜 하필 그런 당으로 갔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천하람 젊은 보수 대표(왼쪽에서 두번째), 김재섭 전 '같이오름' 대표(가운데)와, 조성은 브랜드 뉴파티 대표(왼쪽에서 네번째) 등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형준 당시 통합신당준비위 공동위원장, 정병국 의원(왼쪽에서 다섯번째)와 함께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천하람 젊은 보수 대표(왼쪽에서 두번째), 김재섭 전 '같이오름' 대표(가운데)와, 조성은 브랜드 뉴파티 대표(왼쪽에서 네번째) 등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형준 당시 통합신당준비위 공동위원장, 정병국 의원(왼쪽에서 다섯번째)와 함께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서울 도봉갑에 출마했던 김재섭 통합당 후보 역시 “선거 당시 만난 분들 중에선 '아무리 네가 좋은 뜻이 있어도 당이 그런 걸 이루게 해주겠나', '너희 당이 그걸 도와주겠나' 같은 얘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당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그만큼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통합당의 수도권 출마 후보들은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서울 지역 45세 이하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은 42.5%로, 46세 이상 후보들의 40.2%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런 결과는 당 안팎에서 세대교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선방에 그쳤을 뿐 21대 국회에 진입한 젊은 인사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이다. 30대 후보 중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이는 서울 송파을에 출마한 배현진 당선인이 유일하다. 범위를 45세 이하로 넓혀도 5명(황보승희ㆍ김병욱ㆍ김형동ㆍ정희용)이 전부다. 총선 참패 이후 '830 기수론'(1980년대생ㆍ30대ㆍ2000년대 학번), '40대 후반 기수론' 등의 구호가 쏟아져 나오지만, 실제로 깃발을 들고 앞장설만한 인물이나 세력 자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원정에 출마했던 홍종기 후보는 “선거 참패 후 다들 앞장서서 세대교체를 말하는데, 원내 진입에 성공한 젊은 후보가 거의 없다 보니 목소리를 내거나 당에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며 “게다가 낙선한 후보들은 생계 문제도 해결해야 해 정치 경험을 쌓거나 역량을 키워 장기적인 세대교체에 참여하는 것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여의도에 90년생이 온다'에서 정치교체, 세대교체를 희망하는 청년 지망생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여의도에 90년생이 온다'에서 정치교체, 세대교체를 희망하는 청년 지망생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수치 면에서 절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젊은 기수들이 활약할 토양이나 체계 자체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마했다 낙선한 천하람 후보는 “통합당은 그 동안 젊은 정치인을 키운 게 아니라 선거 등 필요할 때 외부에서 스펙을 갖춘 사람을 영입해 쓰고 그 시기가 지나면 내팽개쳤다”며 “당에서 현실정치 경험을 쌓거나 선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홀대하고 ‘뉴페이스’에만 집착해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총선에 미래통합당으로 나섰던 30대 정치인 4명이 19일 저녁 선거 패배의 원인과 보수의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이윤정 예비후보와 김수민·김재섭·천하람 후보. 변선구 기자

이번 총선에 미래통합당으로 나섰던 30대 정치인 4명이 19일 저녁 선거 패배의 원인과 보수의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이윤정 예비후보와 김수민·김재섭·천하람 후보. 변선구 기자

젊은 후보들 일부는 ‘청년 비대위’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있다. 광명을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용태 후보는 “의원총회 등 당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만큼 세대교체가 이번에도 구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젊은 후보들이 우선 연대해야 한다”며 “또한 세대교체를 위해 중진 분들이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여의도연구원(통합당 싱크탱크) 등 당 내부에서 정치 경험과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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