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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절충…전 국민 주는 대신 부자들 기부 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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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2일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4인 가족 기준)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대신 고소득층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지급 대상 소득 하위 70%와 100%를 놓고 대립했던 당정 간의 대립은 일단락됐다.

당정 “기부 땐 세액공제 혜택” #하위 70%에 지급 고집 홍남기 #“지금 이 시기에…말 아끼겠다” #통합당 “고소득·저소득 편가르기”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긴급성과 보편성 원칙 아래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 부담을 경감할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발표 이후 정세균 국무총리는 입장문을 통해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인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정부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3조3400억원의 재원은 국채 발행 형식으로 메워야 한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우려하며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원안을 고수했다. 이에 민주당은 4·15 총선에서 여야가 내건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다.

미래통합당 소속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은 민주당의 발표에 대해 “자발적 기부를 어떻게 받아서 3조원이 넘는 국채를 갚겠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빨리 매듭” 후 속도, 정세균 “국회 합의 땐 수용”

총선 패배 이후 “정부 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통합당은 민주당과 정부의 합의 내용 공개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김재원 위원장은 “지금 민주당의 주장은 구체성이 없다. 정부 측과 합의됐다면 하루빨리 수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 국민 지급을 관철하고 기재부를 설득하기 위해 고소득자 자발적 기부라는 우회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자발적 기부를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은 ‘세액공제’다.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이 과정에서 지원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 ‘기부’로 간주해 세액공제를 해주겠다는 구상이다. 조 의장은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수령하지 않는 지원금을 기부금으로 인정하고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부금 세액공제율 15%를 적용할 경우 미수령액이 100만원이면 15만원의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조 의장은 “추경 규모는 전 국민에게 모두 지급하는 걸 전제로 해 편성할 것”이라며 “증액에 대해서는 추가적 세출 조정이나 국채 발행 이런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할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경제적 피해 범위가 확대된다면 과거 외환위기(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것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는 당·정·청의 치밀한 조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원내 핵심 의원은 “정 총리와 이미 사전에 조율한 뒤 절충안을 낸 것”이라며 “홍남기 부총리에 대한 설득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단언하기는 쉽지 않지만 (당정 간 입장이) 가까워졌다, 좁혀졌다는 것은 맞다”고 했다.

전날까지 정부와 여당이 우왕좌왕하던 재난지원금 논의가 하루 만에 진척을 보인 것은 청와대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아침에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매듭을 빨리 지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속도를 강조하는 청와대 의중이 전달되자 당정이 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날 비상경제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한 대답을 피했다. “지금 이 시기에 많은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을 것으로 생각돼 말을 아끼겠다”고만 했다. 재정 부실화 등을 이유로 하위 70% 지급을 고수했던 홍 부총리로서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자발적 기부 제도화란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총리까지 100% 지급에 손을 들어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날 취임 100일을 맞은 정 총리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간 갈등이 길어지면서 지원금 지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과 문 대통령의 ‘속도전’ 주문을 의식해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당은 기존의 기재부 입장을 대변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해법으로 제시된 ‘자발적 기부’라는 새로운 형식이 사실상 강요나 강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미래통합당 간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소득이 높은 국민과 낮은 국민을 편 가르고 갈라친 뒤 기부를 택하지 않은 국민을 비난의 표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국가재정과 저소득층의 위기 상황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안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편을 갈라 눈가림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김효성·손국희 기자, 세종=조현숙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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