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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복제 기로 놓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대로 슬기로운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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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에 5인방으로 출연 중인 김대명, 유연석, 전미도, 정경호, 조정석. [사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5인방으로 출연 중인 김대명, 유연석, 전미도, 정경호, 조정석. [사진 tvN]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회 6.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6회 11.7%로 올랐고, 극 중 조정석이 부른 OST 수록곡 ‘아로하’(2001년 쿨 원곡)는 음원차트 1위를 달린다. 12부작으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2018) 최고 시청률(11.2%)을 넘어 이들의 최고 히트작인 ‘응답하라 1988’(2015~2016)의 기록(18.8%)도 넘볼만한 추세다. 의대 99학번 동기인 5인방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가 삐져나오고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장면도 여럿이다. 한데 마냥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왜 이들의 이야기는 ‘슬기롭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신원호-이우정표 아날로그 감성 또 통해 #시청률 전작 ‘감빵생활’ 넘어 ‘응사’ 뒤쫓아 #“산만하고 이상적, 현실과 괴리감” 지적도

가장 큰 문제는 산만함에서 비롯된다. 주인공 5명은 같은 병원, 다른 과에서 일하는 전문의다. 이익준(조정석)은 간담췌외과, 안정원(유연석)은 소아외과, 김준완(정경호)은 흉부외과, 양석형(김대명)은 산부인과, 채송화(전미도)는 신경외과 부교수로 나온다. 이들이 맡은 과마다 특성이 다른 만큼 이끌고 있는 팀도 다르다.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만 39명에 달할 정도. 집중력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메디컬’이라 쓰고 ‘라이프’라 읽는” 기획의도처럼 본격 의학 드라마라 하기엔 일상의 비중이 높고, 청춘 드라마라 하기엔 병원이 상당 부분 차지하는 탓이다.

“병원보다 밴드가 매력적인 의학 드라마”  

대학 시절 밴드를 결성해 개그 동아리로 활동했던 이들은 마흔에 다시 밴드에 도전한다. [사진 tvN]

대학 시절 밴드를 결성해 개그 동아리로 활동했던 이들은 마흔에 다시 밴드에 도전한다. [사진 tvN]

이들이 대학 시절 결성한 밴드가 이야기의 한 축인 만큼 과거 회상신도 적지 않다. 어떻게 처음 만나 친해지게 됐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밴드를 시작하게 됐는지가 인물별로 촘촘하게 드러난다. ‘응답하라 1997’(2012) ‘응답하라 1994’(2013) 등 시대별 고증을 철저하게 해온 제작진의 역량이 발휘돼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을 깨알같이 재현한다. 마치 ‘응답하라 1999’를 보는 기분이다. 그 시절 흐르는 배경음악(BGM) 역시 한곡 한곡 주옥같아서 밴드가 합주할 때면 뭉클함이 차오른다. 권진아의 ‘론리 나잇’(1997년 부활 원곡)부터 곽진언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1990년 동물원 원곡)까지 이야기 전개에 맞춰 발매되는 OST가 화제를 모으는 것도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높은 타율을 자랑한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문법은 이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자기복제의 위험성을 안겼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술 장면이 아닌 밴드가 등장하는 부분”이라며 “‘응답하라’부터 시작된 나도 저런 또래 집단에 속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판타지를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불륜과 스릴러로 점철돼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드라마들 사이에서 힐링을 선사하지만 이야기의 명확한 구심점이 없어 맥이 끊기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다 갖춘 금수저들 추억담, 공감 어려워”

의대 99학번 동기인 이들의 학창시절.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을 고루 차용했다. [사진 tvN]

의대 99학번 동기인 이들의 학창시절.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을 고루 차용했다. [사진 tvN]

메디컬 드라마 형식을 차용하면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이식ㆍ아동학대 등 매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이상적으로 다뤄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5인방은 하나같이 실력이 출중할 뿐더러 환자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인물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선망받는 학력과 직업, 재력을 모두 갖춘 금수저들의 추억담이 보편성을 가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작진이 대중의 정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기능적으로 활용해 캐릭터는 정형화되고,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며 “자기복제가 고착화되면서 ‘응답하라’가 불러온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자체를 새로운 형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는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프렌즈’ 같았으면 좋겠다”는 신원호 PD의 말처럼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응답하라’의 남편 찾기처럼 분명한 미션이 없고, ‘감빵생활’처럼 악역이 등장하지도 않아서 상대적으로 느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트콤은 본래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시추에이션의 반복이다. 5명이 출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시즌제를 위한 포석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이야기의 구조가 열려 있어야 한단 얘기다.

“캐릭터 중심 시트콤, 예능에 가까워”

각각 신경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외과, 간담췌외과 등에서 일하는 모습. [사진 tvN]

각각 신경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외과, 간담췌외과 등에서 일하는 모습. [사진 tvN]

유튜브 등을 통해 ‘순풍 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등 과거 큰 사랑을 받은 시트콤이 꾸준히 유통되고 있지만 새로운 히트작이 등장하지 않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주 52시간 근무 등 제작 환경도 변화하고,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과거처럼 주 5회 방영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긴 힘들다. 하지만 수요가 있기 때문에 TV조선 예능 드라마 ‘어쩌다 가족’ 등 다양한 포맷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2회까지 방영된 ‘어쩌다 가족’은 스태프 임금 미지급 문제로 2주째 결방 중이다.

신원호 PD 역시 제작발표회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 주 1회 방송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모든 드라마가 주 2회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형식과 포맷의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 그는 “이 드라마가 반드시 잘돼서 제작환경에 따라 시청형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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