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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정부 체면 살려준 국민의 저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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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세 가지 극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첫째는 삼성전자가 중소기업을 도와 마스크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장면이다. 그중 한 곳이 전남 장성군에 있는 화진산업이다. 삼성전자가 10여 명을 파견해 생산 공정을 개선했더니 불량률이 줄어 생산량이 두 배로 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산 속도에 맞게 인력과 기기를 재배치한 결과다. 현대차와 코오롱인더스트리, 도레이첨단소재는 직접 마스크·필터 생산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공적 마스크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 마스크 대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국민적 대응으로 국난 극복 중 #축적된 의료체계·산업기반 덕 #정부는 도움 절실한 곳 챙겨야

세계를 놀라게 한 씨젠의 진단키트 개발은 어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출을 요청한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은 씨젠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코젠바이오텍·솔젠트·에스디바이오센서 등 진단 시약 업체 관계자도 있었다. 이들 업체에는 지금 각국에서 수출 주문이 쇄도한다. 한국은 별안간 K방역·K의료에서도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또 하나 의사·간호사·약사 등 의료진의 헌신은 최고의 명장면이다. 수백 명의 의료진이 생업을 접고 대구로 달려갔다. 한 시간만 입어도 땀범벅이 되는 방호복을 며칠씩 입고 사투를 벌였다. 그 덕분에 대구시는 암울한 처지를 떨쳐내고 세계적 방역 모범도시로 재탄생했다. 의료진의 헌신이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무렵 시작된 세 가지 반전 장면도 주목된다. 첫째는 미국·유럽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다. 무서운 속도로 감염 환자가 늘면서 미국·유럽은 이동 봉쇄와 공장 셧다운이 확산했다. 이에 한국은 세계의 왕따에서 찬사의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정적 반전은 처음엔 풀 죽었던 정부가 기(氣)를 펴는 장면이었다.

정부는 초기 방역에 허점을 보이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흔들리는 경제·외교·안보 분야와 달리 안전 문제만큼은 잘 대처할 것이란 기대는 금세 빗나갔다. 결정적 실수는 중국에서 코로나가 창궐하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두면서 나왔다. 이 여파로 한국은 코로나 창궐 초기, 발원지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국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세계 최고의 ‘비자 파워’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180개 넘는 나라에서 우리 국민의 입국을 금지·제한했다. 코로나 감염에 따른 희생자도 230명을 돌파했다. 적지 않은 국민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이 정도로 피해를 줄인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탄탄한 기초를 쌓은 의료체계와 산업 기반 덕분이다. 이렇게 축적된 국가 자산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반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아가 한국은 지금 하루아침에 선망의 대상이 됐다. 세계 각국 정상이 문 대통령에게 “방역 기법을 전수해 달라”고 러브콜을 보낸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인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 순간에도 병상과 인공호흡기, 방호복·마스크가 부족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사이 터무니없게 땅에 떨어졌던 우리의 국가 위상과 국격(國格)도 다시 회복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은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축적된 국가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발판으로 정부 대응능력도 일취월장이다. 문 대통령은 “각국의 방역조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학자, 의사, 기업인 등 필수 인력의 이동을 허용하자”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제안했다. 이번 사태 대응의 출발은 불안했지만 촘촘한 행정력과 국민 저력을 발판 삼아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 받는 세계적 찬사를 정권의 능력 덕분으로 착각하거나 자랑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유혹이 생길 때마다 국민의 저력이 정부의 체면을 세워줬다는 현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 더욱 깊숙이 다가가라. 천문학적 돈을 소상공인에게 지원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대출을 받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소상공인이 많다. 공치사는 나중에 해도 좋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