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지급'여당 압박에도… "70% 지급 사수" 버티는 홍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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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대응 여력을 쌓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수급 범위를 놓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0% 지급'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지급'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홍 부총리는 꿈쩍 앉는 모양새다. 코로나 19 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향후 대응을 위한 여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당은 '100% 지급' 입장에 변화가 없다. 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국회를 넘어간 상황에서 당장 기준 변경및 추경 증액 여부의 칼자루는 정치권이 쥐고 있다. 기재부가 증액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당정 간 파열음은 일파만파 확산할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했다. 연합

홍남기, "국채발행 여력 조금이라도 축적해야" 

홍 부총리는 20일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코로나19 파급 영향이 언제까지, 어떻게 나타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추가 재정 역할과 국채발행 여력을 조금이라도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정부가 '70% 기준'을 사수하려는 배경에 대해 "재정 당국이 무조건 재정을 아끼자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가능한 우선순위가 있는 분야에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원칙에 대한 부총리의 태도는 매우 단호하다"고 전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인영, "'국회의 시간' 시작" 

하지만 홍 부총리의 의지가 끝까지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재난지원금 논의의 공이 국회로 넘어가서다. 이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국회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국회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심의 과정에서 추경안을 증액해 지역·소득·계층 구분 없이 전 가구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국채 발행 등으로 3조~4조원의 재원만 추가로 마련하면 전 국민 지급이 가능하다는 것이 여당의 계산이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국회 논의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고 기재부 설득도 불가능하지 않다"며 "다른 정당 역시 100% 지급을 쭉 주장해 온 데다 내수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 뒤늦게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정부가 제출한 7조6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3조~4조원가량 증액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편성하면서 추가 빚을 내지 않고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증액 시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증액 거부권'카드 나올까 

일각에서는 홍 부총리가 재난지원금 증액을 끝까지 반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증액 거부권’을 통해서다. 헌법 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비용 명세)을 설치할 수 없다. 이번 추경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지급 규모를 늘릴 수 없다. 이럴 경우 파장이 당정 간 갈등이 확산할 수 있는 데다, 가뜩이나 '긴급'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 재난지원금 지급 절차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 안팎에서는 "기재부가 거부권까지 쓰기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만큼 전 국민에게 주되 지급액을 낮추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줄이는 절충안이 도출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추가 빚 발행은 향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외 국채 수요를 바탕으로 국채를 사실상 무한대로 발행할 수 있는 미국·일본 등 국가와 한국의 재정 지출을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며 "향후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을 미래 세대가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만큼 과도한 재정 부담을 지워서는 곤란하다"고 조언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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