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 "21대 국회는 제발 공부 좀 하고 오세요"

중앙일보

입력 2020.04.16 05:00

IT 벤처스타트업이 모여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임현동 기자

IT 벤처스타트업이 모여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임현동 기자

‘혁신성장’과 ‘벤처창업가 지원’.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건 1호 공약들이다. 두 거대 정당이 정책공약집 첫 페이지에 '혁신'과 '창업'을 걸었다. 하지만 선거운동 기간 내내 벤처·스타트업계 반응은 뜨뜻 미지근했다. 이미 20대 국회에서 벤처·스타트업계 염원을 담아 발의된 규제개혁 법안들이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폐기된 일이 반복된 탓이다. 21대 국회에서 상당수 의석을 차지할 두 정당의 1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걸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중앙일보는 총선이 치러진 15일 한국의 혁신기업들이 모인 판교테크노밸리 안팎의 벤처·스타트업인들에게 제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4년, 참 짧다. 속도 내라”

무엇보다 빠른 속도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법안 발의 후 상임위원회에서 잠만 자다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시급한 문제들은 21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속도를 내야한다는 얘기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4년은 결코 길지 않다”며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로 주행할 수 있게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2017년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고, 그외 수많은 스타트업 관련 법안도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야 이견이 없는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 관련 법안은 당장 내일부터라도 국회가 논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 폐기된 법안은 21대 국회가 우선 논의해라는 제안도 있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웰트의 강성지 대표는 “4월 15일 이후 새로 생기는 문제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21대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20대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계속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타다를 멈춘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처럼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통과된 법안들도 재검토 차원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벤처·스타트업 관련 주요 공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벤처·스타트업 관련 주요 공약.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회의원, 공부 좀 해라”

국회의원들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국회 역할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이번 선거에 IT벤처인이 직접 만든 ‘규제개혁당’ 창당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를 중단했다.

고 회장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이미지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됐는데, 국내 법과 규제는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 시대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산업을 키워내려면 포지티브 규제(법에서 허용한 일만 가능)를 네거티브 규제(법이 금지하지 않은 일은 모두 허용)로 바꿔야 한다”며 “21대 국회는 제발 공부 좀 해서 네거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현행 법에 접목시킬지 해답을 내놓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에서 열린 '규제개혁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에서 열린 '규제개혁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혁신성장의 방향과 질적 수준을 국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이사는 “양당 공약을 다 살펴봤는데 몇년째 '예산을 더 넣어 대형 스타트업을 더 많이 만들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는 미국처럼 스타트업 자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모델을 할건지, 일본처럼 일정 규모로 성장하면 대기업에 팔리도록 할 건지 성장전략의 방향을 정부가 잡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많이 만드는게 목표라는데, 유니콘을 넘어 대기업으로 키우려면 지금보다 규제가 더 없어야 하고, 적당한 크기에서 대기업이 인수하도록 하려면 스타트업에 돈을 너무 많이 지원하면 안 되니, 국회가 이런 방향을 갖고 입법활동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기회로 만들어 주길”

코로나19가 몰고 올 경기침체에 대한 지원도 강조했다. 비대면 세탁서비스 ‘런드리고’ 창업자인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모든 기업이 다 힘들겠지만 스타트업은 위기 상황에 특히 더 취약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투자가 경색된 만큼 적극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21대 국회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자의반 타의반 창업자들이 쏟아지면서 벤처기업 붐이 일었다"며 "이번 코로나19 위기도 사회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원격의료처럼 기존 산업의 반대로 새로운 도전이 가로 막혔던 분야도 코로나19 이후엔 다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국회가 이런 새로운 성장 기회를 위해 더 과감하게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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