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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SNS 올린 '구미경찰서 재낄준비'…촉법살인 비극 시작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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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람 죽인 13세 소년의 SNS가 불러온 분노의 뒤를 좇다

대전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중학생들의 SNS. 차를 훔쳐 주유소를 털다 잡혀온 경찰서에서 셀카(맨 왼쪽)를 찍어 올리고, 도난 차량 앞에서 인증샷(가운데)을 남겼다. 심지어 이런 범죄를 보도한 기사를 직접 공유해 자랑했다. 그후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캡처]

대전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중학생들의 SNS. 차를 훔쳐 주유소를 털다 잡혀온 경찰서에서 셀카(맨 왼쪽)를 찍어 올리고, 도난 차량 앞에서 인증샷(가운데)을 남겼다. 심지어 이런 범죄를 보도한 기사를 직접 공유해 자랑했다. 그후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캡처]

‘구미경찰서 재낄(제칠) 준비.’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밤마다 차 훔쳐 사고친 소년들 #SNS에 범죄 전시하고 박수받아 #처벌 못하니 범행 반복하다 참사 #법 대신 사적 응징 기댄 악순환도

담배를 문 채 경찰서에 앉아 태연자약하게 페이스북에 올린 이 셀카 한장이 8일 뒤 그 비극의 예고편이었다. 코로나19로 초·중·고 개학이 미뤄지고 있던 지난 3월 21일 새벽, 훔친 렌터카로 경북 구미의 한 주유소를 털다 경찰서로 잡혀 온 셀카 속 네 소년의 얼굴에선 처벌받을까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액션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듯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찍은 이 인증샷을 한 소년이 자기 SNS에 올리자마자 친구들은 앞다퉈 ‘좋아요’를 눌렀다.

이틀 뒤인 23일, 그리고 다시 이틀 뒤인 25일 연거푸 똑같은 수법으로 렌터카를 훔쳐 사고를 냈고, 그때마다 맛집 순례하듯 전국 곳곳의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인증샷을 추가했다.

자신들의 범행을 보도한 ‘무면허 중학생들 렌터카 훔쳐 한밤중 1시간 광란의 질주’라는 기사를 SNS에 공유하면서 “분노의 질주…200 찍엇(었)지”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친구들도 ‘스타네 스타’ ‘유명해’라는 댓글로 호응했다. 현실 속 범죄가 이들의 SNS 속에선 로그인·로그아웃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재밌는 온라인 게임 같았다.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들(2006년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또다시 서울에서 렌터카를 훔쳐 대전까지 질주하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이 중학생들은 월세라도 벌어보겠다고 오토바이 배달 알바 중이던 대학 신입생(18)을 치어 숨지게 했다. 학교도, 부모도, 심지어 경찰도 막지 못한 이들의 범죄는 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면서 비로소 ‘잠시’ 멈췄다.

경찰 추격을 피해 대전 도심을 폭주하는 무면허 중학생들의 차량. [사진 JTBC 영상 캡처]

경찰 추격을 피해 대전 도심을 폭주하는 무면허 중학생들의 차량. [사진 JTBC 영상 캡처]

하지만 범죄를 오락처럼 즐기며 SNS에 과시하는 비정상적 현실 인식은 여전했다. 사고 다음 날 오후, 현장에서 도망간 2명을 포함해 절도 차량에 동승했던 8명의 남녀 중학생 전원이 검거된 그 순간까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없었다. 3명만 소년분류심사원으로 넘겨지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간 탓도 있지만, 심사원에 들어간 아이조차 SNS에 ‘편지 써줘 한 달 뒤에 보자’라는 메시지를 올리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살인을 해도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이 불가능(※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최장 2년의 소년원 보호처분만 가능)하다. 속내를 알 길이 없지만 촉법소년 폐지론자들 주장처럼 아이들이 약한 처벌을 영악하게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을 직접 조사한 대전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사망사고라 가해자를 인신 구금할 필요가 있었지만 촉법소년들이라 불가능했다”며 “다음날 판사에게 긴급동행명령장을 발부받고 나서야 직접 운전한 1명만 우선 구금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이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사건 전후 아이들이 주고받은 SNS 대화창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 타지 말자 우리 X 됐다’거나 ‘사람 죽임 ㅈ됐어’라며 죽음마저 가볍게 여겼다. 이런 행동을 비판하는 메시지엔 ‘X발 죽이고 싶어서 죽였냐’거나 ‘페북에서 (나한테) 욕 존나 하니까 화가 나지’라며 적반하장 식 태도를 보였다.

사망한 피해자의 여자친구가 지난 2일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이라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며 청와대 게시판에 엄벌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린 지 2주 만에 93만명 이상이 동의할 정도로 이번 사건은 지금 거대한 국민적 분노에 맞닥뜨렸다. 관련 기사마다 ‘수차례 (범죄를) 반복한 거로 아는데 법이 풀어주니 결국 사람을 죽인 것’이라며 분노하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들한테 돈 좀 찔러주고 살인교사 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며 ‘촉법살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촉법소년 논란에다 이번엔 가해자가 반성 대신 이 상황을 즐기는듯한 모습이 SNS로 퍼지며 분노의 파고가 더 높아졌다.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는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없다는 촉법소년 수사의 허점이 거꾸로 SNS상에서 분노를 촉발하는 역풍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범죄 현장 인증샷뿐 아니라 수사 과정까지 사실상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신상공개를 못 하지만 SNS 세상에선 달랐다. 순식간에 신상이 털렸다. 실명과 사진은 물론 다양한 SNS 계정, 가족관계, 일부 학생은 휴대전화 번호까지 고스란히 SNS에 까발려졌다. 주변 친구를 비롯한 또래들이 즉각 사적 응징에 나서면서 뺑소니 사망 사건 가해자였던 이 아이들은 이제 거꾸로 악플러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자경단을 자처하는 이들은 가해자의 SNS 계정에 들어가 악플을 달고 직접 전화를 걸어 욕을 하거나 욕설을 주고받은 문자를 캡처해 올리며 법의 힘을 빌리는 대신 스스로의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 ‘(가해자) 주소를 알려주면 내가 가서 죽이겠다’는 글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온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들을 향한 공격 역시 우려할만한 범죄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회적 충격을 안겼던 지난 2017년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을 담당했던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제대로 처벌이 안 되니 대중들이 그런 식으로라도 분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 사건 당시엔 피범벅이 된 여중생 사진 한 장과 함께 “나 심해?” “교도소 들어갈 것 같아?”라는 또래 폭행 가해자의 SNS 캡처 글이 퍼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번처럼 일부러 범죄를 과시한 게 아니라 지인이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유출한 것이었지만 비난 여론은 들끓었고, 소년법 개정 요구가 빗발쳤다. 당시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고 초등학생도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는 주지 않은 채 과도한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눌려 이내 잠잠해졌다. SNS 탓에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점점 더 빠르고 쉽게 알려져 전국적인 분노를 유발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 보니 결말은 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이 과시용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SNS에 전시하는 건 전 세계적 고민거리다. 페이스북은 촉법소년 기준인 만 14세 이상만 가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뺑소니 중학생들은 원칙적으론 가입도 안 되는 훨씬 어린 나이에 이미 SNS로 범죄를 자랑하고 박수까지 받다가 경찰서 신세를 지고 신상이 털린 후에야 스스로 계정을 닫아버렸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가짜 나이로 가입하면 AI 기술로 잡아내 계정을 정지시킨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사건은 ‘개인 정보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자체 약관조차 유명무실하다는 것만 확인시켜줬다.

독일의 미디어 전문가 사샤 로보가 『리얼리티 쇼크』에서 “SNS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건만 SNS 부작용에 대처할 만한 적절한 처방전을 찾지 못했다”고 우려한 이유다. 형사처벌할 수 있는 적정 연령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지만 SNS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반복되는 촉법소년 논란 ‘호통판사’ 천종호가 답하다

천종호. 프리랜서 공정식

천종호. 프리랜서 공정식

소년부 판사 생활을 오래 하며 법정에서 아이들을 꾸짖는 ‘호통판사’로 유명한 천종호(사진) 판사에게 소년법 폐지나 처벌 강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연령을 낮출 수는 있겠지만 지금도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지는 않다”며 “특정 범죄에 대해서 형사처벌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 “SNS 탓에 잔혹한 일부 범죄가 마치 전부인 양 부각되지만 통계로 보면 과거에 비해 더 잔혹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SNS에 범죄를 자랑하는 건 잔인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그 파장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미성숙함의 근거”라는 주장이다. 이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자랑질이 아니라 자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부모가 자기 아이를 제압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자기를 방어하는 인권 얘기만 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인권 교육을 하지 않아 벌어지는 문제”라고 했다.

다만 이번 뺑소니 사건 같은 재범을 막기 위해선 정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한 달의 공백 없이 곧바로 가정법원에 데려가 분류심사원 임시 위탁을 명령하는 ‘강제 동행 제도’ 도입이다. 지금은 판사한테 긴급 임의동행영장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