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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임무 없어질 때까지 코로나 현장 지키며 환자 마음까지 간호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김미란 간호사가 관리병동서 고글, 방호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소중을 위해 촬영한 사진이다. 처음 방호복 착용 당시 고군분투했다던 그는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방호복 입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김미란 간호사가 관리병동서 고글, 방호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소중을 위해 촬영한 사진이다. 처음 방호복 착용 당시 고군분투했다던 그는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방호복 입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 등을 반영, 2020년을 '세계 간호사와 조산사의 해'로 정했습니다. WHO는 이들이 주요 건강 관리, 지역사회의 기반 유지 등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국내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후 이른바 '영웅'으로 떠올랐죠. 세계 유수 언론은 국내 의료진의 즉각적인 대처, 사명감 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전선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미란 간호사는 지난 1988년부터 간호사 경력을 시작했죠. 1994년 7월부터는 국제협력단해외봉사단으로 파견됐고요. 2015년 네팔 지진 땐 대한적십자사 의료단에 참여했고, 2016년부터는 요양병원서 이·미용 봉사를 했죠. 지난 1월 말 코로나19 확산이 시작하자 발을 동동 구르다 대한간호협회에 봉사를 지원, 3월 2일부터 대구가톨릭대병원 관리병동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리병동은 음압격리병동의 변경된 명칭이에요. 대구가톨릭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에 혐오감을 조성할 수 있어 '격리병동'에서 관리병동으로 명칭을 바꾼 겁니다. 소중과의 인터뷰에 응한 김 간호사는 이날 오후 2시 출근을 앞두고 있었죠. 출근해서 8시간 근무하고 오후 10시 반쯤 숙소에 들어오는 일상이지만 간호사 동료들에게 매일 감동하며 힘든 일도 잊습니다. 김 간호사와의 일문일답을 공유합니다.

김 간호사가 지난 2015년 5월 네팔 지진 당시 대한적십자사 의료단 파견으로 현지 봉사 갔던 모습이다.

김 간호사가 지난 2015년 5월 네팔 지진 당시 대한적십자사 의료단 파견으로 현지 봉사 갔던 모습이다.

Q. 어떻게 지원하셨나요.
뉴스에서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죠. 양심이 편하지 않았어요.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했더니 바쁜지 못 받더라고요. e메일로 지원하는 방법이 있어 신청했죠. 즉각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라고요(웃음). 3일 후 토요일 오후 2시 45분쯤 연락받고 합격자 발표처럼 감사했죠. 별도 지원서를 쓰는 건 아니고요. e메일로 신청할 때 이름, 주소, 생년월일, 지원 구분 항목 등이 있죠. 지원 구분에선 간호사, 의사, 임상병리사를 구분하고요. 언제까지 할 건지도 썼죠. 저는 필요 없을 때까지 일하겠다고 했죠. 직장이 있든지 사후 계획이 있 있으면 '2주, 한 달' 등 기한을 정하기도 합니다. 저는 ‘너의 봉사는 필요 없어’ 할 때까지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김 간호사가 적십자사 의료단 파견으로 현지 봉사 갔던 사진이다. 이보다 앞선 1994년에도 네팔해외봉사단으로 참여한 적 있어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게 김 간호사의 말이다.

김 간호사가 적십자사 의료단 파견으로 현지 봉사 갔던 사진이다. 이보다 앞선 1994년에도 네팔해외봉사단으로 참여한 적 있어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게 김 간호사의 말이다.

Q. 대구로 봉사를 지원할 때 지인의 반응은요.
주변에선 서울 지근에서도 서로 마스크 끼고 피하는 상황인데 대구라는 위험 핵심 지역을 가느냐 했죠. 또, 다른 매체 인터뷰로 방송에 나간 장면이 있는데요. 존경한다, 멋있다 등의 말을 들었죠. 창피했어요. ‘이 정도는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어 부끄러웠죠. 가족이 저를 즐겁게 보내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해서 가족에게 전화하죠. 힘든 티 안 내고요.

김 간호사(가장 왼쪽)가 동료 간호사들과 관리병동서 쉬는 시간에 촬영한 사진이다. 방호복으로 몸을 감쌌다.

김 간호사(가장 왼쪽)가 동료 간호사들과 관리병동서 쉬는 시간에 촬영한 사진이다. 방호복으로 몸을 감쌌다.

김 간호사가 지난 2016년부터 요양병원서 이·미용(이발+미용) 봉사 등을 하던 모습이다.

김 간호사가 지난 2016년부터 요양병원서 이·미용(이발+미용) 봉사 등을 하던 모습이다.

Q. 과거 봉사 경험이 대구로 지원 가는 데 동기가 됐는지요.
선을 굳게 그을 만한 도움이나 동기가 됐다 등은 아니지만요. 행정 절차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됐죠. 말 그대로 난리예요. 쉽게 얘기하면요. 의료진이 부족한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거고요. 행정업무 하시는 분들 있죠. 질병관리본부·중앙사고수습본부 등이요.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해요. 절차가 빨리 진행이 안 되거나 잘 모르거나 적극적인 액션이 안 나와도 많이 이해하게 돼요. 이해 못 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분들 놀고 있지 않다’ 등이요. 그런 정도지 간호 행위를 하는데 좌우하는 건 아니죠.

Q. 지금 근무하시는 곳은요.
저는 음압병동, 즉 코로나격리병동서 일해요. 마스크·고글 쓰고 방호복 입죠.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는 22~24명 정도예요. 봉사자는 4명에서 시작해 늘어났는데요. 병동을 격리하고 일찍 끝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계약이 끝나서 철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우리 병동은 저 포함해서 같은 타임에 평균 4~5명 돌아갔습니다.

쉬는시간에 소중을 위해 김 간호사가 사진을 찍었다. 온 몸이 땀에 젖었다. 그는 이 땐 기진맥진해 물도 제대로 마시기 힘들다고 말한다.

쉬는시간에 소중을 위해 김 간호사가 사진을 찍었다. 온 몸이 땀에 젖었다. 그는 이 땐 기진맥진해 물도 제대로 마시기 힘들다고 말한다.

Q. 방호복 착용 과정이 복잡하다고 들었어요.

방호복 착용의 어려움은요. 비닐로 온몸을 다 둘러 감싸야 하는 것에서 옵니다. 환자를 접촉할 땐 비닐 앞치마를 또 입죠. 방호복 관련 라텍스 장갑도 두 개 끼고요. 안에는 항상 땀이 줄줄 흘러요. 일 내용이 힘든 게 아니라 방호복을 몸이 잘 못 견뎌 힘들죠. 첫날에는 정말 쓰러질 것 같더군요.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말도 못하고요. 첫날은 그렇게 넘겼죠. 못하겠다고 말은 못하겠고 큰일이더군요. 조금씩 2시간마다 잠깐 쉬었다 나오라는 말이 나왔죠. 전체 8시간 근무하는데 2시간 쉰다는 건 불가능하죠. 조정한 게 2시간 일하고 30분 쉬는 거였습니다. 다시 2시간 일하고 점심도 먹고 화장실도 갔죠. 우리 봉사단 간호사는 수술복을 바닥에 두고 찍은 사진도 있는데요. 젖다 못해 발에 땀이 줄줄 흐를 때가 많았어요. 저는 부직포 수술복을 입죠. 흡수가 안 돼요. 그러니 땀이 계속 바닥으로 흘렀죠.

Q. 일부 코로나19 확진 환자에 대한 부정 여론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나요.
신천지 등 단체에 있어 밀폐된 공간, 집단 내 감염 확률이 높으니 걱정하는 것은 맞죠.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부 지침대로 따르는 게 맞고요. 정부에서 잘 지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거든요. 잘 따랐으면 해요. 국민들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디든 따르지 않는 일부의 민폐는 있죠.

김 간호사가 관리병동서 근무 후 방호복을 벗고 웃은 채 사진을 찍어 보였다. 관리병동서 근무하면 땀에 옷이 전부 젖을 정도로 기진맥진하지만 주위 간호사 동료 등을 보면 힘을 얻는다.

김 간호사가 관리병동서 근무 후 방호복을 벗고 웃은 채 사진을 찍어 보였다. 관리병동서 근무하면 땀에 옷이 전부 젖을 정도로 기진맥진하지만 주위 간호사 동료 등을 보면 힘을 얻는다.

Q. 의료진들의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힘들긴 힘들어요. 지치죠. 우리가 다른 건 뭐냐면요. 보통 직장이라고 하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병원에 직장이 있어요. 코로나 현장은 방호복 입고 환자 보는 것도 힘든데 일상도 못 누리죠. 저도 격리된 상태서 환자를 보는 겁니다. 이런 게 지칠 수는 있죠. 전 지금 음압격리병동과 숙소만 오가요. 밖에 나갈 수는 있지만 조심하는 거죠. 내가 확진자라고 생각하면 엄중한 형벌을 받는 느낌이잖아요. 기준점은 저예요. 의료인으로서의 생각과 기준에 따르는 거죠. 제가 여러 병원에 다녀보거나 실태 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요. 지금 근무하는 병원서 감동할 일이 많습니다. 간호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해요. 간호사뿐 아니라 일반 행정 업무하는 직원들도 친절합니다. 피곤하고 힘든 것도 병원 직원, 간호사 동료 등을 통해 많이 해소돼요.

Q.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구 시청서 지정한 숙소에 묵고 있죠. 본인이 선택한 숙소에서 묵어도 되지만요. 저는 병원에서 가까운 곳이 좋아 선택했죠. 숙소에선 컵라면·편의점 도시락 등을 먹어요. 곰탕·햇반·죽 등 포장음식이 다양하더라고요. 병원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은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오는 걸로 보였죠. 매번 도시락이 달랐거든요. 최근에는 병원 내에서 주시는 걸로 보입니다. '고맙다'는 느낌이 들죠. 가톨릭대학병원은 직원들도 친절하고 의료진에게 간식을 많이 챙기려 애쓰는 게 보여요. 문제는 근무 중에는 너무 땀이 많이 나와 먹기 힘들다는 거예요. 물만 마시고 들어가곤 하죠. 적정 정도의 시간은 휴식을 통해 충전하고 물을 마시죠. 그럼 괜찮아져요. 쉴 땐 방호복을 '불결'로 취급하니 벗거든요. 옷을 벗는 게 그 자체로 쉬는 셈이죠. 이후 새 방호복을 입고 다시 들어가요. 격리병동 안에 쉬는 공간이 따로 있죠.

김 간호사가 작성했던 일기장 일부다. 코로나19 이후 변한 병동 모습 등에 대한 소감을 진솔하게 담았다.

김 간호사가 작성했던 일기장 일부다. 코로나19 이후 변한 병동 모습 등에 대한 소감을 진솔하게 담았다.

Q. 후배 간호사, 간호사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제가 공부한 대한적십자사에선 1학년 1학기 때 창립자인 앙리 뒤낭, 창립 과정을 배워요. 가관식(간호사가 되기 전 간호사용 모자를 써보는 행사) 땐 촛불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습니다. 나이팅게일도 전쟁 상황서 알려졌잖아요. 최근 두 가지를 생각한 것은요. 학교를 참 잘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 과목, 과정이 없었더라면 어려운 시기에 간호사 일을 하고 싶진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나이팅게일을 이어받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도 좋아요. 어떤 행위를 해서 돈을 받는 직업으로는 전쟁 상황, 어려울 때 사용되어지기 어렵죠. 앙리 뒤낭, 나이팅게일 등 선임자 공부를 했으므로 제게 도전의식이 생긴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선배들의 선례를 보여주는 게 도움되죠. 제가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도요. 개인만 드러내는 거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거죠. 우쭐할 수 있는 게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인터뷰가 한 사람에게라도 선례가 돼 자극을 주고 도전의식을 심는다면 고마울 거라는 생각이 있죠. 또, 환자의 마음까지 간호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육체적·심리적 아픔을 다 간호할 수 있어야 하죠. 전임 간호라고 부르는데요. 조심스럽지만 이 두 부분을 다 충족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간호사의 일기 

갑자기 거리에 사람이 없었고 뉴스 하단에는 '코로나' 관련 특보가 이어진다. 약국 앞엔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늘어서 있다. 마주하는 사람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들이다. 서로 만나고 밥을 먹거나 안고 웃고 떠들던 시간이 그립다. 물건 사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마트, 병문안이 자유로웠던 방문객들도 이젠 볼 수 없다. 병원 의료인들은 방호복을 입었다. 병동 안엔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여 우주인 같다. 낯설다. 병동은 환자, 간호사, 방호복만 존재한다. 방호복을 입으면 눈만 보인다. 서로 많은 말을 할 수도 없고 듣기도 어렵다. 필요한 말, 필요한 행동만 한다. 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갑자기 달라져 헤쳐나가야 할 사람은 환자다. 몸도 아픈데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글=김미란 간호사, 정리=강민혜 기자)

학생기자단 와글와글 '해시태그 간호사'

[김승연]

[김승연]

#땀
김승연(서울 신동초 4)
신문에서 간호사님이 땀에 젖은 가운을 입고 일하시는 걸 봤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백채희]

[백채희]

#백의_천사
백채희(경기도 금호초 6)
간호사들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는 걸 감안하고 생명을 살리러 간 행동 자체가 천사로 보이네요.

[윤현지]

[윤현지]

#메리_제인_시콜  
윤현지(서울 잠신초 5)
당시 가장 위험한 전염병인 콜레라에 걸린 환자들을 직접 나서 치료했던 시콜의 모습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간호사와 비슷해요.

[안예성]

[안예성]

#헌신  
안예성(인천 연성중 1)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나서 간호사들이 힘드셔도 계속 환자들을 간호하시는 걸 보니 헌신한다는 마음이 들었죠.

[오예진]

[오예진]

#너(Nur)벤져스  
오예진(서울 묘곡초 6)
방호복을 입고 대구로 모여든 의료진들의 모습이 지구를 지키려는 어벤져스로 보이네요.

[유아라]

[유아라]

#치유 #친절  
유아라 (서울 잠신초 5)
간호사 하면 환자를 꾸준히 친절하게 돌봐주므로 치유와 친절이 떠올라요.

[이주영]

[이주영]

#어벤져스
이주영 (서울 녹천초 6)
코로나19 때 어벤져스처럼 짠하고 나타나 환자를 옆에서 돕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한채연]

[한채연]

#엄마  
한채연 (경기도 불곡중 1)
엄마가 자식을 돌보듯 환자에게 사랑·희생을 주기 때문이죠. 이 시국에 힘들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쉴 새 없이 일하시며 코로나19 환자에게 헌신하시는 간호사들의 모습을 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홍섬]

[홍섬]

#독립투사  
홍섬 (서울 서사부초 6)
뉴스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등 의료인의 얼굴에 생긴 고글·마스크 흔적을 보면서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독립투사가 떠올랐습니다.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 애쓰는 간호사를 응원합니다.

[김가은]

[김가은]

#천사
김가은(경기도 용인신봉초 4)
천사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환자를 대하기 때문이에요. 코로나19로 희생하는 일이 더 늘어났을 거예요.

[안효빈]

[안효빈]

#농부
안효빈(경기도 탄천초 6)
농부들이 곡물을 수확할 때까지 수많은 노력이 들어가죠. 간호사도 마찬가지예요. 생명 하나를 살리려면 수많은 힘, 정신력,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힘 탓에 어쩔 수 없이 안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죠. 코로나19로 많은 의료인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고마운 분들이에요.

[이다예]

[이다예]

#손길
이다예(서울 리라초 4)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많이 필요했던 힘은 간호사들의 손길이죠.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땀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요.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져 간호사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편히 쉬길 바라요.

[박한나]

[박한나]

#감사
박한나(경기도 중산중 2)
아픈 환자를 위해 힘들어도 웃으며 도움 주는 모습이 떠올랐죠. 헌신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전선서 마음 다해 환자를 돌본 간호사님들께는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김단아]

[김단아]

#존경
김단아(서울 창천중 1)
몸을 아끼지 않고 코로나19 관련 사투를 벌인 간호사들을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김미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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