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운데 연일 관련 뉴스가 쏟아집니다. 그중 뉴스 영상을 보다 보면 감염의 위험도 무릅쓰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방송에 임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정부브리핑 등을 수어(수화)로 옮기는 수어통역사죠. 장애로 인해 음성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이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손을 움직이는 수어를 쓰는데 이들은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걸까요. 작은 물음에서부터 나아가 장애인과의 소통까지, 소중 학생기자단이 궁금증을 풀어봤습니다.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승찬(경기도 미사강변중 2)·유아라(서울 잠신초 5) 학생기자·조성언(대전 금성초 6) 학생모델, 자료=밀알복지재단
수어(手語·Sign language·수화)는 청각장애인(농인·聾人)들이 손의 움직임, 얼굴 표정,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시각언어입니다. 2015년 12월 국회를 통과, 2016년 2월 공포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건의 기반을 마련해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법 16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행사. 사법 행정 등의 절차, 공공시설 이용, 공영방송, 그 밖에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여야 한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수어통역 지원을 명시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2019년 9월 태풍 링링이 우리나라를 강타했을 때, 국가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에서 뉴스특보 내내 자막과 함께 수어통역을 제공하기도 했죠.
흔히 모국어라고 하면 한국어만 떠올리지만, 한국수어와 한국점자 또한 모국어에 포함됩니다. 한국수어는 ‘한국수화언어’를 줄인 말로, 한국어·영어처럼 독립된 언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문법 체계가 다른, 대한민국 농인의 고유한 언어죠. 생소한 모국어인 수어와 함께 잘 모르는 이웃, 장애인에 대해 알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김승찬·유아라 학생기자와 조성언 학생모델이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를 찾았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은 홍유미 헬렌켈러센터 팀장은 소중 친구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헬렌 켈러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어요.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복지 사업가인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청각과 시각을 잃고 말아요. 그는 7세가 되어서야 설리번(Anne Sullivan) 선생님을 만나 교육을 받게 됩니다. 대학 교육(학사)을 받은 최초의 시청각장애인이기도 한 그는 장애를 극복한 여성 인권 운동가로도 존경받고 있어요. 홍 팀장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헬렌 켈러의 세상은 끈기와 인내 그리고 희망으로 가득하다”고 설명했죠.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는 다른 애들처럼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의사 표현을 못 하니 난폭한 활동을 하기 일쑤였죠.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경험하고 반복 또 반복하며 알아갑니다. 모든 것을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익혀 단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헬렌 켈러가 처음 ‘water(물)’이라는 단어를 배우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시력·청력 상실의 원인
헬렌 켈러처럼 시각 및 청각기능을 동시에 상실한 사람을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두 분류를 함께 말하고요. 가운뎃점이 없이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시각과 청각 모두 이상이 있는 사람을 뜻하죠. 농맹인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Deaf-Blind라고 합니다. 소중 기자단 여러분이 방문한 헬렌켈러센터는 헬렌 켈러와 같은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연구사업 등을 하는 국내 최초 센터예요. 고립된 농맹인을 발굴하고, 설리번 선생님 같은 봉사자도 육성하죠. 시청각장애는 장애인복지법에 나오는 15개 장애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법적 정의 및 정부 지원이 딱히 없어요. 실태조사도 한 적 없어 명확한 인원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약 5000명~1만 명으로 추정하죠.”
설명을 들은 승찬 학생기자가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등은 선천적 장애가 많은지, 아니면 후천적 장애가 많은지” 질문했어요. 홍 팀장은 “사고·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유전으로 인한 선천적 장애보다 훨씬 많다”며 장애 원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줬죠. 어셔 증후군은 선천성 난청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한 시각장애가 특징입니다. 시야가 좁아져 가운데만 보이는 터널시야와 야맹증을 동반하며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제1형은 보통 유아기에, 2·3형은 청소년기에 시력 손상이 시작되죠. 어셔 증후군은 부모가 정상이어도 자녀에게 나타날 수 있고, 소아 난청 원인의 3~6%를 차지합니다.
유전성 기형 증후군인 차지 증후군(CHARGE syndrome)은 안구 결손(Coloboma), 심장 결함(Heart defects), 기도 문제(Atresia of choanal), 성장과 발달 지연(Retarded growth and development), 생식기 이상(Genital abnormalities), 귀의 기형(Ear anomalies)의 증상을 나타내는 질환입니다. 증상의 머리글자를 따 용어를 만들었죠. 현재 어린이 시청각장애 원인 중 가장 비중이 커요. 외국에는 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엔 아직 없어요. 교육 방법도 개발 중이죠.
임신 중 풍진에 걸린 경우도 태아의 눈·귀·심장·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풍진은 백신이 잘 보급되며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수정체가 굳어지면서 사물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게 보이는 백내장, 시신경이 압박을 받아 손상되며 시야가 흐려지고 좁아지는 녹내장, 당뇨합병증으로 망막에 있는 혈관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아 망막이 상하게 되는 당뇨망막병증, 황반에 이상이 생겨 상이 잘 안 맺히면서 가운데 부분이 잘 안 보이게 되는 황반변성 등도 시력 상실의 원인입니다.
생소한 질병을 메모하는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평소 이어폰 볼륨을 크게 키워 듣는지” 질문이 던져졌죠. 셋이 모두 고개를 젓자 홍 팀장이 앞으로도 이어폰을 너무 크게 듣지 말 것을 주문했어요. “연속적으로 센 강도의 소음에 노출되면 고막·달팽이관이 손상돼 난청이 오기 쉬워요. 고막이 찢어지거나 중이염 같은 병도 청력 저하를 일으키죠. 나빠진 시력이 돌아오지 않듯 청력도 손상되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큰소리가 계속되는 환경은 되도록 피하세요.”
시력과 청력 손실이 일어난 나이와 진행 정도는 개인마다 다 다르고 차이가 큽니다. 안 보이고 조금 들리는 전맹난청, 조금 보이고 조금 들리는 약시난청, 조금 보이고 안 들리는 약시농,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전농전맹 등으로 나뉘죠. 아라 학생기자가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데 어떻게 수어나 점자를 배우는지” 궁금해했어요.
“하루아침에 갑자기 안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시력이 떨어지며 점차 안 보이게 되면서 점자를 배우기 시작하는 거죠.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맹학교 등에서 점자를 배우는데, 여기에 수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배우기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점자는 손끝으로 읽기 때문에 손 감각이 예민해야 해요. 일반 비장애인이 배우긴 어렵습니다. 문제는 인지장애가 겹치는 경우예요. 점자나 수어 등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평생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어서 성언 학생모델이 “그럼 시청각장애인분들은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또 어떻게 마스크를 구하나요?” 질문했죠. “보통 땐 밖에 나올 수 있게 국가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현재는 집에만 계십니다. 3개월 가까이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힘들게 버티고 있죠. 점자를 아는 경우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문자나 인터넷 등을 하며 그나마 정보를 얻지만 답답한 상황이에요.”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
이날 소중 학생기자단은 미리 안내받은 대로 어두운색 상의를 입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을 만날 때 진한 단색의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수어를 비롯해 몸짓으로 표현할 때,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장식이 큰 반지나 반짝이는 커다란 귀걸이·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도 피해야 해요. 아까 시력 상실의 원인을 살펴볼 때 시야가 좁아지거나, 뿌옇게 보인다고 설명했는데, 어두운색 옷을 입으면 손짓하는 게 상대적으로 더 잘 보이거든요. 액세서리 등이 반사돼 눈부시는 일이 없게 해야 하고요.” 또 시각·청각이 약한 이들은 다른 감각이 예민한 편이라 몸냄새에도 유의해야 하고 강한 향수를 뿌리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으로는 촉각수어·근접수어·촉각신호·촉점자·점자·필담·점자정보단말기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각 장애 당사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촉각수어(Tactile Sign Language, Tactile Signing)는 손으로 만져서 하는 수어예요. 촉수화·촉수어라고도 하며 전맹이나 전맹에 가까운 이들, 야맹증이 있는 경우 많이 사용하죠. 농맹인의 손을 올린 채로 손동작을 하면, 농맹인이 그 움직임을 느끼고 의사소통이 이뤄집니다. 손을 만지며 소통하므로 반지나 손톱에 유의해야죠. 수어는 아니지만 손바닥에 글씨를 적는 손바닥 필담도 사용합니다.
근접수어(Close Vision)는 말 그대로 가까이서 수어를 하는 거예요. 약시 등 조금 보이는 이들의 경우 개인마다 50cm, 1m 등 보이는 범위가 달라 이에 맞춰 사용하죠. 홍 팀장은 “조금이라도 보이면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근접수어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덧붙였죠. 수어 동작을 확실하게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촉각신호(Pro-Tactile) 또는 백사인(Back Channeling)은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전역으로 퍼지는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식이죠. 청각장애를 앓다 23세에 시각까지 잃게 된 카를로스 주니어라는 축구 팬의 영상을 통해 자세히 알아봤어요. 브라질월드컵을 즐기기 위해 카를로스는 촉각수어와 촉각신호를 사용했죠. 모형 축구장을 가운데 두고 앞에서는 수어통역사가 촉각수어로 경기를 중계하고, 뒤에서는 그의 등에 촉각신호로 선수 등번호나 주변 사람들이 박수 치고 있다는 등의 상황을 알려주는 식이었어요. 현재 외국 자료를 토대로 한국식 촉각신호를 만드는 중이죠.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입 모양을 읽는 구화나 손으로 쓰는 지화도 많이 활용합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건 전체 농인 중 16% 정도예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 청각장애인은 모두 말을 못할 것 같지만, 70~80%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난청이 되거나, 사고로 귀를 다친 경우가 많거든요.”
청각장애 아동들이 많이 사용하는 보조기구로 음성증폭기(FM system)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음성을 크게 하는 기계로, 선생님의 말소리를 보청기나 인공와우로 바로 전달해 수업에 집중도를 높일 수 있죠. 컴퓨터나 스마트폰 앱으로 문자통역을 하거나, 종이에 진한 사인펜 등으로 크게 글씨를 써서 필담을 나누기도 하고요. 점자정보단말기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와 음성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문서 출력 등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입니다. 점자는 6개 점으로 구성되는데요. 이 6개 점자 키보드와 점자가 나타나는 긴 막대 모양의 모니터로 이루어져 있죠. 손등 위에 손가락으로 점자의 6점을 활용해 표현하는 촉점자도 활용합니다.
외국에선 의사소통카드를 쓰기도 해요. 시청각장애를 나타내는 배지를 착용한 장애인이 '길을 건너고 싶다' 등 도움받을 내용을 미리 적은 카드를 들고 있으면, 주변의 누구나 그에 따라 돕는 겁니다. 홍 팀장은 “사회적 합의와 이해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죠. 헬렌 켈러의 나라 미국은 1968년 시청각장애인 관련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일본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시청각장애인 용어를 넣고 지원하도록 한 장애인복지법 개정법률안이 2019년 10월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6월부터 시행되죠.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헬렌켈러법)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요. 그만큼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제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간단한 수어와 에티켓 배우기
헬렌 켈러는 “맹(blind)은 나를 사물로부터 격리시켰지만, 농(deaf)은 나를 사람들로부터 격리시켰다”라는 말을 했는데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발생하는 대다수의 문제는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기인합니다. 정보 접근은 물론 교육·고용 등 모든 기회를 박탈해 이들을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본적인 수어를 배워봤습니다. 수어는 단순한 몸짓과는 달라요. 손과 손가락의 모양(수형), 손바닥의 방향(수향), 손의 위치(수위), 손의 움직임(수동) 등에 따라 의미가 변하죠.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고요. 주로 오른손을 많이 움직입니다.
“수어할 때 마스크를 벗어야 하나요?” 아라 학생기자의 질문에 홍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요즘 코로나19 뉴스를 보면 수어통역사들이 나와요. 그분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죠. 수어는 손만이 아니라 표정, 눈썹 움직임, 입 모양으로도 많은 걸 전달합니다. 표정으로 감정이나 평서·의문문을 나타내 교육 때마다 그 중요성을 강조하죠. 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어통역사가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거예요.”
소중 기자단도 마스크를 벗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서 홍 팀장의 시범을 따라 수어를 해 봤습니다. 기본 인사인 ‘안녕하세요’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양손을 살짝 벌린 후 주먹을 쥐면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거예요. 이후 검지만 세우고 양손을 부딪친 뒤 가슴 앞에서 위아래로 긁듯이 움직이면 ‘만나서 반갑습니다’란 뜻이죠. 이때 중요한 건 활짝 웃으면서 해야 반가움을 잘 나타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수어는 헤어질 때 사용하면 ‘안녕히 가세요’란 뜻이 되죠.
오른손을 펼쳐 가슴에 대면 ‘나’라는 뜻이고요. 이어서 입모양으로 ‘나’ 하면서 손가락을 약간 구부려 입 앞쪽에서 돌린 뒤,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서 양손을 마주치고 떼면 ‘나는 청인(듣는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이 완성되죠. 상대방이 청각장애인인지 물으려면 먼저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며 ‘당신’을 지칭하세요. 그다음 입과 귀를 동시에 막는 동작을 하고 검지로 머리를 가리킨 뒤 그 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면 질문을 뜻합니다. 이때 고개를 갸웃하는 게 중요한데요. 갸웃하는 동작이 궁금함을 표시해 ‘당신은 농인입니까?’라는 의문문으로 만들어주거든요. 고개를 갸웃하지 않으면 ‘당신은 농인입니다’라는 일반 평서형 문장이 됩니다.
곧잘 따라 인사해본 소중 기자단의 다음 수어 미션은 ‘도와드릴까요?’ ‘전화해드릴까요?’였습니다. 의문을 나타내기 위해 성언 학생모델과 아라 학생기자가 같은 각도로 기울였죠. 수어 봉사를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수어를 해본 적 있는 승찬 학생기자도 능숙하게 손동작을 했고요. 문제는 표정과 입모양. 소리는 안 내더라도 입모양으로 단어를 표현해야 하고, 크게 웃고 궁금한 표정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왼손 엄지만 세워 ‘엄지 척’ 모양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두드리듯 밀며 고개를 갸웃하면 ‘도와드릴까요?’가 되는데요. 이때 묻는 표정을 짓지 않으면 ‘도와줄게요’가 됩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서 얼굴에 전화기를 대듯 가져갔다 앞으로 내밀면 ‘전화해드릴까요’란 뜻이고요. 이때 휴대전화를 나타내려면 검지만 세워요. 요새 휴대전화와 달리 안테나가 달려있던 초기 휴대전화의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청각장애인은 전화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한 문장이죠.
이어서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를 배웠습니다. 홍 팀장은 “보통 어디까지 가세요, 라고 말하지만 수어 문법으로는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라고 표현한다”고 한국어와의 차이점을 설명했죠. 오른손을 펴서 손끝을 아래로 하고 손등이 밖을 향하게 해서 내밀며 손끝을 들어 올리면 나가는 동작으로 ‘이동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어서 검지를 펴서 좌우로 두 번 흔들고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가슴 앞에서 내리다가 멈추면 ‘어디’를 나타내 ‘어디까지 가세요?’란 뜻이 되죠.
아까 배웠듯 오른손을 펼쳐 가슴에 대며 ‘나’를 나타낸 후 손등이 밖으로 향하게 모로 세운 왼손의 손가락을 잡고 밖으로 당기며 이끄는 동작을 하면 ‘안내하다’란 뜻이 되죠. 이후 손바닥을 위를 향하게 편 양손을 앞으로 내밀면 ‘드리다’라는 의미로 ‘제가 안내해드릴게요’란 문장이 완성됩니다.
간단한 문장을 배운 소중 기자단은 점자책과 ‘소보로’라는 음성인식 문자통역 서비스도 살펴봤어요. 소보로는 소리를 보는 통로란 뜻의 소프트웨어로 PC·태블릿에 마이크를 연결, 말소리를 실시간으로 자막으로 옮겨주죠. 승찬 학생기자가 마이크로 말하자 성언학생모델이 든 태블릿 화면에 바로 그 내용이 글로 표시됐어요. 아라 학생기자는 처음 본 점자책을 만져보며 신기해했고요.
수어에 이어 실제로 농인을 만났을 때의 에티켓도 알아봤습니다. 농인을 부를 때는 먼저 손을 흔들거나 움직여서 부르고 있다는 걸 표현하며 시선을 마주쳐야 하죠. 멀리 떨어진 경우 다가가서 놀라지 않을 정도로 살짝 어깨를 두드리거나 자신이 보이는 곳에 가서 손을 흔들고요. 농인들은 대화할 때 서로의 수어를 잘 보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둡니다.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둘러앉기도 하죠. 이때 갑자기 그 사이를 지나가면 대화가 끊기겠죠. 거리를 두고 앉은 농인끼리 대화 중인지 살피고 뒤쪽으로 돌아가거나 양해를 구하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잠시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이동하는 것도 체험해봤어요. 성언 학생모델이 안대를 하고 아라 학생기자가 길을 안내했죠. 안대를 한 성언 학생모델이 앞장선 아라 학생기자의 팔꿈치께를 잡고 조심조심 움직였습니다. 승찬 학생기자와 아라 학생기자처럼 키 차이가 많이 날 경우엔 어깨에 손을 올리죠. 소중 기자단은 안대를 하고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점자 블록을 찾아 걸어보고, 귀마개를 하고 수어를 해보기도 했는데요. 안대를 벗자마자 승찬 학생기자가 “갑갑하네요”라며 “안 보이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소감을 말했죠. 아라 학생기자도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으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성언 학생모델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얘기했죠.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은 불쌍하거나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이에요. 간단한 수어를 익히고, 에티켓을 숙지한다면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났을 때 서로 존중하며 소통할 수 있겠죠. 요즘 같은 때라면 약국에 가서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를 도울 수도 있을 거고요. 영어를 잘 몰라도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을 알려주듯 수어를 몰라도 필담이나 몸짓으로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장애인이 고립되고 없는 사람 취급당하지 않도록,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꾸려봅시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는 들어보거나 알고 있던 것도 많았지만 시청각장애는 이번 취재로 처음 알게 됐어요. 시청각장애는 '헬렌 켈러'처럼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는 중복장애라고 하셨는데 장애유형에해당되지 않아 복지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고 가슴이 아프더군요. 수어는 이전에도 써본 적 있었는데 다시 배워보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중간중간 시청각장애와 수어에 대해 질문도 해서 제가 궁금했던 답도 얻을 수 있었죠.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조금씩 있었던 편견도 깰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승찬(경기도 미사강변중 2) 학생기자
취재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된 ‘시청각장애인’은 제 생각과 달리 헬렌 켈러처럼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장애인이었죠. 헬렌 켈러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론 걱정되기도 했죠. 우리나라 장애인 분류는 15가지가 있는데, 여기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설명에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장애가 겹쳐 더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법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죠. 수어를 배운 시간도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인 장애인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아라(서울 잠신초 5) 학생기자
평소 장애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많이 궁금했었는데, 취재를 통해 수어·촉수어 등 소통하는 법과 안내 방법을 알게 되면서 주변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뿌듯해졌죠. 또 다른 언어인 수어를 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반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들이 장애인과 단순한 의사소통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 가깝고 차별 없는 시선으로 함께할 수 있겠다고 느꼈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성언(대전 금성초 6) 학생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