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대 曰] 쇼핑이 투표보다 중요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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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선거를 앞두고 많은 관심이 정치에 쏠린다. 정치적 관심은 주로 싸움에 집중된다. 진영 간 패싸움이다. 지독한 패싸움 속에 일상화되는 건 ‘내로남불’이다. 어디까지 진실인가. 오리무중이다. 온통 거짓말 덩어리로 보이기까지 한다. 내 편이 하면 로맨스고 상대가 하면 무조건 불륜이다. 분열과 증오를 양산하는 어둠의 정치라고나 할까. 좀 더 즐거운 정치, 희망의 정치를 싹틔울 순 없을까.

오만과 위선으로 패싸움 일삼는 정치 #상생과 희망의 정치 싹틔울 수 없을까

‘진영 정치’를 비판해온 강준만 교수가 새 화두를 던졌다. 쇼핑이 정치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주 출간한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를 통해서다.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았다는 소리도 했다. 이 문구가 크게 화제가 됐는데, 책을 찾아 읽어보니 단순히 진영 싸움의 소재로 몰고 갈 것은 아닌 듯하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정치를 쇼핑보다 더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행태를 반성해보자는 제안이다. 이런 시각조차 진영 간 패싸움의 재료가 되어선 안 될 것 같다.

정치와 쇼핑의 중요도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발달한 ‘정치적 소비자 운동(political consumerism)’이라고 한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Shopping is more important than voting)’는 표현도 영국에서 2013년 나온 슬로건이다.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정치가 증오의 차원으로 전락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 되새겨 볼 만하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촛불 혁명을 진보의 전유물로 보는 생각은 과연 타당한가? 이것이 강준만이 던진 문제의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할 당시 새누리당 의원 6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보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정부는 좀 더 겸손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촛불 혁명을 진보의 전유물로 보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거나 지나친 탐욕일 수 있다. 바로 그런 착각과 탐욕으로 인해 ‘분열과 증오의 정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강준만의 진단이다.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시 보면서 이제라도 잘해보자는 얘기다.

그런 착각과 탐욕이 없었다면,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일, 즉 조국 장관 임명 강행 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나름의 소신을 갖고 밀어붙였다고 해도, 실패로 드러났으면 정직한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 이것이 강준만이 지적한 ‘최소한의 상도덕’의 내용이다.

거창한 구호 속에 삶의 진실은 파묻히고 만다. 극단적 이념을 내세우고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 오만과 위선으로 소통을 거부하는 패싸움 정치는 쇼핑보다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작은 물건 살 때의 만족감에도 정치가 미치지 못한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너무 비관할 것까진 없을 듯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수 신승훈의 신곡 제목이다. 데뷔 30주년 기념으로 낸 노래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잖아, 언제나 햇살일 순 없잖아, 부딪치며 깨달아가는, 삶이란 그런 거야.” 이래저래 지친 국민의 가슴을 다독여준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로 노래해온 그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보이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듯하다. “힘내란 말은 하지 않을게, 이것만은 기억해줘. 거센 강물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후렴구처럼, 우리 모두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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