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은 소설 『은교』에 이렇게 쓴다. ‘열대 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 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는 상반신은 하얬다. 쇠별꽃처럼.’
코로나19 속 아파트 단지의 봄꽃 맞이
봄은 더디 왔다가 잰걸음으로 빠진다. 명멸의 요약본, 진화와 퇴화의 축소판이다. 환희와 안타까움의 뒤섞임에, 우린 그래서 봄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쇠별꽃은 이 봄에 핀다. 습기가 조금 있는 곳이라면 앞마당, 길가, 산기슭 가리지 않고 터를 잡는다.
봄꽃은 작다. 꽃마리·봄맞이·꽃다지·광대나물·주름잎 등도 그렇다. 봄 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열린다. 기온은 낮고 햇볕도, 물도 적은 데다, 수정을 도와줄 곤충도 적기 때문이다. 번역가이자 『천마산에 꽃이 있다』를 쓴 조영학 작가는 “봄꽃은 혹독한 계절을 버텨내기 위해 몸부림 중”이라며 “사람이든 꽃이든 자신과의 투쟁은 늘 아름답다”고 밝혔다.
잘 안 보였다면, 우리가 봤어도 무심했기 때문일까. 가을은 하늘에서 오고 봄은 땅에서 온다고 했다. 둘러보면, 우리가 사는 동네에 많은 꽃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에, 벚꽃 절정의 주말에 멀리 갈 필요는 없다.
# 별꽃-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A아파트
쇠별꽃은 『은교』에서 한 번 더 나온다. ‘나는 고요히 그 애의 머리칼을 만져보았다…쇠별꽃 같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셔츠를 가만히 당겨 그 애의 어깨를 가려주었다. 투명하고 싱그러운 어깨였다.’ 들꽃은 손 타지 않는 싱그러움과 투명함이 있다. 적나라한 아름다움과 향기는 없다.『은교』 속 예순아홉 이적요 시인은 그런 한은교에 사로잡힌다.
별꽃이 쇠별꽃보다 먼저 고개를 내민다. 아파트 단지 북쪽 모퉁이에 곧잘 피어 있다. 별꽃은 암술이 3개, 쇠별꽃은 암술이 5개다.
옅은 저녁, 김은희 시인의 표현대로 ‘어젯밤 내려온 별이 그냥 눌러 피었다 싶을 정도’로 초록 몸통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 회양목-서울 용산구 B아파트
“황양목(회양목)을 본래부터 많이 진배(進排·물건을 나라에 바침) 하는데도 공인들은 전부 별무(別貿·지방 관아에서 공물을 사는 일) 한다고 원망합니다.” 호조 판서 홍봉한이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양과 값을 세우자고 아뢰자 영조는 윤허한다(조선왕조실록 영조 36년 1760년 2월 6일). 회양목은 귀한 나무였다. 성종은 명나라 성화제에게 회양목으로 만든 호리병을 보냈다.
나무 질이 곱고 치밀해 도장·장기알과 목판·나무활자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회양목은 드물게도 물을 운반하는 물관세포와 나무를 지탱해주는 섬유세포의 지름이 거의 같기 때문에 조직이 치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모지게, 둥그렇게 조경을 해도 탄탄한 줄기와 잎으로 모양을 유지한다. 그래서 잎은 모발제 성분이 되기도 한다.
회양목은 성장이 더디다. ‘윤달에 만난 회양목’은 키 작은 사람 가리킨다. 또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퇴포(退圃)’에서 “정원의 초목들이 봄을 맞아 무성한데(園中草木春無數)/오로지 회양목만은 윤년에 재앙을 당하네(只有黃楊厄閏年)”라고 했다. 고사성어 ‘황양액윤(黃楊厄閏)’은 일의 진행이 늦음을 뜻한다. ‘회양목은 일 년에 한 치씩 자라다가 윤달에 세 치 줄어든다’는 속설에 근거한 말들이다. 지난 2월은 윤달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 회양목을 끼고 걷다 달콤한 향이 난다면 꽃이 있다는 신호다.
#냉이꽃-경기도 군포시 C아파트
냉이는 꽃을 보여주기도 전에 제 온몸을 사람들의 밥상에 헌신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인조가 냉잇국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태평성대에는 냉잇국에 모시조개 서너 마리를 넣었는데, 정축년 정월의 남한산성 안에는 모시조개가 없었다. 냉잇국을 넘기면서 임금은 중얼거렸다. 백성들의 국물에서는 흙냄새가 나는구나 ….’
우리네 엄마들은 이른 봄에 나물을 캤다. 우린 달래·쑥과 더불어 냉이를 먹고 나서야 나물 캐던 우리 엄마들의 손놀림에서 살아남은 냉이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냉이의 꽃말은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일지도 모른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있다. 관리실에서 땅을 갈아엎기 전까지는.
#산수유-서울 서초구 D아파트
직장인 김형일(36)씨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다가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그는 “산에 산수유 꽃이 피었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향희 북한산 자연환경 해설사는 “산수유는 산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데, 김씨가 본 것은 산수유와 꽃 모양이 비슷한 생강나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수유는 꽃이 가지 끝과 중간에 한 송이 피고 꽃자루가 긴 반면, 생강나무는 꽃이 몇 송이 뭉쳐 피고 가지에 바짝 붙을 정도로 꽃자루가 짧다. 신 해설사는 “정 구분이 어렵다면 산수유는 줄기가 거칠고 생강나무는 매끈하다고 기억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산수유는 집 근처에,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라는 것도 쉬운 구분법이다. 산수유 열매는 ‘남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생강나무 열매는 머릿기름으로 썼고 잎은 장아찌로 담가 먹으면 별미다.
#제비꽃-서울 강북구 E아파트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꽃이다. 보라색 계열이 많다. 그래서 찾기 쉽다. 그런데 식물도감에는 50여 종이나 나온다. 최근 나온 『사진으로 읽는 제비꽃의 모든 것』에 의하면 아직 등록되지 않은 변종·품종이나 잡종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에는 80여 종이 있다. 그래서 시인 안도현은 '제비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는지 모른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꽃으로만 구분이 어려워 여름 잎의 특징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어려우면 열매·씨앗으로, 극단적으로는 뿌리를 캐 확인한다. 유전자(DNA) 분석 기법까지 동원된다.
생김새와 지명이 포함된 제비꽃이 많다.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에 따르면 지명이 붙은 제비꽃은 그 지역을 벗어나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산제비꽃은 한반도 남쪽의 산이 아니라 민통선에, 서울제비꽃은 서울보다 오히려 전국 다른 곳에서 분포한다. 이름 붙인 때가 100년 안팎이 됐기 때문이다.
가수 조동진은 1985년에 3집 앨범 ‘제비꽃’을 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조동진은 이 ‘제비꽃’을 만든 이유에 대해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봄바람 속에서 짧게 흔들리고 있는 그 꽃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움과 함께 왠지 애처로운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아직 찬 봄바람 속, 보라색 스카프 두르고 동네 제비꽃을 만나러 가자.
#명자나무-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F아파트
명자나무꽃은 동백을 닮았다. 김지미 주연의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 속 이름 ‘명자(明子)’가 아니다. 생태 탐방기인『태화강 이야기』를 낸 조상제 울산 범서초등학교 교장은 "명자나무는 사람 이름을 따오지 않았지만 많은 문인들이 명자나무를 의인화 하면서 사람 이름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명자나무의 '명자'는 중국에서 명사(榠樝 또는 榠楂)로 쓴다. 이게 ‘밍쟈’로 발음되면서 그리 부르게 됐다는 추정이다.
그리고 명자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중국 원산 산당화가 맞나, 일본산 풀명자가 맞느냐는 논란도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놓고 얽히고설키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서는 명자나무로 통일했다. 아름다움 속에는 가시가 있다는 속설처럼 명자나무도 그렇다. 젊은 여성이 보면 혹한다고 해서 아가씨나무, 애기씨나무라고도 불렸고 예부터 집에는 심지 않았다고 한다.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댓잎현호색도 그냥 현호색으로 부르기로 했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현호색의 변이가 하도 다양해 별개의 종으로 보기에 무리라는 판단에 현호색으로 뭉쳐 부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큰개불알풀-서울 서대문구 G아파트
큰개불알풀은 앙증맞은 꽃잎이 흰색에서 파란색으로 번진다. 이름 그대로 열매가 개의 고환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풀은 며느리밑씻개·중대가리풀·소경불알 등과 개명 운동의 소재가 됐다. 비하와 성적 뉘앙스 때문이다.
큰개불알풀은 큰봄까치꽃, 며느리밑씻개는 가시모밀, 중대가리풀은 애기구슬꽃, 소경불알은 너도더덕꽃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또 이들 풀 이름은 일본학자들이 붙였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봄꽃 1위 벚꽃도 일제의 잔재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해방 후 일본 강점기에 만든 진해 해군기지 앞에 있는 벚나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왕벚나무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다시 심기도 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