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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소독 독주곡, 잠옷 협연…예술, 코로나를 넘어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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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막심 벤게로프의 재택 연주. [페이스북]

막심 벤게로프의 재택 연주. [페이스북]

처음엔 영상 중계 정도였지만, 이제 아이디어가 만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음악 듣는 방법, 공연에 대한 개념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코로나 아트’란 말도 나온다. 한국은 물론, 미국·유럽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시도를 유형별로 분류했다.

집콕 달래는 ‘코로나 아트’ 아이디어 #피아노 고·저음 다 치는 곡 만들어 #‘소독 티슈 위한 연습곡’ 제목 붙여 #유럽 수석무용수 ‘홈트 발레’ 연재 #요요마 등 ‘동물사육제’ 동시연주

미국의 한 음악 교사가 만든 악보의 제목은 ‘코로나바이러스 연습곡(Coronavirus Etude)’. 부제는 ‘피아노와 소독 티슈를 위한(For piano and disinfecting wipe)’이다. 악보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 하얀 건반을 모두 훑으며 시작한다. 그다음은 검은 건반. 쉼표와 셈여림까지, 잘 지키면 건반을 구석구석 닦을 수 있도록 설계된 악보다. 피아니스트들이 능청스럽게 연주한 영상이 코로나 시대에 잠시 웃을 수 있게 해준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홈 플레잉 영상. [유튜브 캡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홈 플레잉 영상. [유튜브 캡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들은 코로나19의 공포로 얼어붙은 학생들의 마음을 유머로 달랬다. 음악원장 김대진 교수, 부원장 이강호 교수가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해 온라인 개강, 학교 출입 시 유의사항 등을 공지한 영상이다. 이 밖에도 잠옷을 입은 연주자들의 ‘홈 플레잉’ ‘집에 머물기’ 해시태그 모양의 악보로 연주한 음악이 코로나 예술의 ‘유머형’ 아이디어다.

가히 세계 최고의 음악회라 할 공연들이 무료로 개방됐다. 이달 16일까지 모든 공연을 취소한 베를린필하모닉은 지난 31일까지였던 디지털 콘서트홀 무료화를 연장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도 매일 밤에 오페라를 한 편씩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런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빈 국립 오페라, 영국 로열 오페라, 태양의 서커스도 온라인 무료 스트리밍 중이다. 러시아의 볼쇼이와 마린스키 극장도 동참했다.

플루티스트 안나 데 라 베가가 올린 ‘잠옷 합주’ 영상. [유튜브 캡처]

플루티스트 안나 데 라 베가가 올린 ‘잠옷 합주’ 영상. [유튜브 캡처]

국내에서는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오페라,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 경기아트센터, 서울예술단 등이 무료로 콘텐트를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들의 집은 어떨까.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이차크 펄만, 막심 벤게로프,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조성진의 집이 ‘홈플레잉’으로 공개됐다.

정제된 조건에서만 음반 녹음을 하던 연주자들이 휴대전화 등 간단한 도구로 집에서 연주한 영상을 속속 올리고 있다. 특히 SNS 활동을 활발히 해온 프랑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은 20일 넘게 매일 한편씩 연주 영상을 업로드 중이다. 4일엔 전 세계 유명 연주자들과 합주한 영상도 공개했다.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마리엘레 라베크, 클라리네티스트 안드레아 오텐잠머,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등이 미국·독일·프랑스 등 각자의 집에서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를 동시에 연주한 ‘호화판 출연진’ 영상이었다.

영국 합창 지휘자 개레스 말론이 이끄는 ‘그레이트 브리티시 홈 코러스’. [유튜브 캡처]

영국 합창 지휘자 개레스 말론이 이끄는 ‘그레이트 브리티시 홈 코러스’. [유튜브 캡처]

몸값 높은 예술가들도 영상 공개에 열심이다. 뮤지컬 음악의 대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매주 금요일 뮤지컬 전막 영상을 올리고 48시간 동안 공개한다. 한국 시각으로 이달 11일 오전 3시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첫 테이프를 끊는다.

지난달 28일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이 진행한 셀럽 피아니스트들의 릴레이 연주는 전 세계 100여 개국 400만 명이 시청했다.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과 마리아 조앙 피레스, 루돌프 부흐빈더, 조성진, 윱 베빙, 키트 암스트롱 등이 만든 ‘홈 연주’ 영상도 화제가 됐다. 도이치그라모폰은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의 ‘거실 음악회’를 연재 중이며 8일 14번째 영상을 공개했다. 이탈리아의 사랑을 받는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는 한국 시각으로 13일 오전 2시에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노래한다.

보고 듣기만 하기엔 너무 긴 ‘집콕’ 기간. 그래서 보면서 참여도 할 수 있는 클래스를 세계적 발레단의 발레리나들이 마련했다. 함부르크 발레단 마스터 로이드 리긴스는 집에서 수석 무용수와 함께 발레 레슨을 연재하고 있다. 영국 국립 발레단의 발레리나도 자신의 집 부엌에서 발레를 가르쳐주며 ‘집콕’ 시대 ‘홈트레이닝’을 이어간다. 스코틀랜드 발레단도 ‘홈트 발레’ 시대에 동참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연습곡 악보.

코로나바이러스 연습곡 악보.

보는 사람도 함께 노래하거나 악기를 각자 집에서 합주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은 각자의 집에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연주해 편집한 영상으로 화제가 됐다. 이 ‘모자이크’ 방식은 곧 세계 여러 나라의 교향악단과 연주 단체로 퍼졌다. 로테르담 필은 이제 ‘합창’ 교향곡의 악기별 악보, 합창 악보를 홈페이지에서 나눠주면서 기존의 영상에 맞춰 연주나 노래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합창 지휘자인 개러스 말론은 지난달 30일부터 14번의 합창 레슨 영상을 올리고 있다. 제목은 ‘그레이트 브리티시 홈 코러스’. 노래 연습을 거쳐 악보를 다운로드 받아 함께 합창한다는 목표다. 지금껏 12만 명 이상이 합창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영국의 클래식FM은 코로나19가 클래식 음악계에 가져온 9가지 변화를 꼽으며 엘리트주의가 사라지고, 합주가 중요해졌으며, 음악을 듣는 층이 넓어진 것 등을 꼽았다. 코로나19의 추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만큼, 예술의 변주 또한 예상을 뛰어넘으며 활발하게 진화하고 있다.

무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예술 단체

베를린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뉴욕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영국 로열 오페라, 바이에른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위그모어홀, 파리 오페라, 태양의 서커스, 영국 국립극장,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국립오페라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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