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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최대생산 3M 두고도 품귀···제조강국 美 민낯 드러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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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시내 브롱크스에 위치한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 앞. 이 병원 간호사들이 밖에 나와 손으로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스크, 방호복 같은 의료 보호 장비가 너무 부족하다. 생명을 위협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기사에서 “중요한 처치 때만 ‘N95 등급(미국 보건당국이 인증한 공기 중 미세 입자 95%를 걸러주는 마스크)’를 쓸 수 있고, 그마저도 1개를 3일 동안 사용해야 한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란 몬테피오레 의료진의 말을 전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몬테피오레 의료진이 마스크 등 의료보호장비 재사용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에 나섰다.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몬테피오레 의료진이 마스크 등 의료보호장비 재사용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에 나섰다. 연합뉴스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개스토니아에 위치한 중소기업 파크데일. 102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내 몇 남지 않은 면 방직회사다. 미국의 대부분 방직ㆍ의류회사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을 닫거나 생산 시설을 중국ㆍ동남아 등지로 옮겼다.
파크데일의 최고경영자(CEO) 앤더슨 워릭은 지난달 중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검체 체취를 위한 면봉을 생산해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워릭은 “면봉은 안 되고, 생산 라인을 조정하면 마스크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워릭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N95 등급 마스크 생산은 불가능하고 일반용 3겹 마스크만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자국민이 쓸 무게 15g짜리 마스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미국의 현실. 세계 경제 대국, 산업 강국이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미국 제조업의 민낯이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미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수는 43만1838명을 기록했다. 불과 하루 사이 3만2758명(8%)의 환자가 추가됐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151만7839명 가운데 28.5%는 미국인이다. “환자나 의료진이 아닌 사람의 마스크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에 놀라 “사용 권장”으로 입장을 바꿨다.

'N95 등급'의 3M 마스크. 3M은 세계 최대의 마스크 제조 회사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생산기지 대부분은 중국 등 해외에 있다. 연합뉴스

'N95 등급'의 3M 마스크. 3M은 세계 최대의 마스크 제조 회사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생산기지 대부분은 중국 등 해외에 있다. 연합뉴스

이제 미국 내 마스크 품귀 대란은  ‘참사’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다. 일반인은 물론 코로나19 전투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조차도 제대로 된 마스크·방호복·산소 호흡기 등 기본 의료장비를 구하지 못해 병원 밖에서 시위할 정도다. 개인 의료보호장비 부족으로 코로나19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의료진도 속출하고 있다. 마스크 대란을 일찌감치 겪었던 중국ㆍ한국에서도 의료 소모품 품귀 현상이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세계 최대 마스크 제조회사는 3M이다. 미네소타주 메이플우드에 본부를 둔 미국 회사다. 2위 역시 미국 회사 허니웰이다. 3위는 일본기업 코와(興和)다. 미국 경제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 마스크 시장의 29%는 미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왜 미국 내 마스크 품귀 대란이 일었을까.

이 수치엔 맹점이 있다. 3Mㆍ허니웰 상표를 달고 있더라도 대부분 제품은 중국 등 미국 바깥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6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3M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N95 등급 마스크 양은 월간 기준 3500만 장이다. 일일 생산량으로 따지면 100만 장 남짓이다.

지난달 16일 경북 포항시 지오영 직원들이약국에 공급될 공적 미스크를 검수 중이다. 뉴스1

지난달 16일 경북 포항시 지오영 직원들이약국에 공급될 공적 미스크를 검수 중이다. 뉴스1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내 의료 수급을 맞추기에도 부족한 양”이라며 “3M은 자사 중국 공장 등에서 앞으로 3개월 간 1억6650만 장 규모의 마스크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독일ㆍ프랑스로 갈 3M 마스크 물량을 ‘빼돌리기’했다가 이들 정부로부터 “해적질”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 대부분이 마스크 같은 의료 소모품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긴 탓이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은 “마스크가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만들기는 쉽지 않다”며 “특히 N95 등급 마스크 대량 생산 설비는 단기간에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미 마스크 수출국이었던 한국이나 중국은 기존 시설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두 나라 모두 기존 의류ㆍ속옷 생산 라인을 마스크 생산시설로 돌리는 ‘순발력’을 발휘할 만한 배후 생산 기반도 갖춘 상태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8일 기준 한국의 공적 마스크 공급량은 980만8000개에 이른다. 공적 마스크 공급을 시작한 지난 2월 27일(약 240만 장)과 견줘 4배 넘게 물량이 급증했다. 공적 마스크는 거의 전량이 ‘KF94(미세 입자를 94% 차단하는 마스크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 마크를 단 국산이다. 중국 국무원 통계를 보면 2월 말 기준 중국 내 마스크 일일 생산량은 1억1600만 장을 기록했다. 한 달 사이 10배 넘게 늘었다.

지난 8일 중국의 장시성(江西省)에 위치한 마스크 생산 공장 내부. 연합뉴스〉

지난 8일 중국의 장시성(江西省)에 위치한 마스크 생산 공장 내부. 연합뉴스〉

한국이나 중국은 자국 내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빠르게 마스크 수급 부족 사태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ㆍ중국 모델을 따라가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파크데일의 사례에 알 수 있듯 방직ㆍ의류ㆍ속옷 등 마스크 공장으로 전환할 만한 생산 기반 자체가 부족한 상태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 내 의료용 방호복, 인공호흡기 등 다른 의료 장비 품귀 현상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국 물량을 충당하기 위해 주요 수출국이 수입 제한에 나서면서 미국 내 상황은 악화일로다.

로이터통신은 “제너럴일렉트릭(GE) 헬스케어 부문에서 인공호흡기 생산을 늘리기로 했고 자동차 회사인 GM, 포드도 여기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긴급 요청에 따라서다. 미국은 세계 선두권의 의료장비 제조업체 GE 헬스케어를 보유하고도 인공호흡기 품귀를 겪었다. 대당 수백만 원 수준인 인공호흡기가 아닌 수억,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CT·MRI 등 고가 의료 기기가 주력 상품이었던 까닭이다.

미국 방송 CNBC는 “GE 헬스케어와 포드가 앞으로 3개월간 인공호흡기 5만 대를 생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량 감원과 실적 급감 위기에 직면했던 이들 회사에 진짜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격이 됐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생산의 외주화’를 선언해온 제조 강국 미국이 마주한 살벌한 현실이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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