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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아프다…5곳중 1곳 이자도 못내, 악성재고 사상 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기업 A사는 지난해 매출 49조8765억원, 영업이익 1조269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4조6344억원이, 영업이익은 8339억원이 각각 줄어든 수준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9일 “여러 대외여건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매매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관리공단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단 내 대부분 공장에 신규발주는 나오지 않고 기존의 발주도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구시 북구 제3산업단지관리공단 거리에 공장매매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관리공단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단 내 대부분 공장에 신규발주는 나오지 않고 기존의 발주도 취소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런 걱정은 비단 A사 만의 일이 아니다. 수치로도 입증된다. 9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코스피 상장기업 685개사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면서 현금성 자산이 감소하고 차입금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장사 5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할 형편이며, 이런 상황이 3년 연속 지속한 한계기업 수는 2017년 이후 2배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현금 10조3000억원 줄고, 순차입금은 65조7000억원 늘어

분석 결과 상장기업 685개사의 현금성 자산(현금ㆍ예금 등)은 2018년 142조원에서 2019년 131조7000억원으로 10조3000억원이 줄어들었다. 특히 절반 이상의 기업(355개사ㆍ51.8%)의 현금성 자산이 줄면서 전체 상장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2년 연속 줄었다.

반면, 기업들의 차입금은 크게 늘었다. 기업활동에 필요한 투자금 등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늘어서다. 총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은 2018년 17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236억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8.4%가 늘었다.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기업 5개 중 1개는 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단 점이다.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은 기업은 143개로 상장기업 5개 중 1곳(20.9%)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한 해 수입에서 이자비용으로 쓰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나타내는 수치다. 이 배율이 1보다 작으면 영업이익보다 이자로 나가는 비용이 더 큰 의미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기업 수는 2016년 94개에서, 2018년 123개, 지난해엔 143개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은 2017년 28개에서 지난해 57개로 두 배가 늘어났다.

한경연 측은 “기업들의 매출이 정체된 가운데 영업이익은 많이 감소해 수익성이 줄어든 탓”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2018년 1190조3000억원이던 분석 대상 상장 기업 전체 매출은 지난해 1151조8000억원으로 3.2%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111조3000억원에서 5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0.1%가 줄었다.

‘악성 재고’ 사상 최대

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재고자산 수준으로도 확인된다. 분석 결과 지난해 상장기업들이 보유한 평균 재고자산은 99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제품이 팔리지 않다 보니 그만큼 재고가 쌓이는 것이다. 재고가 매출로 반영되는 속도를 의미하는 재고자산 회전율은 11.5회로 2017년 14.3회를 기록한 이후 지속해서 악화 일로다.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평균 일수 역시 2017년 25.5일에서 지난해엔 31.7일로 2년 만에 일주일가량 늘었다. 그만큼 상품이 팔리는데 드는 시간이 더 길어졌단 의미다.

이와 관련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만성적 한계기업이 이미 늘어난 상황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인해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면서 “존립의 갈림길에 있는 기업들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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