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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들이 논하다

현명한 ‘뉴노멀’ 찾아야 가족·일·교육 붕괴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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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코로나19 사태의 현재와 미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거리를 두고 자전거를 타는 미국 도로 모습. [외신 종합]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거리를 두고 자전거를 타는 미국 도로 모습. [외신 종합]

중앙일보 논설위원들이 지난 2일 마스크를 쓰고 모였다. “미증유(未曾有·전례가 없는)의 전 인류적 위기다. 언제 끝날지, 피해가 어느 정도에 이를지 알 수 없다. 이 사태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어떻게 난국을 타개해야 할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를 이야기해 보자.” 이런 취지로 일상 생활, 경제 문제, 국제관계 등 전방위적 주제를 놓고 토론했다. 급변할 삶의 트렌드, 경제위기 극복 방안, 혼란의 지구촌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말했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지속 가능한 새로운 규범 정립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기존 생활 성찰하는 계기됐지만 #언택트 문화 지속 가능성은 의문 #초저출산 현상 심화 우려되는데 #일본에선 대지진 뒤 결혼 늘어나 #미국 이번에 지도국 지위 잃을 수도 #그 빈자리 중국이 차지하려 움직여 #국제사회 불신 커져 각자도생 만연 #새로운 글로벌 방역 거버넌스 필요 #중국 의존 생산체계 취약성 확인 #비상 대비 생필품 국내 생산 절실 #방역과 경제는 전문가에 맡기고 #정부, 미래형 산업정책 제시해야

〈사회와 일상생활〉
◆ 라이프 스타일
▶사회:고현곤 논설실장=‘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인 관계와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 혼자, 또는 가족과의 시간이 많아졌다. 여행·만남·문화생활이 어렵게 됐다. 일상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강변 보행로를 떨어져 걷는 독일 노인들. [외신 종합]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강변 보행로를 떨어져 걷는 독일 노인들. [외신 종합]

-사람들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돼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언택트(un+contact·비접촉)’ 확산으로 인한 불편과 부작용이 사회성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더 빨리 닥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하례객이 비디오로 지켜보는 미국의 결혼식. [외신 종합]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하례객이 비디오로 지켜보는 미국의 결혼식. [외신 종합]

-사회적 거리가 커지자 가족 간의 거리는 오히려 짧아졌다. 느리고 소박한 삶의 경험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삶에 대한 성찰은 불행 속에서 얻은 귀한 선물이다. 하지만 경제가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그런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지속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텅빈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외신 종합]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텅빈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외신 종합]

-한계 상황에 달했던 불합리한 부분들이 깨지면서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것들이 현실화한다. 원격 의료, 온라인 수업과 교사 평가, 평화로운 광장 등의 새로운 질서가 삶의 양태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서양의 코로나19 대규모 감염 사태로 개인보다는 사회와 집단을 우선시하는 동양 문화의 긍정적 면이 부각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동양적 생활 양식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행정 권력에 비상대권을 부여하면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방역에 필요한 일이지만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는 면도 있다. 적정선을 찾는 균형이 필요하다.

◆일과 일자리
▶상당수 기업이 재택근무·유연근무 등의 새로운 업무 방식을 경험했다. 일과 일자리의 양태가 크게 달라질 것 같다.

-재택근무 실시로 직원이 반드시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는 기업인들이 있다. 사람이 많아야 회사가 굴러간다고 생각했는데, 비효율적 요소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앞으로 기업들이 핵심 인력 위주로 조직을 재편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재앙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스페인 학생의 온라인 수강 장면. [외신 종합]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지구촌의 일상 풍경을 확 바꿔놨다. 스페인 학생의 온라인 수강 장면. [외신 종합]

-조직 효율화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정보기술(IT) 분야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제 속도와 폭이 급격히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핵심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하거나 영역별로 아웃소싱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고용 안정과 복지의 문제를 초래한다.

-식당·술집·극장 등 다중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급속히 위축됐다. 사태가 진정돼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반면 온라인 비즈니스 영역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전반적 산업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 노동 시장의 충격을 흡수할 방법이 필요하다.

-예전엔 재난이 터지면 적십자 요원들이 돌아다니며 구호 물품을 뿌렸다. 이번에는 ‘뉴 레드 크로스(새로운 적십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바로 택배다. 택배기사들이 생필품 수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택배기사의 수와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안전과 건강이 잘 관리되지 않으면 새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동 환경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기준과 규범, 즉 슬기로운 ‘뉴노멀(new normal)’이 필요하다.

◆ 가족과 출산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에서 출산율이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는 젊은 층의 결혼·출산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까.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린 젊은이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출산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른바 ‘코로나 베이비’의 탄생이다. 하지만 경제가 불안해지면 결혼과 출산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전반적으로 초저출산 현상이 심화할 것이다. 결혼식을 미룬 이들도 많다. 올해가 결혼 건수가 가장 적은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접촉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할 수 있다. 사람끼리의 만남이 위험하고 불편한 일이 되면 연애와 결혼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일본에선 결혼율이 높아졌다. 위기 상황에서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져 독신을 고집하던 이들이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내 자식이 해외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데, 요즘 배우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분위기가 퍼지기를 희망한다.

◆ 종교와 심리
▶신천지 교도 집단 감염, 일부 교회의 예배 강행이 사회적 갈등을 부르기도 했다. 인간의 신앙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특정 교파나 교회의 부적절해 보이는 모습과 예배 중단으로 인해 당장은 종교계가 위축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종교와 신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대규모 감염병 발발은 과학기술과 문명의 취약함을 드러냈다. 이는 영원불변하고 위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무엇이 우선이냐, 예배라는 의식이 종교 그 자체와 분리될 수 없냐 등의 문제를 모두가 생각해 보게끔 했다.

-예배 강행 논란 속에서 등장한 여러 이야기 중 ‘안식일 예배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을 위해 안식일 예배가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신앙적 차원에서 보면 예배 등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일시적 조치인 만큼 종교계가 시민사회의 위기 대응에 협력하는 게 신의 뜻에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다. 앞으로 이어질 경제난으로 많은 국민이 심리적 상처를 입을 것이다. 집단적 트라우마와 개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상담과 치료를 지금부터 한국사회가 준비해야 한다. 종교계도 이 부분에 대한 기여를 고민해야 한다.

◆ 교육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IT를 활용한 교육인 ‘에듀테크’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교육 방법이 필요한 상황에 부닥쳐 보니 기본적인 온라인 수업조차 쉽지 않다. 이번 사태가 과연 교육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나.

-민간 영역에서는 수년 전부터 온라인 교육이 널리 활용됐다. 공교육이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가르침, 즉 ‘티칭’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교사들에게 옆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코칭’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매우 잘 가르치는 선생님 한 명이 교과 수업 내용을 녹화해 전국의 학교에서 활용하고 각 교사는 개별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시스템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대학에서 온라인 수업 도입으로 토론이 활성화되는 예상 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강의실에서는 적극적인 학생들만 입을 열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니 자판으로 묻거나 의견을 내는 학생이 많다.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효율적이고 편하다며 원격 교육을 반기는 경향도 보인다.

-교사들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초·중·고 학부모들은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수준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 교사의 경쟁력이 한눈에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공교육의 일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이 사태가 진정돼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교육은 계속 확산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활용 교육에 가장 뒤처져 있는 영역이 공급자인 교수·교사였다. 이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패권경쟁 미·중, 코로나 책임 전가하다 글로벌 리더십 실종

트럼프

트럼프

〈국제관계〉
▶주요 2개국(G2)이 세계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국경이 봉쇄되고, 국수주의 경향도 보인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들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국제질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하면서 다른 나라들을 줄 세우기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터졌다. 일단 국제 사회에서 불신이 더 커지고 각자도생 현상이 길어질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리더십과 공조가 실종됐다. 미국도 국제기구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인류가 공통의 위기에 직면하면 협력해야 하는데 미·중국 두 강대국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나라도 전염병 문제를 국내 정치에 많이 이용했다.

▶한반도에 준 시사점은.

시진핑

시진핑

-한국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중국 관련 리스크다. 중국 체제에 생기는 위험은 단순히 중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위험이란 인식을 우리 국민이 이번에 절감했다.

-코로나로 중국 경제의 성장이 멈추면 2049년 강국몽(强國夢)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미·중 경쟁이 좀 덜 치열해지면 우리에게도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도와줄 여유가 없어지면 북한은 스스로 살아야 하는 ‘제2 고난의 행군’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한·미에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더 센 도발을 할 수도 있다.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가 저물고 중국이 대체할 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도 타격을 받지만 코로나19를 어느 정도 통제했다. 미국은 이제 시작 단계인데 계속 이렇게 가면 미국 경제가 더 심한 손상을 받는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세지면 미국이 유일 지도국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

-미·중 두 수퍼파워 모두 실망스럽다. 중국은 우한에서 환자가 나온 뒤 3주 이상 정보를 통제한 책임이 있다. 반면 미국·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오만했다. 오히려 중국식 독재체제는 우한 봉쇄로 전염병을 잠재웠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찬미해왔던 미국이 속절없이 뚫리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자유민주주의체제 자체는 좋지만, 감염병 대응 능력엔 의문을 던졌다.

▶각국의 허술한 의료 시스템도 논란이 됐다.

-30년 전 만 해도 유럽은 최고·최강 의료 시스템을 갖춘 나라였지만 고령화라는 폭탄을 맞고 공공 의보 시스템이 감당을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 재정이 노인들 의료비를 감당 못하니 병원 설립을 늦춰 응급실과 병상을 늘리지 못했다. 한국도 고령화에다 ‘문재인 케어’ 때문에 재정 부담이 커지면 앞으로 시설 확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생활 양식 면에서도 동·서양의 지위 변화가 예상된다. 한·중·일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마스크를 적극적으로 쓴다. 코로나19가 신발을 통해 전파되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 서양도 동양처럼 집에서 신을 벗고 생활하는 문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코로나19를 통해 세 가지가 확인됐다. 첫째, 우리가 그동안 알던 미국의 리더십이 이제는 잘 먹히지 않는 세상이다. 둘째, 유럽이 대단한 선진 복지국가인 줄 알았지만 구멍 뚫린 대응에 실망했다. 셋째, 80여 나라에 방역을 지원한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크게 한판 붙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중국의 발언권이 커질 수도 있겠고, 어쨌든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커질 터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세계화를 재건할 책임을 가진 나라 역시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이번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제 역할을 못했고 UN도 존재감이 없었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 보다 새로운 글로벌 방역 시스템 구축을 위해 미·중이 협력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옳다.

수요·공급 미증유 동시 위기…규제 풀어 민간 역할 키워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 [연합뉴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 [연합뉴스]

〈경제〉
▶코로나19로 한국과 세계 경제에 쓰나미가 몰아닥치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금융 기능이 잘못돼 실물 경제가 훼손된 거라면 지금 위기는 수요·공급이 동시에 망가져서 실물 경제 위기가 온 것이다. 양적 완화나 재정 정책 처방들만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외환위기 때는 아시아가 중심에 있었다. IMF가 고금리 처방을 하는 바람에 쇼크가 매우 컸고 경제 주체를 위축시켰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동시 위기다.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추락하다 급반등하는 V자 쇼크였다. 이번 충격은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는 생산 시스템, 글로벌 공급망이 단절되고 있다. 세계화에 따라 저임금을 노리고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하는 그런 공급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축소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이제 핵심 제품은 국내에서 대거 생산해야 한다. 한국은 더더욱 국내의 반기업·반시장 정책 때문에 중국 등 해외로 생산 기반을 많이 이전했다. 생필품과 의약품은 수출금지 품목이 되니 비상시를 대비해 국내에서도 생산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대공황 우려마저 나온다.

-미증유의 위기라고 하는 이유는 총수요(투자+소비 수요)와 총공급이 동시에 문제라서다. 대체로 위기 때는 총생산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번은 공장에 사람이 갈 수 없으니 생산을 못 한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계절 농업 노동자들이 국경 차단으로 못 가니 수확을 못 해 농작물이 썩어나간다. 그래도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대공황까지는 가지 않는 것 같다.

-대공황 때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지금은 많은 공장에서 로봇이 생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아직 대공황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집 밖에 나가 소비를 안 한다. 과잉생산으로 물건은 남아도는 상태에서 기업이 망하는 경우가 올 수 있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소비가 실종돼 굉장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위기 극복 전망에 의견이 갈린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경제가 하강하는 와중에 코로나가 설상가상으로 위기를 더 극대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다시 대량의 돈을 풀면 당장 가라앉는 속도는 늦출지 몰라도 이렇게 푼 돈이 나중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번 위기는 V자 회복도 U자 회복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다. IMF 직후를 보면 살아남은 기업이 쓰러진 기업을 삼켰다. 또다시 그런 사태가 올 가능성이 있다. 사람에 의존하는 재래식 기업들은 많이 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업 구조 재편이 일어나고,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 노동을 많이 대체할 것이다. 경기는 V자에서 I자로 가다가 L자로 갈 것 같다.

-V자든 U자든 쉽지 않을 거다. 중국이든 어느 한 나라만 방역이 해결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에 계속 장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양적 완화를 신속하게 잘했는데 이제 각국 정부가 역할을 할 때다.

▶일회성 재난 지원금 논란이 거세다.

-방역을 위해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정부가 요구했으니 소득이 안 생기는 국민에게 지원해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면 맞다. 위기가 심각하니 경기 부양이 아니라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현금 지원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물론 경기 부양 효과는 떨어진다.

-말이 재난소득이지 당장 가계에 준다는 취지보다는 자영업과 소상공인, 기업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차원이다. 일단 쓰러지지 않게 최대한 살려놓자는 거다. 물론 전부 살리는 게 맞는지 논란도 있을 것이다. 재정 악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올해 예산이 512조원인데 코로나19로 집행 안 되는 불용 예산을 활용하자는 김종인 씨의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저금리라 통화정책으론 아무런 힘을 못 쓰니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40%를 힘들여 지켜왔는데 이번에 그 선이 무너졌다. 아르헨티나·스페인·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40% 넘으면 100% 돌파는 금방이다. 재정 건전성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나 시장에 주문한다면.

-경제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 생태계가 붕괴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새로운 미래형 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바뀌는 패러다임에 맞춰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위기 와중에 그나마 잘 돌아간 것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 부문이다. 선진국도 정부나 공공 부문에서 잘 된 것은 별로 없다. 민간 역량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현실적으로 규제 이슈가 발목을 잡는다. 내버려 두면 잘 돌아갈 것을 정부가 막는 측면이 많다. 규제를 과감히 풀고 능력이 더 탁월한 민간에 넘겨야 한다. 예컨대 택배 수요가 급증하는데 공중 택배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방역이든 경제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의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정리=장세정ㆍ이상언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김서희 인턴기자가 방담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