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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가격리자 투표 제한, 고민 없는 편의주의적 발상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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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들이 4·15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지 말 것을 권고한 데 이어 자가격리를 위반하고 집 밖으로 나올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투표장에 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하는 거소(居所)투표 신청 기간도 지난달 28일 만료됐다. 정부는 더 이상 거소투표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국민은 2주간 자가격리토록 하고 있다. 1일 이후 귀국하는 유권자들도 투표권 행사가 불가능하게 됐다. 사실상의 참정권 제한이다.

정부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코로나 불길이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데다 해외에서 하루 수천 명가량이 신규 유입되고 있다. 2차 감염과 확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방역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못지않게 국민의 참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책임 또한 정부에 있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확진자 및 치료 중인 유권자, 그리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교민·유학생 등 줄잡아 10만여 명이 이번 총선에서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또 미국 등 40개국의 재외국민 투표도 중단됐다. 대략 8만여 명의 재외국민 유권자가 투표할 수 없게 됐다.

감염 확산을 이유로 일단 막고 보겠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비상한 상황인 만큼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했지만, 고심과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은 물론 학자·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질타가 잇따르고 있다. 투표를 못하게 된 해외 교민 25명은 그제 “선관위가 신중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선거 사무를 중단시켜 선거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지만, 유권자는 투표하겠다는데 정부가 투표를 막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선거까지는 아직 12일가량 남았다.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다면 자가격리자들의 투표 방법을 찾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해외 거주자들이 입국하는 과정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거나, 거소투표 대상과 기간을 늘리고 선별 투표소를 확충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조2항)고 규정하고 있다. 주권재민을 실현하는 토대가 참정권이다. 이번 사안은 투표권을 제한받는 유권자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에 관한 문제다. 이번 조치에 대해 참정권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확진자 발생과 감염 확산에 대한 책임만 면하려는 무사안일주의적 발상이란 지적을 정부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