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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난지원금 혼선…이러니까 ‘총선용’ 소리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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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발표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지급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많은 국민은 자신이 지급 대상인지조차 알 수 없다. 주민센터는 문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고, 보건복지부의 ‘복지로’ 사이트는 재난지원금 발표 이후 아직도 접속 장애 상태다. 정부는 이제야 구체적인 기준 마련에 들어가 다음 주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명백한 직무 태만이다.

정확한 기준도 없이 서둘러 발표 #형평성 놓고 국민 갈등 소지까지 #정책 취지 살리되 부작용 줄여야

‘긴급’이라는 이름이 붙었듯 비상 경제상황에서 서두를 일이긴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기초적인 실무 사항은 미리 챙겼어야 했다. 9조1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일이다. 조 단위 정도는 우습게 보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 버릇이 아니라면 이렇게 허술한 안을 덜렁 내놓을 수는 없다. 더구나 국회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거쳐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런데도 여당은 지급 대상 확대에 급급해 기획재정부를 몰아붙인 끝에 발표를 서둘렀다. 총선을 겨냥해 급조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소득 하위 70%에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이에 해당하는 정확한 월소득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다. 단순 월소득인지, 재산상태 등을 고려한 소득인정액인지도 모호하다. 정부 내에서도 말이 엇갈린다. 기획재정부는 단순 월소득만 볼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보건복지부는 보유 재산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삼자는 안도 나오지만 이 또한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형평성 때문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지급 기준도 문제지만 ‘형평성’은 더 큰 문제다. 가구당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맞벌이 부부는 못 받고, 소득이 적은 수십억 자산가는 받게 된다는 불만이 벌써 제기된다. 기준선 전후의 가구는 지원금 때문에 소득이 역전되는 ‘역진성’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지자체 지원책이 중복되는 바람에 사는 지역에 따라 수혜 폭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 가구원의 주소가 분산돼 있는지에 따라 혜택이 달라지는 점도 불합리하다. 이런 형평성 결여는 ‘시간이 급하다’거나 ‘대승적으로 양보해 달라’고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다. 비수혜자의 불만이 쌓이면 국민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마저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시급성과 형평성을 다 같이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불만과 잡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혼선이 오래갈 경우 정책 취지나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정책 목표를 살리면서도 국민 갈등은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합리적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 후 미흡한 부분은 국민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