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람사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라이터

 또 하나의 입.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히 부탁합니다. 두 마디 모두를 입에게 시키면 도움 받을 확률이 떨어진다. 입은, 제발 도와주세요. 눈은,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렇게 입과 눈이 역할을 분담해서 말해야 한다. 입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이 눈이다.

『사람사전』은 ‘눈’을 이렇게 풀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녀석이 눈이다. 전공은 보는 일. 부전공은 우는 일. 복수전공은 흘기는 일. 신은 눈의 과로사를 막으려고 잠이라는 시간을 설계했을 것이다. 눈에게만 독점 사용권을 허락한 ‘감다’라는 동사까지 만들어 바치며.

사람사전 4/1

사람사전 4/1

눈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말하는 일이다. 우린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내보내는 입을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의 눈을 본다. 눈이 하는 말을 본다.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리면 말은 귓속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귓바퀴 부근에서 면봉에 덜미를 잡힌다. 입이 하는 말이 조금 서툴더라도 눈이 진심임을 확인해준다면 말은 귀를 통과해 가슴에 안착한다. 말은 입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거리엔 마스크가 걸어 다닌다. 입은 마스크 속에 고요히 묻혔다. 한동안은 눈이 입 대신 말하고, 귀 대신 들어야 한다. 이 답답한 시간을 벗기 위해 이 답답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우리, 잘 견디고 있다.

마스크는 말한다. 입이 말을 난사하는 버릇이 있다면 지금 고치라고. 말의 양을 줄이는 연습을 지금 하라고. 이 불편한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마스크를 벗는 그날, 내 입의 신뢰도는 한 뼘 더 올라 있을 거라고.

정철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