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는 ‘봄꽃의 여왕’으로 불립니다.
얼마나 자태가 고우면 여왕으로 대접받을까요?
실제로 보면 왜 여왕인 줄 알게 됩니다.
그 자태에 누구나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얼마나 대단한 꽃이기에 머리를 조아리게 되냐고요?
꽃잎마다 알파벳 W 문양이 있습니다.
그 문양이 왕관과 흡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꽃의 문양을 보려면
꽃보다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머리가 땅바닥에 거의 닿아야만 문양을 볼 수 있습니다.
‘봄꽃의 여왕’을 알현하려
경기 가평군 청평 화야산에 올랐습니다.
흐린 데다 어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채색 숲에 분홍빛 하늘거림이 비쳤습니다.
먼발치에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곱기도 곱지만,
품은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조영학 작가가 들려준 얼레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 꽃이 5월쯤에 씨를 떨어뜨리면
묻혀서 꽃이 피기까지 거의 7년이 걸린답니다.
1년 있다가 이파리가 하나 나고,
3년 있다가 이파리 두 개 나오고,
그렇게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는 게 7년입니다.
저는 이 꽃을 보면 메릴린 먼로가 연상됩니다.
메릴린 먼로의 치마가 확 올라가는 장면 기억하시죠?
젖혀진 꽃잎이 먼로의 치마와 흡사하잖아요.
그리고 그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7년 만의 외출’이잖아요.
얘도 꽃이 피고 나서 7년 만에 처음 세상을 보는 것이니….”
조 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절묘합니다.
게다가 꽃 하나 피워 올리는 데 무려 7년이라니요.
이런 얼레지가 예전엔 멸종위기까지 몰렸었다고 합니다.
이파리가 나물로 유명했기 때문이랍니다.
이파리 하나와 꽃 하나에 담긴 세월을 알면
함부로 캐서는 안 되겠습니다.
얼레지 사진을 찍을 땐 해를 마주 본
역광에서 찍는 게 제일 곱습니다.
빛 받은 꽃잎의 속살이 눈부시게 사진에 담기게 됩니다.
그리고 W 문양과 암술과 수술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더구나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얼레지가 꽃잎을 닫아 버립니다.
수술의 꽃밥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럽니다.
화야산을 찾은 날은 날이 흐렸습니다.
곧 비가 올 것같이 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정을 마치고 들린 터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방에서 휴대용 손전등을 꺼냈습니다.
역광이 되게끔 얼레지 뒤에서 꽃잎을 향해 비추었습니다.
빛 받은 꽃이 새가 되어 날아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세한 촬영 장면을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동영상으로 제 휴대폰 촬영 화면을 확인해 보십시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