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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복사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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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서울 중구 회현동과 중림동을 잇는 공중 보행로 서울로7017은 요즘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중림동 쪽으로, 대형 화분에 벚꽃·복숭아꽃·살구꽃이 만개했다. 요즘은 봄 하면 벚꽃이 대세지만, 전에는 복숭아꽃·살구꽃이었다. 노래 ‘고향의 봄’에도 나오지 않나. ‘나의 살던 고향은/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아기 진달래~’라고.

복숭아는 복사나무 열매다. 복숭아꽃(도화·桃花)이 복사꽃, 복숭아꽃 피는 마을이 복사골이다. 동양에서는 이상향으로 여긴 곳에 복사꽃이 핀다. 중국 동진(東晉) 시대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 속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대표적이다. 후난성 무릉의 한 어부가 복사꽃을 따라서 배를 저어가다 동굴을 만났다. 동굴을 지나니 꽃이 발원한 마을, 도원이 나타났다. 500년 전 진(秦)나라 시절 피난 온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어부는 이후 다시 그곳에 가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조선 세종의 삼남 안평대군도 꿈에서 그곳을 보았다.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복사나무는 벚나무 속(屬) 식물이다. 둘은 꽃 생김새가 닮았다. 원산지는 중국 화북 지방이다.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에 전래했다. 삼천갑자(18만년)를 산 동방삭과 불로장생의 손오공이 먹은 게 서왕모(중국 신화 속 최고 여신)가 기른 복숭아다. 복숭아는 젊음·건강의 상징이다. 유비·관우·장비가 의로움을 모은(結義) 곳도 복숭아밭, 도원이다. 도교에서는 복숭아와 복사나무에 축귀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 한편, 복사꽃의 연분홍색인 도색은 남녀 사이 색정적인 일을 가리킨다.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우리말이 ‘도색물’이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의원이 26일 분홍색(핑크)이 상징색인 통합미래당을 향해 ‘도색당’, ‘도색 정치’ 운운했다.

여도지죄(餘桃之罪), 즉 ‘먹다 남긴 복숭아의 죄’라는 게 있다.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는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왕에서 먹으라고 건넸다. 총애를 받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후일 총애가 사라지자 왕은 참수로 그 죄를 물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을 때야 도색 타령이든, 원색 타령이든 무슨 문제이겠나.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같은 일도 달리 보게 된다. 먹다 남긴 복숭아의 교훈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