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용대란에 소비절벽…"세금,건보료 줄여 서민 지원 속도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항공사 승무원 박 모 씨(31)는 올해 들어 월급이 절반 넘게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행시간이 급감해서다. 박 씨는 "비행ㆍ야간 수당 비중이 꽤 큰데, 월 80~90시간이던 비행 시간이 이달에는 30시간으로 줄었다"며 "다음 달 잡힌 비행 스케줄은 단 한 곳뿐"이라고 말했다.
#2.
프리랜서 관광 가이드 윤 모(37) 씨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벚꽃 성수기에 바짝 번 돈으로 5월까지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올해는 일이 거의 없는 상태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몰리면서, 배송 단가가 건당 2000원에서 700원으로 떨어졌다.

실업 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2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설명회장에 입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이달 실업급여를 신규 신청한 사람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 여명 늘었다. 뉴스1

실업 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27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설명회장에 입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이달 실업급여를 신규 신청한 사람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 여명 늘었다. 뉴스1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가게 문을 닫거나 일거리를 잃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항공 등 대기업 종사자마저도 막막한 생계를 호소하고 있다.

당정청도 대책을 마련했다내놓는다. 전체 가구의 70%인 중위 소득 150% 이하 1400만 가구에 100만원의 긴급 생계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총 규모보다는 속도와 적재적소를 강조한다. 12조원을 빌려주겠다고 발표했지만, 막상 그 돈을 받은 소상공인은 별로 없는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업급여, 일시 휴직자 급증…대량실업 '전조'

서민 살림살이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1~19일 구직급여(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10만300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4000명 늘었다. 실직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무늬만 취업자’인 일시 휴직자도 늘고 있다. 지난달 일시 휴직자는 1년 전보다 14만2000명 늘었다.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은 음식점의 종업원이 이에 해당한다.

구직급여 신규 신청 증가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구직급여 신규 신청 증가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정이 낫다는 대기업도 영향권에 들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부터 모든 직원이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에 돌입한다. 소비 절벽은 더 가팔라졌다. 매출이 반토막 난 가게가 수두룩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기준치 100)는 78.4로 전달보다 18.5포인트 하락했다. 11년 만에 최저치다.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꼭 필요한 계층에, 신속히 지원하는 게 중요

상황이 악화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을 주자는 논의가 무성했다. 곳간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정부는 일단 '선별 지원'으로 가닥을 잡았다. 긴급 생계 지원금은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사회 보험료 50% 감면과 전기료 납부 유예 등은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이렇게 선별 지원을 해도 5조~6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속도 측면에서 사회보험료 등 준조세 항목을 포함한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게 소상공인이나 영세사업장에 당장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안 받거나 덜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4대 보험료 경감 등 고정 비용을 줄여주는 걸 1순위 정책으로 펴고 더 빨리 시행해야 했다”며 “소상공인 등에 대한 세금도 삭감·유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최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최근 매출이 거의 제로(0원)가 됐다"며 "사회보험료를 한시적으로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부가세 50% 감면, 임대료 직접 지원"

'버티기'를 도우려면 무엇보다 고정 비용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인건비와 임대료가 대표적이다. 인건비는 일단 숨통을 트였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 규모(1000억원→5000억원)를 늘리면서, 모든 업종에서 휴업·휴직 수당을 90%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임대료는 여전히 부담이다. 임대료를 낮춘 건물주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착한 임대료’정책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웃 상가보다 장사가 훨씬 안되더라도 건물주가 여력이 없으면 임대료 부담이 그대로인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26일 정책제언을 통해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액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소상공인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정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에 대해선 전기료 등 공과금도 한시적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부가가치세 한시적 감면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은 “현재 10%인 부가가치세를 올해 상반기만이라도 5%로 인하해 소상공인의 과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비용 경감, 규제 해소도 필요" 

정부 규제로 인한 ‘규제 비용’ 도 당분간은 덜어줘야 한다. 완구업체의 경우 힘들어도 어린이날이 낀 5월 성수기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안전심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완구 모델당 최대 300만원에 이른다. 중기중앙회 측은 “1만4300여개 업체가 매년 총 700억원을 부담하는 환경책임보험료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통업체 사정을 고려한 월 2회 의무휴일 규제의 한시 철폐 등은 경제단체의 지속적인 제안에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미국 등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있는데 이런 점이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취약계층의 현금성 지원과 함께 세 부담 완화, 규제 해소 등 기업 활동의 여지를 넓혀주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이 시급한 곳에는 파격적으로 하되, 추가적인 비상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어려운 숙제도 정부 앞에 놓여있다. 이미 512조원 규모의 확장 재정을 편 상황에서 11조7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도 얹었다. 재정 여력은 바닥인데, 2차 추경은 불가피하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향후 코로나19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재정지출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계층에 대해 지원을 하고 여력을 남겨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현시점에선 꼭 필요한 계층이 생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을 신속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 구간별 맞춤 지원을 강조하다. 성 교수는 "소득 하위 20%는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세액 감면보다는 현금성 직접 지원이 필요하고, 2~3분위 소득층(소득 하위 40~60%)은 4대 보험 감면과 같은 혜택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야당, 예산 100조원 '비상 예산' 전환해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선거 전략을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선거 전략을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야당은 올해 예산 중 20% 규모인 100조원을 '코로나 비상대책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관리위원장은 29일 "코로나 비상경제 대책은 먼저 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을 직접, 즉시, 지속적으로 재난 상황이 끝날 때까지 보전해주는데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100조원 재원의 사용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대한 임대료 지원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용보증기금 확대 등을 통해 은행이 더 많은 회사채를 인수하게 해주는 방안, 1000조원이 넘는 시중 부동 자금을 국채로 흡수해 비상경제 대책 예비재원으로 확보하는 방안 등도 정부에 제안했다.

하남현·문희철·허정원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