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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에서도 공적마스크를 공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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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지난주 한 시내 약국에서 마스크를 샀다. 대로변 약국보다는 큰 건물 내부에 있는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기 쉽다는 얘기를 듣고 판매 시간 30분 전에 줄을 섰다. 이렇게 KF94 마스크 2장을 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금 늦게 갔어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대로변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매서웠다.

5부제 이후에도 구입은 불편 #특정업체 독과점 유통도 문제 #판매하는 우체국·농협 늘려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5부제가 실시됐다. 그래도 초기보다 대기 행렬이 줄어든 것 같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판매 시간을 미리 알리는 약국이 늘었고 마스크 판매처와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도움을 줬다.

하지만 마스크 구매는 여전히 불편하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중복 구매를 검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시민들이 줄을 덜 설 수 있는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1500원짜리 공적 마스크 판매처는 약국 2만3000곳, 서울·경기를 제외한 농협 1900곳, 읍·면 지역 우체국 1400곳 등 2만6000여 곳이다. 주민번호 관리 문제 때문에 건강보험체계에 속한 약국 유통망을 활용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여기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16~ 22일) 일반 공급된 공적마스크(의료기관·특별공급 제외)는 모두 4094만장이다. 이중 약국 공급 물량은 3919만장으로 전체의 95%를 넘는다. 약국 판매 물량 유통은 1, 2위 의약품 유통업체인 지오영과 백제약품이 도맡아 하고 있다. 규모가 크다 보니 유통업체가 중간에서 독점 이익을 챙긴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서소문 포럼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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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1위 업체인 지오영은 정부의 긴급수급조정조치 이후에도 미신고 마스크 60만장을 유통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지오영은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한시적 조치면 몰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 마스크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면 특혜 시비는 없어야 한다.

과도한 약국 의존도를 낮추고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센터 등을 통해 공적마스크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판매할 것인지 무상으로 배포할 것인지는 지자체 사정에 따라 정하면 된다. 이미 자체적으로 마스크를 확보해 주민들에게 배포한 지자체도 있다. 이를 개별적으로 하기보다 ‘1주일 1인당 2장’이라는 공적마스크 시스템에 넣어 통합 관리하는 게 옳다.

하지만 정부는 “지자체의 읍·면·동 주민센터는 3510개로 기존 공적마스크 판매처보다 적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약국 이외의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 시간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물론 공적마스크 전체를 주민센터에서 판매하거나 나눠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기존 약국에 더해 주민센터와 수도권 우체국·농협 등으로 공급처를 확대한다면 시민들의 마스크 확보는 더 편해질 것이다. 길이 막히면 도로를 확장하는 게 이치다. 2차로보다는 4차로 도로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

마스크 포장도 해결해야 한다. 기존 마스크 상품을 보면 1장, 3장, 5장 등 홀수 포장이 많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나 약국에서 대용량 마스크를 2장 단위로 나눠 판매한다. 문제는 이런 것을 꺼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가족 단위 구매를 고려하면 마스크 포장은 2장, 4장 등 짝수 형태로 바뀌는 게 맞다.

장기화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코로나19가 7~8월에도 계속된다면 혹서기에도 줄을 서야 한다. 10세 이하, 80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으로 한정된 대리 구매도 미성년자나 70세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스크 구매를 위해 오래 줄 서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마스크 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도 걱정거리다. 다음달 6일 예정대로 개학을 하면 마스크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마스크 수출을 통제하지 않았고, 수요·공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스크는 충분하다”는 허언을 했다. 원료 확보, 마스크 수요 등을 꼼꼼히 살펴서 더는 실책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