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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한·미 통화스와프를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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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경제에디터

서경호 경제에디터

지난주 19일 밤 전격 발표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틀 전, 국회에서 ‘내막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한·미 함께 뛰었던 줄탁동시일 뿐 #2008년처럼 미국에도 필요한 선택 #통화스와프 이후 무슨 대비가 있나

체결된 바로 그 날 낮에 통화스와프를 잘 아는 어느 전직 경제부처 장관과 통화를 했는데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과 처음 통화스와프를 맺었던 2008년과 달리, 미국 정부와 금융계, 정치권 등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맥과 채널이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윌리엄 로즈 씨티그룹 부회장,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고문,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 등 채널이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와 협상한 이들이다. 루빈 고문은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고, 가이트너 총재는 재무부의 부차관보였다. 로즈 회장은 98년 한국 정부가 외국 금융회사와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을 할 때 역할을 했다.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던 강만수 2008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었으니, 이들과는 질긴 인연이 있었던 셈이다.

이번에도 이주열 한은 총재와 연준 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총재는 한은의 첫 연임 총재인 만큼 2년 전 취임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오랫동안 안면을 터왔다. 통화스와프 담당국장인 오금화 한은 국제협력국장은 “이 총재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주열~’ ‘제롬~’처럼 서로 퍼스트네임을 부르는 사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2008년과 2020년 한·미 통화스와프는 모두 가뭄 속 단비였다. 정부와 한은의 노고는 치하할 일이지만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흥미진진한 ‘막전막후’ 스토리나 ‘인맥’을 강조하다가 좀 머쓱해질 수 있다.

서소문 포럼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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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일본·캐나다·스위스 등 기축통화국과 맺은 데 이어 한국과 맺기 한 달 전인 2008년 9월엔 주요 통화국이 아닌 호주·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과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그해 10월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을 때도 브라질·싱가포르·멕시코가 함께 ‘달러 우산’에 포함됐다.

이번에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한국 등 9개국도 모두 금융위기 때 미국이 세 차례로 나눠 협정을 맺었던 나라들이다. 이번에 한꺼번에 달러 안전망을 화끈하게 확대할 만큼 미국도 급했다는 의미다. 신흥국에 달러 돈줄이 마르면 미국 금융회사 대출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국제금융시스템에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결국 금융위기 때나 지금이나 미 연준은 미국을 넘어 세계 금융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시장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혜를 베푼 것도 아니다. 신흥국 위기가 본국인 미국으로 번지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빠르고 냉정하게 대응한 것이다.

우리 역할과 성과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상대방을 오히려 희화할 수 있다. 연준 의장을 굳이 한국 등 9개국 중앙은행 총재와의 인맥을 중시하는 ‘마당발’로 만들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미 재무장관이 손편지에 감동하는 10대 소녀 같은 감상주의자(感傷主義者)는 아닐 것이다.

물론 2008년보다 ‘홍보’가 차분해진 건 사실이다. 그때처럼 정부와 한은이 공치사를 놓고 갈등하지도 않았다. 성공스토리의 배경을 슬쩍 알리긴 했지만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은도 미 연준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미 닭이 밖에서, 병아리가 안에서 함께 쪼아서 알을 깨는 줄탁동시(啐啄同時)였다. 우리도, 미국도 열심히 뛰었다.

금융시장이 통화스와프 덕분에 지난 금요일 모처럼 회복됐는데, 어제는 다시 힘없이 무너졌다. 실물과 금융이 같이 흔들리는 복합위기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한·미 통화스와프 이후를 외환당국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세 번째 위기까지 또 당하면 우리 존재 이유는 대체 뭡니까.”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을 지낸 고(故) 김익주 전 국제금융센터 원장이 한 말인데, 요즘처럼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자꾸 그가 했던 이 말이 생각난다.

서경호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