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총선 언박싱(unboxing)-더비’는 제21대 총선에서 화제의 격전지를 집중 분석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로서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와 속사정, 중앙일보만의 깊이있는 분석 등을 꼭 집어 정리해드립니다.
서울 동작을은 최근 네 차례 선거(19대 보궐선거 포함)에서 모두 미래통합당이 승리한 지역구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는 드물게 공수가 바뀌었다. 야당이 아닌 여당에서 ‘자객’을 투입했다. 현직 의원인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는 4선(동작을에서 2선)에 원내대표까지 한 야당 거물이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나 후보와 마찬가지로 여성 판사 출신의 이수진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17~18일 이틀간 두 후보의 선거운동에 동행했다.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꼭 승리하겠습니다.”
서울 흑석역 3번 출구 소녀상 앞에 세워진 추모비를 바라보던 이수진 민주당 후보는 힘주어 말했다.
17일 오전 11시 소녀상 앞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 후보는 연보라색 니트 차림이었다. 보라색은 정대협 행사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소녀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이 후보는 “현충원을 참배했을 때 방명록에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이번 총선 꼭 승리하겠다’고 썼다”며 “동작을 출마도 사실 항일운동을 왜곡하고 독립운동가 뜻을 쳐내버리는 무리의 행태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싶어서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인재영입 13호로서 4일 공천된 이 후보는 이 지역 연고가 거의 없다. 전북 전주 출신이며, 동작에 거주한 경험도 없다. 이 때문인지 지역 이슈보다는 ‘친일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적극 앞세우고 있다. 나경원 후보를 겨냥한 전략이다. 나 후보는 2004년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것이 구설에 올랐다.
이 후보는 2018년 현직 판사로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관여한 강제징용 사건 재판 지연 의혹을 제기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인지도에서는 아직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이 후보와 서달로 인근 상가지역을 지나는 동안 알아보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지도에서 박빙이지만, 당선 가능성에서는 뒤처지는 건 인지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지역 주민들이 저에게 ‘꼭 이겨달라’ ‘힘내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며 “얼마 전엔 한 소년이 비타민 봉지를 주면서 ‘판사님 꼭 힘내세요’라고 말해줘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이 후보는 ‘금수저’ 이미지인 나 후보와 대비시키기 위해 ‘흙수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강점에 대해 “사법개혁을 하면서 보여준 진정성”이라며 “앞으로도 그렇게 진정성있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작을 현안과 관련해선 “서초나 강남과 비교하면 주변 환경이 열악하다. 잘 살펴서 쾌적하고 행복한 동작을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왜 이렇게 젊으세요. 아드님도 파이팅!”
18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남성역 인근을 지나는 모자(母子)에게 다가간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리 유세를 나온 나 후보는 통합당을 상징하는 분홍색 점퍼에 운동화 등 간편한 차림이었다. 이 지역에서 재선을 한데다가 4선ㆍ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전국구 스타인 나 후보는 적극적인 스킨십을 앞세웠다.
주민에게 빠른 걸음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는가 하면, 잠시 멈춰선 택시에도 달려가 창문으로 명함을 건넸다. 마침 인근 건물에서 50대 남성이 나오자 나 후보는 재빨리 다가가 “요즘 검도장은 어떠신가. 너무 걱정이 많다”고 말을 건넸다. 남성도 “매우 어렵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반갑게 맞았다. 유세 중에 한 여성이 먼저 다가와 “(남성중) 학교 운영위 회의할 때 참석해 급식 등 문제점을 청취하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간혹 나 후보가 다가가 명함을 주면 고개를 돌리거나 받기를 거부하는 주민도 있었다. 호불호는 확실하게 갈리는 편이었다.
동작구 출신인 나 후보는 재선 경험을 앞세워 ‘지역 발전’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그동안 동작구민과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토요데이트’라는 민원상담 행사는 1000회 넘게 진행했고 서초구와 동작구를 잇는 서리풀터널을 개통시키는 등 동작구 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곳에서 태어나고 지난 6년간 동작에서 열심히 일한 성과에 대해 지역 주민이 평가해주시고 있다”며 “다시 한번 당선되면 5선 의원으로서 정말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에서 벌이는 ‘친일 프레임' 공세에 대해선 “안타까운 정치공작이다. 정치인 중에서 일본 편을 드는 사람이 있겠냐”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동작 주민이 원하는 건 가짜 프레임이 아니라 동작 주민과 지역에 누가 더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느냐”라고 강조했다.
유성운ㆍ손국희ㆍ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