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로부터 잔고증명서를 받은 안모(59)씨가 50억원 이상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2016년 7월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반정우)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안씨는 2017년 6월 2심에서는 돈을 일부 갚은 점이 인정되며 30억원을 가로챈 혐의가 적용돼 징역 2년 6월로 감형됐다. 2017년 10월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안씨는 2013년 1월 최씨를 만나 “내가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10여년 근무하다가 직장 선배의 비리를 대신 책임지고 사표를 내고 나왔다”며 “그 선배가 현재 캠코의 임원으로 일하면서 부동산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접근했다.
1‧2심과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결국 최씨는 또 다른 피해자 강모씨와 함께 안씨로부터 사기를 당한다. 안씨는 2018년 10월 민사 재판에서도 최씨에게 33억600만원을, 안씨의 사위인 김모씨와 함께 공동으로 최씨에게 24억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는다.
최씨 측 “안씨한테 당한 사기 피해액 59억원으로 추산”
최씨 측 변호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안씨로부터 피해를 본 건 59억원으로 추산된다”며 “쉽게 말하면 보이스피싱처럼 돈을 뜯겼는데 거기다가 잔고증명서까지 요구해 빼앗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빌려간 돈을 돌려달라고 재촉하자 ‘캠코와 관련된 좋은 물건이 있는데 이를 취득해 단기 매매 차익으로 돈을 갚겠다’면서 '100억대의 잔고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며 “‘예금이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더니 ‘캠코 선배에게 보여만 주는 것이니 가짜라도 잔고증명서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잔고증명서 문제는 2016년 1월 서울 남부지검 수사에서도 안씨가 먼저 문제를 제기해 최씨와 대질신문으로 다뤄졌다고 한다. 최씨 측 변호사는 “안씨는 최씨의 사위가 검사라는 것을 알고 장모에게 접근했고, 계획적으로 이를 약점으로 잡아 최씨가 자신을 고소하지 못하게 잔고증명서라는 덫을 놓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검찰이 피해자나 이해 관계자 고소가 없는 상태에서 사건의 피해자인 최씨의 잔고증명서까지 인지해 기소했다면 ‘가해자 봐주기 식 수사가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씨 측은 "이번에 의정부지검에서 잔고증명서 사문서 위조 혐의로 조사가 이뤄진다면 안씨의 계획적인 접근과 최씨를 속여 잔고증명서를 받아간 과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잔고증명서 보고 돈 빌려줬다는 주장 비상식적”
이번 의정부지검 수사를 앞두고 최씨의 잔고증명서를 믿고 18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투자자 A씨에 대해서는 “안씨가 잔고증명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듣고 2013년 말 모두 회수했다”며 “A씨와는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에 며칠치 이자만 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잔고증명서를 잠깐 보고 돈을 빌려줬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는 노모씨가 진정을 내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의정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노씨는 납골당 시행사 경영권을 둘러싸고 장모 최씨와 가까운 김모씨와 분쟁을 벌이다 지난해 9월 검찰개혁위원회에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尹 장모에 누명" 16년 주장 사업가, 판결문 보니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최씨의 소송 사기 사건도 이미 법원에서 여러 차례 결론이 난 건이다. 사업가 정대택씨는 지난달 “최씨로부터 소송 사기를 당했고, 최씨가 법무사에게 돈을 주고 나를 모함하게 해 징역까지 살았다”며 최씨를 소송사기죄, 무고죄, 사문서위조죄로 고소ㆍ고발했다.
하지만 정씨의 이같은 주장은 이미 과거 수차례의 재판에서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소송 사기 건은 1·2·3심 법원에서 한 번도 정씨 손을 들어준 적 없다. 정씨는 재심 청구에 재항고까지 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고, 이후에도 정씨가 계속 같은 주장을 펴 그 진위를 가리기 위한 명예훼손 재판도 열렸지만 모두 정씨의 패소로 끝났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정씨와 최씨의 악연은 지난 2003년 시작됐다. 정씨는 최씨에게 “152억원 상당의 서울 송파구 스포츠센터 채권을 싸게 사서 다시 팔자”며 투자를 제안했다. 투자금을 댄 최씨는 채권을 100억원에 낙찰받아 약 52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정씨는 이익의 절반인 26억원을 달라고 최씨에 요구했다. 자신의 중학교 동창인 법무사 백모씨의 입회 하에 체결했던 약정서를 근거로 들었다. 최씨는 정씨의 강요로 약정서를 체결했다며 그를 강요ㆍ사기 미수 등 혐의로 고소했다. 법무사 백씨도 이익의 반을 나누기로 했다는 말은 들은 적 없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법원은 최씨의 손을 들어줬고 정씨는 2006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법무사 자백, 법원은 왜 "믿을 수 없다" 했나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은 5년 뒤 재심 청구까지 가게 됐다. 중간에 법무사 백씨가 진술을 뒤집으면서다. 정씨는 최씨에 대한 무고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백씨는 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최씨에게 2억원을 받고 위증을 했었다”고 증언했다. 사실은 정씨와 최씨가 투자 이익을 절반으로 나누자는 약정서를 체결한 게 맞다는 얘기다.
하지만 법원은 백씨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이 수상하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백씨는 진술을 뒤집을 당시인 2005년에 변호사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데도 최씨에게 법률 조언 등을 해준 대가로 2억원을 받았다는 게 그가 받는 혐의였다. 법원은 백씨가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2억원이 법률 조언이 아닌 위증의 대가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백씨가 상황에 따라 말을 여러 번 바꾼 점에 주목했다. 그는 위증의 대가라던 2억원에 대해 나중엔 최씨와 동업을 해서 나눠 가진 이익이라고 진술을 바꿨다. 재판부는 백씨가 도중에 최씨 측과 돈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점도 그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줬을거라 봤다. 정씨가 최씨에게 약정서 체결을 강요했다고 볼 만한 다른 정황들이 있는 점도 고려했다.
정씨 "검찰이 편파 수사·기소" 주장
결국 정씨는 최씨와 관련된 모든 소송에서 졌다. 이후에도 정씨는 같은 내용의 주장을 온라인에 퍼뜨리고 인쇄물로 만들어 공공기관에 뿌리는 등 행위를 계속해 2015년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됐고, 2017년에는 실형 1년이 확정됐다.
정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사건 초기 수사 과정에서 최씨가 했던 거짓말이 드러났고 법무사 백씨가 변호사법 위반 혐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위증을 했으니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자수를 했는데도 검찰은 모두 불기소 처분하거나 구약식으로 넘기고 나에 대한 것만 모조리 기소했다”며 검찰이 편파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2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수사 중인 윤 총장의 장모 소송사기 사건을 의정부지검으로 이송했다. 중앙지검은 "의정부지검에서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인 점과 일부 피고발인 주거지 관할 등을 고려해 19일 사건을 이송했다"고 밝혔다.
김민상‧박사라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