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코로나 블루가 낳은 '확찐자'유머, 아버지 반응은

중앙일보

입력 2020.03.18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16)

“내가 아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려다 사람이 오기에 열림 버튼 눌러서 문을 열어줬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타지 않고 서 있는 거야. 내가 빨리 타라고 하니까 대답도 하지 않고 옆으로 가버리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마스크 안 썼다고 피한 것 같아. 나는 온종일 집에만 있는 사람인데, 병균이 있으면 밖에 나다니는 자기들한테 더 많지. 사람의 호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말이야.”

집에 돌아온 날 보자마자 아버지가 기가 막힌 듯 쏟아내셨다.

“아버지, 잠깐 담배 피우러 나가실 때도 마스크 꼭 하셔야 해요. 마스크 안 하고 나가셨다 감염되면 제가 바로 감염되고, 그러면 우리 사무실 사람들까지 옮아서 큰일 나요.”

그 말이 화근이었다. 기다리셨다는 듯 화가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그래서 나같이 늙고 병 있는 사람은 나다니지 못하게 하는구나. 젊고 쓸모 있는 사람들한테 옮길까 봐. 매년 독감으로 3000명씩 죽고 폐렴으로 2만 명씩 죽는단다. 나는 오늘 하루만도 4명이나 죽었다고 문자 메시지 받았다. 40년생도 있고 45년생도 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같은데, 왜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냐. 친구들끼리 얼굴이나 보고 살아야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집에 처박혀 있는 게 사는 거냐? 우울증 걸려 죽겠다.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숨도 안 쉬어지는 마스크 끼고 헐떡대는 것도 한심하다. 길거리 사람들이 모두 눈만 동그랗게 내놓고 의심하며 쳐다보고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슬슬 피하고, 이런 세상 더 오래 살라고 해도 살기 힘들다. 그러잖아도 젊은 사람 줄고 노인 인구 늘어난다고 걱정인데, 이런 때 할 일 없는 노인은 좀 죽는 게 낫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전염병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느끼는 것이 병 그 자체도 두렵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잠자는 가족과 동료들을 피하고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전염병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느끼는 것이 병 그 자체도 두렵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잠자는 가족과 동료들을 피하고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Pixabay]

아차 싶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마스크 꼭 써야 한다고 강조하려 한 말이 엘리베이터 건으로 받은 상처에 소금 뿌린 격이 되었다. 다친 아버지 마음은 살피지 않고 가르치듯 한 그 말, 평소 귀가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된 내가 걱정이랍시고 한 말이 아버지 가슴에 화살로 꽂혔다. ‘비말감염이니 백신도 없고 기저질환 있으신 분이 더 위험하다’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는 안 통하겠다 싶어, 분위기나 바꿔 보자고 최근 친구에게 들은 ‘확찐자(코로나바이러스 피하려고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서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해서 (살이) 확 찐 자가 되었다는 유머)’ 이야기를 했더니 “온종일 집에서 먹기만 하니, 내가 지금 딱 돼지가 된 느낌이다”하시며 진심으로 반응해 분위기만 더 무거워졌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전염병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느끼는 것이 병 그 자체도 두렵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잠자는 가족과 동료들을 피하고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점잖은 용어로 표현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 누구도 믿지 말고 나부터 조심하고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로선 사실 내가 걸리면 어쩌나 하는 것보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더 두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검사받기 원한다고 바로 검사받을 수도 없고, 확진자 중 병원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조바심과 공포가 부쩍 늘었다. 옆 사람 기침 소리에 흠칫 놀라고 ‘큰일이야 큰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아버지도 온종일 집에서 뉴스를 실시간으로 계속 보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확진자와 사망자가 몇 명 더 늘었는지 꼭 물어보았다. 일상이 정지된 삶 속에서 심각함을 더해가는 뉴스를 반복해 보다 보면, 불안도 불안이지만 분노의 감정이 커지는 것이 걱정되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9.8%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이 정지된 것으로 느낀다’고 답했다는 보도도 봤다. 아버지가 ‘돼지가 된 느낌’이라 표현한 대로 주요 확산지역인 대구·경북 지역 응답자의 65%는 ‘자신을 무기력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리적 불안과 무력감이 생기면 다시 변비 증상이 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아버지 대답은 시원했다. ’가슴에 분노가 끓어서 그런가? 방귀는 뿡뿡 잘 나온다. 손 씻으면서 ‘퐁당퐁당’ 노래 부르고(30초간 손 씻기 위해 권장하는 노래) 변기에 앉으면 트로트 부른다.“ [사진 Pixabay]

심리적 불안과 무력감이 생기면 다시 변비 증상이 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아버지 대답은 시원했다. ’가슴에 분노가 끓어서 그런가? 방귀는 뿡뿡 잘 나온다. 손 씻으면서 ‘퐁당퐁당’ 노래 부르고(30초간 손 씻기 위해 권장하는 노래) 변기에 앉으면 트로트 부른다.“ [사진 Pixabay]

“아버지 요즘 변은 문제없이 누시지요?”
얼마 전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인한 변비 때문에 한 달 가까이 고생해 혹시 또 그런 일이 있을까 염려되었다. 정상적인 활동과 생활패턴이 무너지고 심리적 불안과 무력감이 생기면 다시 이 증상이 올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아버지 대답은 시원했다.

“가슴에 분노가 끓어서 그런가? 방귀는 뿡뿡 잘 나온다. 손 씻으면서 ‘퐁당퐁당’ 노래 부르고(30초간 손 씻기 위해 권장하는 노래) 변기에 앉으면 트로트 부른다.”

뜻밖에 코로나19와 더불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트로트 열풍이 아버지의 울분을 달래주고 있었다. 마스크 외출을 거부하는 아버지는 지난 주말 각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하는 트로트 프로그램으로 우울함을 이겨냈다. 아버지에게는 마스크보다 ‘트로트’가 현재로썬 더 효과적인 방어체계인 셈이다.

추신 : 강릉 사는 언니2가 상경, 남한산성에 모시고 가서 고기도 사드리고 바람도 쐐 드리자 아버지는 유쾌해지셨다. 소나무 숲에서 노래도 크게 한 자락 하셨다 한다. 함께 사는 딸은 마스크 써라, 손 씻으라고 잔소리만 느는데, 언니2는 시원한 바람 쐐드리고 맛난 고기까지 사드리니 점수가 올라갔다. 지난 10년간 유지해 온 효녀 심청 타이틀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위태롭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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