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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권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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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전교 5등이면 자퇴하는 게 낫겠죠?”

얼마 전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에 다니는 A군과 학부모가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를 찾아왔다. “이제 2학년인데 지금 내신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며  상담하고 싶어 왔단다. 임 대표는 “보통 일반고에서 수시모집으로 서울대에 밀어줄 수 있는 학생은 많아야 1~2명 정도”라며 “1학년 내신이 안 좋으면 A군처럼 검정고시로 수능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수시는 내신과 스펙이 중요하다. 내신은 한번 삐끗하면 만회하기 어렵다. 3년 내내 옆에 앉은 친구와의 경쟁도 스트레스다. 각종 수상실적까지 쌓으려면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학교에선 모집정원의 77.3%(2020학년도)에 달하는 수시에 집중하다보니 수능 공부에 소홀하다. 결국 정시를 준비하려면 어차피 학원에 가야 한다.

그렇다 보니 최근엔 ‘고교 자퇴 → 검정고시 → 정시 수능’을 노리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달 서울대가 발표한 2020학년도 정시 합격자 통계(최초합격 기준)를 보면 검정고시 출신 비율이 1년 만에 1.4%에서 3.5%로 급증했다. N수생이 58.8%였고, 재학생은 37.7%였다. 재수생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입시를 위해 자퇴생이 늘어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노트북을 열며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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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몇 년간 고졸 검정고시 응시자 중 10대 비율은 2015년 절반(50.7%)을 넘어선 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는 전체 응시자(4만3816명)의 68%(2만9659명)가 10대였다. 과거엔 학교 부적응이나 학업에 뜻이 없어 자퇴했지만 요즘엔 A군처럼 성적 우수한 아이들이 내신 부담 탓에 그만둔다.

조국 전 장관 부부가 자녀 입시를 위해 벌인 상상초월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학교 탈출’이 누군가에겐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아이는 똑똑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부모가 뒷받침해줄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고교를 자퇴하는 ‘웃픈’ 현상은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으로 당분간 심화될 전망이다. 학교는 여전히 수시에 집중하지만, 정시 기회가 늘면서 이를 노리는 학생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학교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교 탈출’ 러시는 공교육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

2년 전 A군과 똑같은 고민을 했던 B군의 부모가 최근 임 대표를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이번 입시에서 실패한 B군은 고교 졸업후 재수종합반에 등록했다. 처음 상담했을 때 일찌감치 자퇴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점점 ‘자퇴 권하는 사회’가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