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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혁의 데이터이야기

데이터 분석 결과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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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여긴다. 게다가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을 마주치면 그걸 어떻게든 단순화하려 한다. 예를 들자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와 분석결과가 곧 다가올 심각한 기후변화를 가리키고 있어도 듣는 사람이 “오늘 우리 동네 날씨가 추운데 뭔 온난화?”라고 무시하는 식이다.

사용자들 몰이해로 분석결과 무시 #분석가도 사업 목적을 잘 이해해야 #비즈니스-데이터 간 ‘통역사’ 필요

특히 고위직들의 의견은 장시간 다량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얻은 결과를 단숨에 눌러버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중역들은 자신의 판단에 지나친 가중치를 두는데, “여태 내 직감으로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내 판단이 옳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 개인의 판단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적으로 그가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정보와 과거의 경험에만 기초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의 사용이 일상화된 미국 기업에서도 그 수많은 분석결과의 20% 정도만이 비즈니스에 실질적으로 적용된다는 보고가 있다. 주원인은 분석 목적이 애초부터 사업방향에 맞지 않았거나, 분석결과를 실전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별개의 경영 프로세스인데 그걸 간과해서 그렇다.

아예 방치된 데이터가 무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분석을 통해 답이 나와 있어도 무시되는 건 분석가가 사용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작업만 했든가, 아니면 유용한 결과라도 사용자의 몰이해로 그것이 그저 하나의 의견으로 치부돼 버린 경우다.

예를 들어 고객당 구매액과 방문횟수가 동반 하향세라는 결과가 나와도 마케팅이나 판매방식, 매장의 구조 등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저 하던 대로만 계속할 것이면 빅데이터고 뭐고 다 필요 없는 일이다. 비단 비즈니스뿐 아니라 그 어떤 의사결정에도 데이터는 사용하기 나름이다. 이미 수년 전에 구글에서는 그들이 모은 사람들의 이동 및 SNS 데이터만 가지고 전염병이 어느 방향으로 먼저 퍼질지 기존의 방역데이터에만 의존한 경우보다 더 빠르게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새로운 타입의 정보와 분석방식, 그에 따르는 전문가의 조언을 의사결정자가 무시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직업적인 분석가뿐 아니라 의사결정자들도 이제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 만약 데이터가 항공기 기체결함, 적의 공격 가능성, 전염병 전파나 혹은 원자력 사고에 관한 것이라면 사고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그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파괴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예측 오차범위가 다소 크더라도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반면에 그 ‘틀린 대가’가 비교적 크지 않은 상품판매나 교통정보에 관한 분석결과는 좀 더 확실한 답이 나온 후에 대응해도 늦지 않다. 상황에 따라 숫자 이상의 의미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는 분석팀은 폼으로 만들어 놓고 기존의 경영방식을 더 공고히 하는 데만 아전인수격으로 데이터를 쓰는 것이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것과 자기 합리화는 모든 이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지만, 정보를 눈앞에 갖다 바쳐줘도 무시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에 큰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자질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분석이 우선적으로 필요한지는 사업목적과 리더의 의중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분석가도 모호한 경우를 마주칠 때 반드시 ‘So what(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냐)?’이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이 관여할 수 없는 일에 관한 것이나 전략적 방향과 무관한 것이라면 아무리 학술적으로 흥미 있는 일이라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에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결과라도 그 파급력이 심각하다면 상관의 길을 막고서라도 전달해야 하는 중간자로서의 의무가 있다.

데이터 사용이 체질화된 조직문화에서는 의사결정 과정부터 다르다.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주의 아이디어라도 폐기될 수 있다. 위기에 관한 정보를 계속 무시하면 사장도 잘린다.

뭐든 미국식이 최선은 아니지만, 데이터 사용의 역사가 긴 곳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기관이나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위기상황에 잘 대처하는 듯 보이는 것도 데이터를 무시하지 않는 조직문화와 프로세스에 기인한다. 분석방법과 더불어 결과를 대하는 태도도 보고 배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룰 일이 아니니 비즈니스와 데이터의 세계를 넘나들며 통역사 역할도 하는 분석전문가의 말에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일이다. 분석결과는 단지 그들의 의견이 아니다.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