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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드라마 ‘모래시계’ 신화 썼다…최민수·고현정·이정재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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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모래시계

모래시계

“이것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성공할 수 있을까요.”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63) #<34> 방송 경영인으로 새 출발 #95년 국민드라마 ‘모래시계’ 제작 #충무로 경험 살려 흥행에 자신감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저력 믿어 #2001년 제주 민영방송도 설립해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학(1951~2013) PD가 송지나(61) 작가와 함께 1994년 무렵 나를 찾아왔다. 드라마 ‘모래시계’ 대본이었다. 나는 단박에 작품성을 알아차렸다. 흥행을 예감했다.

“한번 잘 만들어 봅시다.”

나는 선뜻 결정을 내렸다. 충무로 현장을 떠난 지 한참 됐지만 60~70년대 영화를 보는 눈을 키워왔기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게다가 김종학-송지나 콤비는 91년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로도 이미 탄탄한 실력을 입증한 프로 중 프로였다. 나는 아낌없이 지원했다. 최고의 드라마가 탄생하는 데 일조했다. 송 작가에게 내 제주도 집을 잠시 내주었다. 송 작가는 그곳에서 두 달 정도 머물며 ‘모래시계’를 채워나갔다.

90년 SBS 5대 주주로 방송계 입문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다. 송 작가가 대본료로 선불금 2억원을 요구하자 SBS 본사에서 꺼리는 기류가 있었다. 당시 임형두 SBS 편성제작본부장이 내게 “본사 차원에서는 힘들 것 같으니 SBS프로덕션에서 한번 검토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당시 SBS프로덕션 대표는 내가 맡고 있었다. 회사를 나름 독립적으로 이끌었다. 드라마가 뜰 것으로 확신한 나는 “그럼 내가 만들겠다”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78년 ‘화조’를 끝으로 충무로 현장을 떠나 이것저것 사업을 벌였지만 영상문화에 대한 끈은 놓고 있지 않았다. 80년대 컬러TV 방송이 시작되면서 대중문화의 축이 영화에서 방송으로 옮아갔다. 언젠가는 방송국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민영방송 SBS(서울방송) 창립 주주 모집 소식을 들었다. 윤세영 태영건설 회장이 지분 30%를 보유한 지배주주였다.

‘모래시계’(1995)를 제작한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드라마 종방 파티에서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모래시계’(1995)를 제작한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드라마 종방 파티에서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지분 5%를 투자해 5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90년 11월 14일 태영빌딩 회의실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윤 회장이 SBS 대표이사·사장에 취임했다. 나는 비상근 이사로 선임됐다. 92년 SBS프로덕션을 설립하고 방송용 프로그램 및 비디오·음반 제작, 국내외 판매사업을 펼쳐나갔다. SBS프로덕션이 만든 5부작 환경 다큐멘터리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에서는 직접 리포터로 출연해 “영화 ‘화조’ 이후 15년 만의 활동 재개”로 주목을 받았다.

SBS프로덕션 대표 시절, 두고두고 기억할 작품을 남겼다. 바로 95년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른 ‘모래시계’다. 광복 5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돼 1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방영된 ‘모래시계’는 수도권에서 64.5%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방송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일찍 귀가해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퇴근시계’ ‘귀가시계’라는 별칭마저 붙었다.

결과적으로 ‘모래시계’는 SBS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PSB 부산방송(현 KNN 부산·경남방송), TBC 대구방송, TJB 대전방송, KBC 광주방송, UBC 울산방송, JTV 전주방송, CJB 청주방송 등 7개 지역 민방이 95년 개국한 데도 ‘모래시계’의 영향이 컸다. (이후 G1 강원방송, JIBS 제주방송까지 9개의 지역민방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모래시계’라는 제목은 권력의 유한함, 반복되는 역사 등 여러 가지 함의를 품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삼청교육대, 폭력 조직과 정치권력의 공생 관계 등 그간 금기시돼 온 영역을 가감 없이 다룬 것도 인기 요인이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드라마로는 국내 최초였는데, 당시 광주 시민들은 금남로 일대 교통 통제도 항의하지 않고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고 들었다.

최민수 아버지 최무룡 좋아했을 듯

송지나 작가, 김종학 PD. [중앙포토]

송지나 작가, 김종학 PD. [중앙포토]

‘모래시계’는 수많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극 중 폭력조직 보스를 맡은 최민수는 “나 떨고 있냐” “이렇게 하면 너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넌 내 여자니까” 등 명대사를 남기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그해 SBS 연기대상 대상을 받았다. 최민수의 아버지인 배우 최무룡도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다.

출연 배우 모두 각광을 받았다. 모래시계 검사 박상원, 카지노 대부의 딸 고현정, 고현정의 보디가드 이정재 등 ‘모래시계’ 주역들은 한국 드라마의 중추가 됐고, 지금까지도 성실하게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 종방 직후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주연 배우들, 김종학 PD, 송지나 작가와 자축 모임을 가졌는데 벌써 25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에도 종종 후배 배우들을 초대해 식사를 하곤 한다. 이정재는 나를 만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10년간 몸담은 SBS 프로덕션을 정리하고 2001년 12월 ‘제2의 고향’ 제주에서 새로운 민영방송을 시작했다. 지분 21%를 출자해 제주방송(JIBS)을 설립했다. KBS 사장 출신인 홍두표 회장을 초대 JIBS 회장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처음엔 “고문으로는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제도시 제주도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JIBS는 2017년부터 아들 신언식 회장이 이끌고 있다. 나는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인터넷 영상문화가 급성장하며 지역민방 경영도 예전 같지 않다. 방송 광고 경쟁도 치열하다. 제주도 곳곳에 투자한 자금으로 요즘 JIBS 살림을 돕고 있다. 제주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내 스마트폰 벨소리도 제주방송 로고송 ‘행복한 세상 함께 열어요 JIBS’다. 요즘 코로나19로 제주 경제도 폭 가라앉았지만 천혜의 자연을 갖춘 제주는 계속 커갈 것으로 믿는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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