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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협박 30대 무죄확정…법원은 특히 경찰수사를 질타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4년 1박2일의 일정으로 방한한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1박2일의 일정으로 방한한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7월 백악관 홈페이지에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협박하는 글을 올렸던 30대 남성에게 대법원이 흔치 않은 이유로 12일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날 "경찰과 검찰이 압수수색 등 수사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는 중대한 위법을 저질렀다"며 피고인 이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씨는 1심에선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법원은 특히 이번 사건을 맡았던 서울지방경찰청에 대해 "수사의 편의를 위해 (압수수색의) 절차와 조항을 무시하고 임의적인 판단을 했다"고 질타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경찰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 말했다.

오바마 협박 사건의 전말 

이날 무죄를 받은 이씨는 2015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백악관 홈페이지에 오바마 대통령 가족을 협박하고,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하겠다는 글을 올려 협박 미수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2016년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박사랑 부장판사)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파장을 일으킨 범죄로 주한미국대사관 측에서도 철저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며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 판결은 2019년 10월 2심 선고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대법원도 수긍한 2심 판결이 주목한 것은 경찰과 검찰이 이씨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지키지 않은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이었다.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검찰의 모습. 당시 조 전 장관 지지자 측에선 과도한 압수수색이란 반발이 나왔지만 검찰은 "적법한 절차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뉴스1]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검찰의 모습. 당시 조 전 장관 지지자 측에선 과도한 압수수색이란 반발이 나왔지만 검찰은 "적법한 절차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뉴스1]

무너진 수사원칙  

2심 재판부(김행순 부장판사)는 이씨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이 ▶범죄사실과 무관한 다수 전자정보를 탐색·압수한 점▶압수수색 과정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을 배제한 점 ▶압수 상세 목록을 피고인에게 제공하지 않은 점 등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압수수색 전체를 위법하게 할 정도로 중대해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한 증거는 유죄인정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증거 대부분이 인정되지 않으며 이씨는 결국 '증거가 부족해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경찰과 검찰의 잘못을 모두 지적했지만, 판결문에는 수사 전반을 총괄했던 서울지방경찰청에 대한 질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찰과 검찰 측에선 이씨가 수사 과정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협조하지 않은 점, 이씨를 긴급체포한 상황에서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했던 점 등을 항변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수사기관이 편의를 위해 절차와 조항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임의적으로 판단한 사례"라 지적했다. 또한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실체적 진실추구란 목적과 이 과정에서 침해될 수 있는 피압수자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등 기본권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 [연합뉴스]

검·경 무리한 수사 경종울리는 판결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단에 대해 법조계에선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란 평가가 나왔다. 특히 "수사기관이 피고인과 가족의 참여권을 배제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배척한 1심 판결을 파기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는 해석이다.

수도권의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아직도 많은 판사들이 '나쁜 사람은 벌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적법절차의 위법성엔 관대한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에서 결과만큼 절차도 중요하다는 확고한 신호를 준 것"이라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형사 재판에서 경찰 수사과정의 적법절차를 따지고 있는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날 판결이 향후 재판 과정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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