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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부총리는 마스크 공장 달려갔다, 우리 경제는 누가 챙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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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경기도 안성, 파주, 용인.

마스크 생산·제조 회사가 자리한 도시이자 지난 9일 경제장관들이 달려간 곳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안성 케이엠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파주 아텍스를 방문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용인 상공양행을 찾았다.

그날 한국과 세계 증시는 ‘검은 월요일’ 충격에 휘청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다 유가 하락까지 겹친 탓이다. 주가가 무너진 날 경제 컨트롤타워와 산업정책 수장이 마스크 대책에 목을 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스크 판매와 관리는 그간 사회경제장관회의 영역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담당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장·차관이 직접 현장을 챙기라”는 지시를 한 이후 기재부가 총대를 멨다. 다른 경제 부처도 마스크를 정책 우선순위에 뒀다. 마스크 5부제, 대리구매 개선 등의 대책 입안과 브리핑은 모두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주관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둘째)이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마스크 생산 업체인 케이엠을 방문, 생산현장을 시찰하며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둘째)이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마스크 생산 업체인 케이엠을 방문, 생산현장을 시찰하며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이런 사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쇼핑·관광이 죽 쑤고 고용, 수출이 흔들렸다. 국내외 기관에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앞다퉈 낮춰잡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경제부처 장·차관들이 마스크 업무에 하루를 다 쓸 때가 있다”며 “물론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당면 경제 과제나 앞으로 올 충격에 대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하다”고 걱정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제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 1차관이 마스크 브리핑에 잇따라 나선 모습은 정상적이지 못하다”며 “업무 효율 측면에서도 마스크 수급 대책은 그간 관련 업무를 해 온 보건복지부나 식약처가 일임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팀이 매달렸다고 마스크 문제를 풀어낸 것도 아니다. 공급 대비 수요가 두세 배 이상 많기 때문에 애초부터 수급으로 풀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었다. 오락가락한 정부의 마스크 사용 지침부터 바로 잡았어야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와대와 정치권이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기재부를 비롯한 경제팀이 큰 방향의 정책 제시를 못 하고 급한 사안을 처리하는데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기재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 콘트롤타워가 코로나19 쇼크에 대응토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예비비 집행,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긴급 자금 지원 등 속도를 높여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현장은 중요하지만 보여주기 식의 현장 방문을 하기엔 경제팀 앞에 높인 숙제가 산더미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도 『국화와 칼』이란 명저를 남겼다. 홍 부총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고민했으면 한다.

하남현 경제정책팀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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