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탈리아 교민 "정치인 확진 나오자 조치···이동제한령은 뒷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탈리아 전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첫날인 지난 10일(현지시간).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교민 이상호(35)씨는 본지 통화에서 “현지 사람들도 열에 셋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며 “그전까진 심한 감기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이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이태리부부’를 운영하며 관광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이씨는 지난달 23일부터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관련 상황을 유튜브를 통해 알리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이상호씨 #처음엔 심한 감기 정도로만 생각 #업무·건강 이유로 도시간 이동은 가능 #카페 테이블 넓히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 권장 #동네 마트, 물건 못 살 정도는 아냐 #1월 중순부터 한국 관광객 줄어

베네치아가 속한 베네토주는 지난달 22일 롬바르디아주 등 10개 지역과 함께 1차 레드존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이씨는 “이탈리아의 한 유력 정치인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이후에야 조치들이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동제한 명령이 조금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는데, 이미 북부에서 남부로 전국적으로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당의 니콜라 진가레티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공개한 것을 가리킨다.

전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탈리아 현지TV의 보도. [사진 이상호]

전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이탈리아 현지TV의 보도. [사진 이상호]

실제로 이탈리아 정부는 다음날 2차로 4개 주 14개 지역을 레드존으로 지정한 데 이어 지난 9일(현지시간) 저녁 이동 제한 명령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도시와 도시 간 이동이 제한되는 것으로, 업무나 건강상의 이유를 적어낸 자술서를 기차역이나 공항,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에게 제출하면 이동이 허가되기도 한다. 이씨도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집안에 머무르면서 주로 주밀라노 총영사관 페이스북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는 “동네 카페테리아에 가면 서서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서빙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테이블 간격도 넓혀서 배치했다”며 “관공서에 업무를 보러 가는 경우에도 바깥에서 2명씩 들어가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상호씨가 8일(현지시간) 들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마트. 신선식품들 위주로 많이 팔려나간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이상호씨가 8일(현지시간) 들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마트. 신선식품들 위주로 많이 팔려나간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마트. 신선식품들 위주로 많이 팔려나간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마트. 신선식품들 위주로 많이 팔려나간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한국인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에 터 잡은 이씨의 경우 당장 귀국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이씨는 “외교부가 이탈리아에 내린 여행경보가 2단계인데, 철수 권고인 3단계가 나오면 저희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롬바르디아주, 마르케주, 베네토주, 에밀리아·로마냐주, 피에몬테주 등 5개 지역에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 자제’를 발령한데 이어 11일에는 이밖에 지역에도 여행을 유의하라는 여행경보 1단계를 발령했다. 이탈리아 전역에 여행경보가 발령된 것이다.

다만, 주변에 미혼인 교민 일부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국과 이탈리아 직항편이 끊겨 중동을 거치는 등 경유편을 이용해서 귀국한다고 한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은 11일 홈페이지에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 시 자술서(이동 사유를 반드시 “귀국”으로 작성), 여권, 항공권을 제시하면 공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씨는 사태가 장기화할 우려가 있어 식수와 생필품 등을 넉넉하게 사다 놨다. 그는 “동네 마트에 평소보다 사람이 많긴 하지만, 물건을 못 살 정도의 분위기는 아직 아니다”라고 전했다.

가장 염려되는 건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들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다. 이씨는 “여기선 주치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병원에 가든지 해야 하는데, 그게 좀 번거롭다”며 “한국만큼 (의료시스템이) 잘 돼 있진 않아서 여기 교민들도 가능만 하다면 한국에 그런 이유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분위기가 심한 편은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시아인 자체가 요즘 잘 안 보이는 상황”이라며 “유학생 거주지나 관광객이 많은 밀라노 등에서 발생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풍경. 관광객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풍경. 관광객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풍경. 이때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풍경. 이때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사진 이상호]

이씨는 지난달 26일을 끝으로 당분간 가이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 관광객 수요는 지난 1월 중순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상황이 악화되면서 이달 예약한 고객들에게는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조치했다. 7~8월 예약 고객 가운데서도 취소 문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당장 생업을 꾸려나갈 일이 걱정이지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여행객을 받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 현지 분위기라고 한다.

이탈리아 내 주요 관광 명소들도 영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씨는 “6~8월이 성수기인데,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여 고민이 많다”며 “이 상황이 더이상 악화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안정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