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는 「협상의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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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O년대 초 「동방정책」의 기수로서 동서데탕트의 문을 엶으로써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는 방한 이틀째인 25일 「21세기의 비전」을 주제로 강연한데 이어 26일에는 서울대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동서 관계의 전망-유럽인의 견해」 주제의 연설을 했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 (SI)의장직을 14년째 연임하고 있는 브란트 의장은 25일의 특별강연에서 『양극시대는 종식을 고하고 있으며 새로운 「중추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 같은 중추세력들의 역할증대는 현재 환경이나 개발정책과 같은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앞으로는 군비관리·국제통화·국제법 등 다른 중요분야에서도 똑같이 필요하다』 고 역설했다.
브란트 의장은 『안보· 환경·외채 등 21세기의 국제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동서양진영 지도자들의 「신사고」 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이 같은 선의의 연대가 확산되면 세계는 화목한 분위기를 맞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26일 서울대에서 있은 브란트 의장의 학위수락기념 연설의 요약.
『오늘날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새로운 길, 즉 「지속적인 평화와 발전의 길」 을 모색하고 있다.
레이캬비크에서 그토록 험난했던 미소정상회담이 성사된 이래 이들 양국은 공동안전의 장치를 마련하는 길에 대해 지금까지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 유럽과 관련된 중거리미사일감축협정 이래 현재 제네바협상과 빈의「대 원탁 회의」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어 가까운 장래에 전략무기와 재래식무기 부문에서도 광범위한 군축 조치가 합의 될 전망이다.
방한직전 본인은 모스크바에서 「개혁의 건축사」 라 할 수 있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폐쇄정책과 지나친 계획만능주의 적인 관리로서는 더 이상 소련사회를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실토했다.
이제 소련체제는 개방의 길을 걷고 있고 경제·사회적 결함들이 언론에서는 물론 소비에트 최고회의에서도 거침없이 논의되고 있다.
본인은 군사부문에 묶여있던 지적·물적 자원이 다른 부문으로 돌려진다면 많은 것들이 개선되리라고 믿는다.
또한 동구에서의 부담을 벗어나려는 소련지도부의 관심으로 인해 동구에서는 오랫동안 감추어져봤던 많은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노조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폴란드와 개방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고 있는 헝가리가 그 좋은 예다. 또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변화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괄목할만한 정체적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들 동구권에서 나타나고있는 변화과정은 비록 국가마다 다르고 심지어 모순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구국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 국가의 개혁세력들을 도와 성공으로 이끄는데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한편 유럽의 주요국가들이 차츰 가까워지고 있는 동안 서유럽12개국 공동체 (EC) 는 그들 사이의 국경선을 철폐하려 하고있다. 오는 92년부터 이들이 유럽통합이라는 목표에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갈 것은 확실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92년에는 더 높은 경제성장, 더 활발한 교역과 더 큰 유동성이라는 희망과 원대한 기대로 결부되어 있다.
만일 EC가 단일경제통일체로 성장한다면 서유럽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유럽은 이를 다른 국가나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되고 외부에 대한 개방자세는 지속적으로 견지돼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폐쇄를 하는 자는 아마도 동서관계를 함께 구성해 가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과 태평양 지역의 신흥공업국 (NICS) 들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이 모든 것들이 90년대는 지역적인 수준에서든, 국제적인 수준에서든 「협상의 시대」가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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