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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도 부동산 꼴 났다...마스크 대란 한달, 정부가 놓친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하나로마트 창동점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이 마트 밖으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하나로마트 창동점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이 마트 밖으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 생산·판매량 신고 의무화(2월11일)→사재기 일제 점검(2월25일)→수출 금지 및 공공 판매 비중 확대(2월25일)→준(準) 배급제, 마스크 5부제 시행(3월5일).

[현장에서]

마스크도 부동산처럼 공급 대책 외면 

지난 한 달 동안 정부의 마스크 수급 대책의 핵심 키워드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면 이렇다. 마스크 대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공급이 수요에 못 미쳐 가격이 폭등한 것이 핵심 원인이다. 하지만 공급 확대 대책은 강조되지 못했다. 정부 중심의 유통 대책과 규제 방침만이 연일 발표됐다. 국민 모두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주겠다면서 주택 공급 대책은 애써 외면했던 부동산 정책과도 흡사하다.

정부의 '마스크 대란' 접근 방식을 보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관통하는 몇 가지 특징이 엿보인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부터 부동산·일자리 등 정책 실패를 야기한 핵심 원인을 이번 마스크 수급 대책에서도 반복한다.

5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하나로마트 삼송점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5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하나로마트 삼송점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돈벌기 위한 투자, 장려해야 

우선 정부는 민간의 '이윤 추구' 행위를 죄악시한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제빵사의 박애심이 아니라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란 고전경제학의 핵심 명제부터 부정한다. 마스크 생산업체가 주 52시간제 예외를 신청하고 주말에도 공장을 가동하는 이유는 돈벌이에 있다. 기업 입장에선 모처럼 수요가 폭증한 '특수' 기간을 맞은 것이다. 이럴 때 정부는 정당히 세금을 내고 시장가격에 따라 마스크를 파는 행위는 장려해야 한다. 기업이 리스크를 감내하고 설비 증설을 시도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전혀 새로운 마스크 개발에 나서게 되는 유인 동기도 가격 신호다. 불법 사재기엔 강력히 대응하되, 동시에 공급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야 했다. 그러나 폭리 추구를 단속하겠다는 메시지만 계속해서 던지다 보니, 활황을 맞이한 시장에서도 추가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재기만 잡는다고 공급 느나 

마스크 가격을 잡는 방식도 '적폐 청산'식이다.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 주범을 투기꾼으로 규정하고,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다가 수도권 전체를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마스크 가격 폭등도 사재기꾼 탓으로 규정하고 단속을 강화했다. 물론 사재기 업자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사재기 꾼은 마스크 가격 폭등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마스크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란 기대를 심어준 것은 그동안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유통업체 대표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한 도매업자가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스크를 현금 구매하겠다며 다른 유통업자가 올린 영상. [사진 독자 제공]

일정 규모 이상의 유통업체 대표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한 도매업자가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오른쪽은 마스크를 현금 구매하겠다며 다른 유통업자가 올린 영상. [사진 독자 제공]

공공 판매·배급제…'정부 만능주의' 사고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 만능주의'도 문제를 더 키웠다. 쓰기 불편해서 외면받은 제로페이를 고수한 것처럼 민간보다 소비자 접근성, 인프라가 떨어지는 공공 판매처로의 판매 비중을 기존 50%에서 80%까지 늘렸다. 급기야 무상 배급제까지 거론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배급제에 시장 경제를 더 하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시장경제 원리에 배급제를 더하는 게 아니라 배급제에 강조점을 뒀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방식이 더욱 마스크 공급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공공 판매망에선 높게 형성된 시장가격으로 마스크를 팔기 어렵다"며 "값어치를 쳐주지 않는 유통망에는 상품 공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오는 9일부터 1인당 마스크 구매량을 매주 2개로 제한한다.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요일을 나눠 마스크를 사게끔 한 '마스크 5부제'도 시행했다. 대형마트·편의점 판매는 더욱 제한한다. 특정 소비자에게 마스크가 쏠리지 않도록 한 고육책이다. 그러나 마스크 수요 자체를 제한한 이 같은 정책이 시장에 공급 유인을 막아 마스크 품귀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스크 수급 안정화대책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뉴스1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스크 수급 안정화대책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뉴스1

정부는 마스크 제조사가 생산량을 늘리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충원 인력 1인당 매월 80만원을 지원하는 '당근책'도 내놨지만, 수요 억제책을 쓴 상황에선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가 시장가격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얻는 이익보다 낮다면 이 정책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편의점 등 접근성 좋은 곳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게 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마스크를 비축하려는 가수요가 마스크 품귀를 낳고 있다"며 "정부는 제조사가 마스크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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