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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배급제'까지 꺼내든 정부, 결정적으로 놓친 한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 방문한 정부세종청사 내 우체국. 시내 우체국 대신 약국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도년 기자

4일 방문한 정부세종청사 내 우체국. 시내 우체국 대신 약국을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도년 기자

[뉴스분석]마스크 ‘준 배급제’ 효과는 

매일 500만 개 이상의 마스크가 공공 판매처를 통해 풀리고 있지만, 마스크 대란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정부는 '준(準) 배급제' 수준으로 관리를 강화하겠다지만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온라인 공공 판매처 우체국 쇼핑에서도 4일 물량이 없어 판매할 마스크가 없다고 공지했다. 우체국쇼핑 캡쳐

온라인 공공 판매처 우체국 쇼핑에서도 4일 물량이 없어 판매할 마스크가 없다고 공지했다. 우체국쇼핑 캡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일 541만5000개의 마스크를 공적 유통망을 통해 공급했다고 밝혔다. 전날보다 약국 유통 물량(180만개→241만5000개)을 대폭 늘렸다. 접근성이 가장 좋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날도 하나로마트, 우체국, 약국 등에서 줄서기와 허탕이 반복됐다. 온라인 판매처인 '우체국 쇼핑'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살 수 없다. 공영홈쇼핑에서는 통화 연결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공무원조차도 불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줄 설 시간이 없어 공영홈쇼핑을 이용하려 했지만 한 시간 넘게 허비해도 통화 연결이 안 된다"며 "이런 후진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공적 판매 비중을 80~100%로 늘리면 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전문 공공 판매처인 공영쇼핑은 마스크 만은 온라인 판매하지 않는다. 모바일 주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등을 배려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전화를 걸어도 상담원과 연결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공영쇼핑 홈페이지]

온라인 전문 공공 판매처인 공영쇼핑은 마스크 만은 온라인 판매하지 않는다. 모바일 주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등을 배려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전화를 걸어도 상담원과 연결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공영쇼핑 홈페이지]

관리 실패한 정부 "더 개입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부 개입을 더 강화해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4일 "마스크 유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더 개입할 수밖에 없다"며 "배급제에 시장 경제를 더 하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 중이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체 생산량의 50%인 공적 유통 비중을 80%로 늘리고, 필요하면 생산량 전부를 공적 유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전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마스크 공공 판매처를 '전시 물자 수송 철도'에 비유하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전시 철도'라는 공공 판매, 낡은 철도라면?

그러나 철로가 단선이고 낡으면 전시 물자 수송이 어렵듯, 공공 판매처 곳곳에서 이미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 접근성이 좋은 대형마트·편의점이나 로켓배송 등 고도화한 민간 물류 시스템을 마스크 공급에 활용하기 어려워서다. 8차선 고속도로를 두고 정부는 낡은 공공 철도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조달청이 직접 계약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바쁜 생산업체는 계약 업무까지 다시 해야할 판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손해를 감수하고 공적 유통 가격과 같은 수준에서 마스크를 팔려고 물량을 알아봤는데 퇴짜를 맞았다"며 "정부 목표 물량을 맞추느라 신속 유통을 외면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처럼 접근성 좋은 곳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 시민 불안감이 증폭해 필요 이상의 마스크를 비축하려는 가수요도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마스크 유통은 민간·공공 수단 모두를 활용토록 하고, 정부는 기업이 생산설비·인력을 확충해 생산량 자체를 늘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하나로마트 고양점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줄지어 마스크를 사고 있다.   마스크 공적판매처로 지정된 농협은 이날 전국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 70만장을 판매했다. 연합뉴스.

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하나로마트 고양점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줄지어 마스크를 사고 있다. 마스크 공적판매처로 지정된 농협은 이날 전국 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 70만장을 판매했다. 연합뉴스.

여당에선 "무상 배급" 목소리도 

여당은 정부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0대·50대·60대 등 연령별로 날짜를 정해 동사무소 등에서 마스크를 공급하면 사람들이 최소한 한 개는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줄을 설 필요가 없어진다"며 배급제를 제안했다. 배급제는 과거 공산국가의 줄서기 풍경을 자아냈지만, 줄서기를 줄이려는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어 아이러니다.

정부도 무상 배급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배급제를 도입하면 국민 불만을 증폭한다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하루 생산량(1000만장)으로는 1인당 1개 배급이 불가능하다. 5일에 1장씩 배급한다 해도 집 안에만 머무는 사람과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공정하냐는 문제가 뒤따른다. 통·반장 조직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 무료 마스크를 되파는 행태 등도 우려된다. 홍 부총리는 "배급제가 쉽게 작동한다면 정부가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말은 쉬워도 작동하기 힘든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모든 걸 하겠다는 생각 버려야"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거노인 등 마스크 구매 자체가 어려운 계층에 한해 배급제를 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모든 것을 정부가 다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을 마스크 판매로 이득을 보는 나쁜 집단으로 몰지 말고, 오히려 민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조하는 것이 비상 상황 극복에 더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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