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다이아몬드보다 빛나는 반지, 당신은 가진 적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2020.03.05 11: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37)

주얼리는 ‘반짝이는 사진첩’ 같은 존재입니다. 주얼리는 일상생활 속의 물건 중에서도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서랍 속 한쪽에 있던 반지를 보면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목걸이를 보면 그 목걸이에 얽힌 사람이 생각나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합니다. 당신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궁금합니다. 마음의 보석상자를 열어 소중한 주얼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은 언젠가는 알반지(다이아몬드가 중앙에 세팅된 반지)를 꼭 사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결혼할 때, 제대로 된 반지 하나 못 해준 게 늘 마음에 걸린다며 막내아들까지 대학에 보낸 후 즈음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에 욱하는 성격까지 있어 다혈질에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무심해 보였지만 살뜰히 아내를 챙기던 남편이었다.

23살이던 1968년에 7세 연상인 남편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결혼한 뒤 슬하에 1남 3녀를 둔 이모씨(75세). 네 자녀를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산 그녀는 한 푼 한 푼 절약하면서 성실히 살아왔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매일 도시락을 5~6개는 싸야 했고, 세탁기도 흔치 않던 시절엔 추운 겨울에도 언제나 손빨래에, 늦은 밤에도 방마다 연탄을 갈곤 하던 것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잠시도 짬 낼 틈이 없던 바쁜 세월.

그러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남편과 여행도 다니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즈음부터 남편은 늘 언젠가는 알반지를 사주겠노라 얘기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살림살이가 빠듯하니 다음에 사자’며 기분파였던 남편을 말린 그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40주년을 앞두고 남편이 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심플하지만 단정해 보이는 금빛시계와 금반지였다. 남편에게 "쓸데없이 이런 걸 왜 사 왔느냐"고 했지만 내심 무척 기뻤다고 한다. 온 가족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남편과 세 딸이 합심해서 고른 선물이어서인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결혼 40주년 즈음 이씨의 남편이 선물한 금반지와 금빛시계. [사진 민은미]

결혼 40주년 즈음 이씨의 남편이 선물한 금반지와 금빛시계. [사진 민은미]

그는 선물을 주며 “이번에는 알반지가 아니지만, 다음번에는 꼭 알반지를 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결국 알반지를 사주지 못했다. 몇 년 뒤인 2012년 말 남편은 간암 진단을 받았다. 약 2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간암으로 남편을 보내기까지 47년간 부부로 살았고 혼자된 지 만 5년이 지났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 40주년 즈음, 환갑 넘은 나이에 남편이 선물해준 시계와 반지는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남편이 살아생전에 중요한 날이나 모임이 있을 때는 그 시계와 반지를 늘 착용했다. 아껴서 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장롱에 넣어뒀지만 특별한 날에는 꼭 꼈다. 자녀의 결혼 상견례, 손자손녀 돌잔치, 부부동반 모임 등의 사진 속에는 그 시계와 반지가 담겨 있는 이유다.

하지만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후에는 한해 한해 해를 거듭할수록 시계와 반지를 더 자주 끼게 되었다고 한다. 낄 때마다 남편이 함께한다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알반지는 평생 못 끼었지만, 그녀에게 금빛시계와 금반지는 그 어떤 큼직한 크기의 다이아몬드 알반지와도 바꿀 수 없는, 인생과 감정이 담긴 선물이었다. 그녀에게 그 시계와 반지의 의미를 물어봤다. 답을 듣는 순간, 필자까지 울컥해졌다. “사무치는 그리움”이란 말을 들어서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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