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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보화가 와르르…흥부 가족 부자 만든 보석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34)

흥부는 박 한통을 따 와서 마당 가운데 놓았어요.
톱 한쪽은 흥부가 잡고, 한쪽은 아내가 마주 잡았어요.
흥부가 당기면 아내가 밀고, 아내가 당기면 흥부가 밀었어요.
흥부: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 주소. 톱질이야.
흥부아내: 이박 한통 타거들랑 금은보화 나옵소서.
그러자 박이 쩍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어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전래동화 〈흥부전〉의 한 대목이다. 흥부전은 조선 시대의 판소리계 한글 소설이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부와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동생 흥부 이야기로, 흥부가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 주어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 복을 받고 형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작자와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 수 없다. 어디선가 시작된 이야기(착하고 나쁜 형제가 나오는 옛이야기,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갚은 이야기, 어떤 물건에서 재물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 등)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보태지고 다듬어져 만들어졌을 것이다. 흥부전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옛이야기가 〈방이 설화〉와 〈박 타는 처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전래동화 〈흥부전〉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조선시대에도 보물로 여겨졌던 금과 은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 누리놀이 유튜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전래동화 〈흥부전〉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조선시대에도 보물로 여겨졌던 금과 은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 누리놀이 유튜브]

〈방이 설화〉는 흥부전과는 반대로 동생이 심술궂고, 형이 착한 이야기다. 착한 형은 복을 받고 형을 괴롭힌 동생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 〈박 타는 처녀〉는 몽골의 옛 이야기로, 어느 착한 처녀가 제비의 다친 다리를 고쳐 주어 제비가 다음 해에 박씨를 물어다 주었는데 그 안에 온갖 보물이 나와 복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흥부전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고전임은 물론 판소리 흥보가는 판소리사 초기부터 불린 작품으로 흥보가의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은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 중 가장 오래된 소리이다. 20세기 이후에는 다시 판소리 흥보가가 활성화되어, 현재는 다양한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양상이다.

흥부전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조선시대에도 보물로 여겨졌던 금과 은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흥부전에 나오는 박에서 쏟아져 나온 금은보화는 아주 흥미롭다. 조선시대의 흥부전에도 보물이 나오지만 금과 은이 언제부터 귀한 보물로 인정받았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고대왕국 동옥저와 신라에서는 금·은 무문전(無文錢) 을 화폐로 사용했고, 백제는 대외무역시 귀금속을 결제수단으로 했다는 기록이 문헌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동옥저나 신라의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엔 오래전부터 금맥이 곳곳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황금빛깔을 자랑하면서도 희소한 금을 인류가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금은 단순히 관상용이 아니라 전자기기의 미세한 기판에도 금을 쓸 정도로 실용적인 금속이다. [사진 pexels]

아름다운 황금빛깔을 자랑하면서도 희소한 금을 인류가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금은 단순히 관상용이 아니라 전자기기의 미세한 기판에도 금을 쓸 정도로 실용적인 금속이다. [사진 pexels]

실제로 평안북도에 있는 ‘운산광산’은 한때 아시아 최대규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원통스럽게도 일제강점기에 일본만 금 생산 세계 4위로 만들어주고 지금은 분단상태다. 운산광산 채굴과정에서 나온 말이 바로 ‘노다지’다. 보통 금맥을 찾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어원은 분명치 않다.

금은 귀한 존재를 넘어 오래전부터 신성한 존재로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불상, 일본의 금각사, 인도의 암리차르 황금사원 등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는 아테나는 황금 투구를 쓰고 있는데, 신화 속 가장 높은 신의 머리에서 태어난 여신이 황금을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는 것은 금이 어떤 존재였는지 잘 보여준다.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황금빛깔을 자랑하면서도 희소한 금을 인류가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금은 단순히 관상용이 아니다. 현대 들어 전자기기의 미세한 기판에도 금을 쓸 정도로 실용적인 금속이다. 뛰어난 전성과 연성(잘 늘어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폐기되는 기판의 미세회로에서 금을 뽑으려 하는 ‘도시 광산’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고, 실제로 반도체 세척 과정에서 나온 금을 모아 회사에 돌려주지 않고 횡령(무려 50억원)했다가 처벌받은 사건도 발생했다. 높은 연성과 전성 때문에 금은 잘 깨지지도 않고 부식도 안 되기 때문에, 치과에서 금이빨로 쓰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금이다.

조금 있으면 설 연휴다. 설날 아침을 마당놀이 흥부전으로 열었던 기억이 새롭다. 선행의 귀결로 박이 쩍 갈라지면서 금과 은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장면.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는지. 흥부의 행운이 깃든 이 장면을 신년 연하장으로 띄워본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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