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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칼럼

한없이 초라해진 문 대통령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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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트럼프의 메시지는 짧고 분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단칼에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비행 노선을 끊었다. “미국을 전염병에서 보호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며 방역 최우선을 확실히 했다. 중국 시진핑도 큰불을 잡자마자 한국인 입국자를 칼같이 격리했다. 우리 교민 아파트에 대못을 박는 몹쓸 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 외교부가 항의하자 핀잔만 돌아왔다. “중국은 외교보다 방역이 우선이다.” 두 강대국 지도자의 닮은꼴 리더십이다.

트럼프·시진핑과 정반대의 리더십 #1류 전문가 - 3류 정부 - 4류 신천지 #관군 실패에 민간의병이 구국 나서 #믿을 언덕은 진화해 온 ‘민간의 힘’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모호했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고 했다.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도 했다. 방역과 경제, 외교의 세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불가능한 주문이다. 지난달 12일 “방역은 빈틈없이 하되 지나친 위축은 피해야 한다. 예정된 행사는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정세균 총리의 지시는 그 연장선 상이다. 관료들은 단박에 코로나에 느슨하게 대처하라는 속뜻을 알아챘다. 그 결과 소홀한 방역 끝에 재앙을 맞은 것이다. 대통령 심기만 살피고 감염학회·의사협회 등 전문가 의견은 묵살됐다.

마스크 대란도 마찬가지다. 대만은 2월 4일부터 수출을 금지하고 사실상 배급에 들어갔다. 마스크를 전략물자로 판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반대로 갔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걸핏하면 시장에 개입했지만 정작 마스크 사태 때는 정부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월 1일~20일 마스크 대중 수출은 1억1845만 달러였다. KF94 마스크의 평소 도매가격(장당 300원)의 3배인 900원이라 쳐도 1억5000만장이 중국에 흘러간 것이다. 국내 마스크 생산능력(하루 1200만장)을 풀가동해도 5000만 국민에 모자랄 판에 매일 700만장 이상이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그 결과 마스크 한장 사려 몇 시간씩 수백m 줄을 선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요즘 문 대통령은 “진단 능력은 우리가 최고”라고 자랑한다. 사실 미국 트럼프가 한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이유도 우리 외교력이나 동맹관계 때문이 아니다. 미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센터(CDC) 책임자들이 “한국의 진단 능력은 경이롭다”고 입을 모으고, 이를 트럼프가 받아들인 것이다. 섣불리 한국을 입국 금지하면 일본과 이탈리아 등 유럽 전체를 봉쇄하는 난감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지난 주 연설에서 ‘전염병 대비 선진국’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호주-캐나다-태국-스웨덴-덴마크-한국-핀란드 순서를 정확하게 나열한 바 있다. 이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존스홉킨스대학 등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 것이다. 정치 논리와 과학 논리가 맞부딪히면 정치논리에 따르는 문재인 정부와 딴판이다.

실제 우리 코로나19 검진능력은 하루 1만5000건을 넘는다. 압도적이다. 일본은 국제감염증센터와 호흡기 전문병원 2곳 등에서 하루 1700명, 미국은 고작 하루 500건 테스트하는 수준이다. 한국도 시도환경보건원에서만 검사하다가 2월 7일부터 민간부문을 참여시키면서 검진 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양성 3개·음성 4개의 키트를 주고 이를 모두 맞춘 90곳에 검진을 맡기면서 하루 1만건 이상을 처리하는 것이다. 현재 진단의 상당 부분은 녹십자·씨젠 등 민간업체들이 맡고 있다.

중국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중난산(鐘南山)은 “코로나19 해법은 조기 진단과 조기 격리”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확진 판독에 2~3일 걸리는 일본이나 3~4일 소요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다. 전문인력이 3교대 24시간 비상근무하면서 유전자 추출에 1시간, 증폭에 3시간 등 4시간 만에 판독 해 내기 때문이다. 권계철 진단검사의학회장은 “지금 추세라면 3월 중순까지 변곡점을 맞게 될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런 경쟁력을 자화자찬하는 건 낯 뜨거운 일이다. 그 검진능력은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평시에도 현장 검사를 통해 진단의 정확성을 따져가며 인증 업체들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코로나19를 통해 ‘4류 정치·신천지-3류 정부-1류 전문가·민간기업’이란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독재 체제의 중국은 우한을 봉쇄하고 의료진 4만명을 동원하는 인해전술로 급한 불을 껐다. 반면 우리에겐 믿을 언덕이 민간 부문밖에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초라해져 버렸다. 정부가 정치논리에 갇혀 아마추어 정책들로 헛발질하는 동안 민간이라도 합리적·현실적으로 진화해온 건 다행이다. 이번에도 관군(官軍)대신 민간 의병(義兵)들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

2016년 문재인 야당 대표는 연일 “박근혜 대통령의 낯 두꺼운 자화자찬…반성없이 남탓만 한다”고 비난했다. 그해 12월 촛불집회에선 “박근혜=연쇄담화범”이라며 탄핵을 요구했다. 한발 늦은 대국민 사과로 국민 감정만 상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자신의 이야기들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어제 처음 마스크 대란을 사과했지만 때늦은 분위기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연쇄 담화’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